책읽기는 노년의 삶을 더욱 풍성하고 윤택하게 한다
지난 5월17일 모든 언론 매체는 소설가 한강의 작품 ‘채식주의자가’가 맨부커상을 수상하게 됐다는 소식을 일제히 쏟아냈다.
맨부커상이란, 노벨문학상, 프랑스의 공쿠르문학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힐 뿐더러, 영국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문학상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상을 받고 나면 다음은 노벨문학상이라고 할 정도로 권위 있고 명성이 높다. 그러한 상을 우리 한국인 소설가가 받게 되다니! 한국 문단으로서는 여간 경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겠다. 해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시기가 되면 단골로 고은 시인이 운위되곤 하지만 아직 수상소식은 듣지 못하고 있다. 아무튼 이제 한국문학도 세계의 문학으로 발 돋음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지만, 안타깝게도 아직은 희망사항으로만 남아있는 형편이다. 세계의 경제 10위권에 이르는 대한민국이 아직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지 못했다는 건 여러모로 보아 남부끄럽고 창피스러운 일이다. 동양의 경제대국 중국과 일본을 젖혀 두고 한국이 유일하게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한 나라라는 건 어느 모로 보아도 어울리지 않는 자화상이다. 팔다리만 컸지 두뇌는 왜소한 기형적 모습을 그리게 되는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서점에 들리곤 하는데 지난 수요일엔 일부러 이번 맨부커상 수상작인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사러 서면 영광도서엘 들렸었다. 독서경향도 나이에 따라 변하는지 그러고 보니 최근엔 소설을 전혀 읽어보지 못했다. 자칭 나의 삶은 문사철을 지향한다 하면서도 최근엔 소설 쪽에 아예 눈길이 가지 않았었다. 이름께나 있는 대학교수나 종교인들이 쓴 에세이류 등이 베스트셀러로 광고지면을 도배하는 것이 눈에 심히 거슬리는가 하면 현실문제와 결부되어서인지 역사서나 사회학, 심리학 관련 서적이 근래 부쩍 나의 관심을 끈다고 해야겠다. 그러니 한강이라는 이름의 작가가 있는지도 몰랐다. 알고 본즉 그의 부친이 역시 소설가로 한승원이다. 나이로는 나보다 서넛 윗길이지만 문학을 탐구하는 세계에선 동년배나 진배없다. 그러니 그의 이름 정도는 우리 나이 연배엔 충분히 익혀둘 만했다. 한승원은 소설 ‘아제아제 바라아제’로 나와 면식을 익힌 처지이기도 하다. 한강은 그의 딸이다.
안내 데스크에 있는 남자직원에게 말을 걸었다.
“내 눈으로는 도무지 찾을 수 없네요. ’채식주의자!‘”
한국문학 코너에서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찾아봐도 보이질 않아서 종내는 직원에게 도움의 손길을 기대해서였다.
“네, 지금 책이 절품입니다. 금요일날 내려 옵니다.”
“제기랄!”
하는 수 없지 않은가. 대신 사진잡지 한권을 골라잡아 서점을 나왔다. 역시 권위 있는 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 책을 절품케 하였음을 익히 짐작할 수 있다. 그건 좋은 현상이지 탓할 사안은 아니다.
‘채식주의자’는 정확히 금요일 저녁에 가서 기어코 구입해 와서 읽었다.
책이란 상품은 수요처가 거의 정해져 있는 거나 마찬가지로 책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사간다. 특별한 목적에 의해서 구매하기도 하는데, 수험생이나 연구기관 종사자 등등이다. 계절상품이 아니면서도 은근히 계절을 타기도 하는 경우가 없지 않은 모양 같다. 그래서 ‘독서의 계절’이라는 홍보성 이름이 생겨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엄격히 말해서 책이란 상품은 사계절 풀시즌 상품이라 할 수 있다.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읽을 수 있고, 제한된 연령층도 없으며, 사회적 지위나 권력의 의지와도 관계없이 누구나 사서 읽을 수 있는 것이 책이라는 상품이다. 그런데 이 책이 잘 팔리지 않는다고 한다. 모든 상품은 잘 팔려야 생산자가 먹고 살며 소비자는 구매행위로 인해 유익을 얻고 보람을 구사하며 삶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게 된다. 경제규모에 비해 한국사람들은 책을 거의 안 읽는 편에 속한다. 기이한 형상이라고 뜻있는 사람들은 혀를 끌끌 찬다. 왜냐하면 선진국이란 역시 독서량이 많고 비례해서 도서판매량이 월등한 국민들이 잘 살고 부강한 나라가 된다는 것이 현상으로 증명하고 있는 때문이다.
