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우리는 누구인가

한국인, 우리는 누구인가

 

국민이 잘 살고 나라가 부흥하려면 뭐니 뭐니 해도 정치가 안정되고 국방이 튼튼해야 함은 만고의 진리랄 수 있다. 그러함에도 대한민국의 정치는 날로 저질화, 고질화로 치달아 국민들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가 하면, 할 수만 있다면 정치판을 뒤엎어 새판을 짜는 혁명적 조처가 있어야겠다는 염원을 간절히 품게 하는 작금의 현상을 보면서, 도대체 우리의 무엇이 자자손손 물려져 고칠 수 없는 병폐가 되었는가를 고민하게 하는 즈음에 새삼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담론이 책으로 묶여져 나왔기에 기대감을 갖고 펼쳐보게 되었다.

한국인, 우리는 누구인가

작년 가을,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한국인, 우리는 누구인가’를 주제로 한국인의 정체성을 탐구하고자 하는 강연이 ‘플라톤 아카데미’의 대중강연으로 이루어졌었다.

 

플라톤 아카데미’는 인간 정신의 보편적 발전과 인격의 탁월함, ‘Arete’를 추구하는 성찰의 인문학을 심화, 확산시키려는 목적으로 설립된 인문학 연구 지원 재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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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금의 한국 사회를 볼라치면, 국리민복의 정치는 실종되고, 윤