슬프게도 한국사람들은 한 달에 책 한 권도 제대로 사보지 않는다는 통계가 나와 나를 우울하게 했다. 지난 3월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2인 이상 가구가 책을 사는 데에 쓴 비용은 월평균 1만 6623원으로 전년 1만 8154원보다 8.4% 줄었다고 발표했다. 신간 단행본의 평균 정가가 1만 7916원이라니까 수치상으로는 가구당 한 달에 한 권도 채 구입하지 않는다는 결론이다. 가구의 월평균 책 구입비용은 2010년 2만 1902원, 2011년 2만 570원, 2012년 1만 926원, 2013년 1만 8690원, 2014년 1만 8154원으로 꾸준한 감소세를 보였다. 지난해는 1만 6623원으로 또 한 번 최저치를 경신한 꼴이 되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실시한 ‘2015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 따라도 대학생을 포함한 성인의 연간 독서량이 9.1권이었다.
십년 전의 통계를 봐도 어이없기는 매한가지다. 전국 가구에서 외모를 가꾸는 데 쓰는 이·미용 장신구 비용이 월평균 5만9611원인데 비해 두뇌를 가꿔주고 계발시키는 서적이나 인쇄물 구입비는 1만397원으로 5배의 격차를 나타낸다. 당시 신문구독료가 월 1만2천원이니까 집에서 신문을 본다면 한 달에 책 한 권도 안 사본다는 얘기다. 이런 원통 절통할 노릇이 있나.
어떤 언론인은 그의 칼럼에서 ‘위로 부재의 시대, 독서는 나의 힘’이라고 강조함을 보았다.
외로운 사람에게 책읽기는 변하지 않는 친구가 되어주며, 영혼의 교사가 되어주기도 하고, 의지할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주기도 한다.
자라는 아이들에겐 무한한 상상력과 기발한 창의성의 보고가 되어주기도 하고, 침착한 행동과 원대한 꿈을 가꿀 수 있게 도와주기도 한다. 책읽는 습관을 길들이면 자라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남다르게 된다. 삶에 대한 지식을 더불어 쌓게 되며 자기 나름의 안목을 가지고 사회를 진단하게 되며 슬기롭게 대처하게도 된다.
『조선일보와 한국교총이 지난해 말 유·초·중·고교 교사와 교육청 전문직 등 103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 교사의 96%가 ‘책을 많이 읽는 학생이 학업 성취도가 높다‘고 답변했다. ‘매우 동의한다’는 의견이 694명(67.2%)으로 가장 많았고, ‘동의하는 편이다'(298명·28.8%)가 뒤를 이었다.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견은 6명으로 전체의 0.6%에 불과했다.
특히 책 읽기와 학업 성취도 간 상관관계는 교단에 선 경력이 오래된 교사일수록, 교장·교감 등 보직 교사일수록 더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2004년 당시 국내 중3 학생들이 대입에서 어떤 점수를 얻고 어떤 직장을 얻었는지 12년째 추적 조사한 연구를 통해서도 확인된 바, 중학생 때 다독(多讀)한 학생들은 과목별 수능 표준점수(환산치)가 최고 22점 뛰었고, 대기업·공기업 등 ‘괜찮은 일자리’에 들어가는 비율이 20%포인트 높았다. 또 학창 시절 책을 자주 손에 쥐었던 학생은 훗날 직장에 들어간 후 독서하지 않은 학생들보다 200만원 많은 연봉을 받았다.』
『외국에도 다독(多讀)이 고임금으로 연결되는 것을 실증하는 연구가 있다. 미국 브리검영(Brigham Young) 대학 연구팀이 최근 발표한 ‘자녀에 대한 부모의 시간 투자 효과’ 논문에 따르면, 부모가 자녀에게 일주일에 30분 정도 더 책을 읽어주면 자녀의 연봉이 5000달러(약 600만원) 정도 오른다고 나타났다. 미국의 청소년 추적 연구 데이터(National Longitudinal Survey of Youth)를 활용한 연구 결과다.』
이처럼 독서는 실용성으로도 두드러진 효과를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독서는 개인의 성취를 뛰어넘어 소득 양극화 시대에 사회적 칸막이를 뛰어넘는 ‘사다리 역할’을 한다고도 했다. 부모가 잘살든 그렇지 않든, 부모의 학력이 높든 그렇지 않든, 책을 많이 읽을수록 학업 성취도를 높이고 좋은 직장에 취업해 고임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이 들어서 기분 좋은 일이란 그다지 많지 않다. 우울증에 걸려 퇴영적이나 되지 않으면 천만다행이라 할만도 하다. 그럼에도 나이 듦이 즐거움이 되고 보람이 되는 일에 책읽기만한 것이 없다는 데 나는 어디 비길 데 없는 위로와 격려를 받는다. 끊임없이 지식의 탐구를 게을리 하지 않고 꾸준히 책읽기를 이행하는 삶은 찬탄 받아 마땅하다고 힘주어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노년의 서점 나들이는 젊은이의 연애행진곡에 비추어 손색없는 경쾌함과 날을 듯한 기분을 만끽하는 소풍에 비견된다.
책읽기의 유익함은 한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모든 책에는 모든 인간들의 애환과 성패가 담겨 있다. 책이란 인간 세상에서 명멸해 간 위인들의 발자취와 풍모, 취향, 의지, 사상, 지혜, 사랑, 포부와 관용, 배려와 용서, 도전과 성취, 좌절과 실패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한 권의 책을 대한다는 것은 위대한 인물과의 감동적인 조우를 맛볼 수 있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정녕, 배움의 저장고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머리를 쓰면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만큼 두뇌가 활성화된다는 의미다. 예컨대 늙지 않는다는 말이다. 시쳇말로 치매를 방지하는 수단으로도 독서가 으뜸이다. 이만큼 좋은 일이 노년에 있을까.
완당(阮堂) 김정희(金正喜) 선생이 쓴 현판 글씨에 “일독 이호색 삼음주’ (一讀, 二好色, 三飮酒)”라는 게 있다고 들었다. 어떤 짓궂은 먹물쟁이가 술자리에서 이를 부연하기를 ‘책을 한 권 읽는 동안, 두 번 섹스하고, 세 번 술 마신다’라고 했다나. 웃자고 한 소린데, 세상사에서 기쁨을 주는 일 가운데 책읽기가 으뜸이라는 얘기를 에둘러 표현한 말로 이해된다. 두 번째가 연애하는 일이요, 세 번째가 친구와 더불어 술을 마시는 행위란다.
명리학에도 이와 비슷한 교훈이 있다. “일명(一命), 이운(二運), 삼풍수(三風水), 사적덕(四積德), 오독서(五讀書).” 불운을 이기려면 독서를 하라는 말이다. 예컨대 운이 나쁠 땐 쓸데없이 나돌아 다니지 말고 집안에서 조용히 독서나 하며 세월을 이겨내라는 가르침이다.
김득신(金得臣 1754-1822, 조선 후기 시인이자 도화서를 대표하는 화가)의 당호(堂號)는 ‘억만재(億萬齋)’다.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백이전’을 1억 1만 3천 번 읽었다고 한다. 요즘 계산법으로 10만 번 이상 읽었다는 말이다. ‘억만재’는 거기서 비롯됐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덕무(李德懋) 또한 평생 읽은 책이 2만 권을 넘었다고 한다.
“단 한 권의 책밖에 읽은 적이 없는 인간을 경계하라.”(티즈데일리)
“책 없는 방은 영혼 없는 육체와 같다.”(키케로)
책읽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다 할 수 없다.
안중근 의사는 “하루라도 좋은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고 했다. “좋은 책은 좋은 친구와 같다.”(생 피에르), “좋은 책을 읽는 것은 과거의 가장 뛰어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과 같다.”(데카르트). “사람은 책에서 가장 많은 지식을 얻는다.”(유태 속담), “열지 않는 책은 종이 뭉치에 불과하다.”(영국 격언), “지혜의 샘은 서적 사이로 흐른다.”(프랑스 격언), “내가 인생을 안 것은 사람과 접촉한 결과는 아니다. 책과 접촉한 결과다.”(A. 프랑스), “독서와 같이 값싸게 주어지는 영속적인 쾌락은 또 없다.”(몽테뉴)
다음 주엔 뜨거운 연애소설이나 한번 읽어 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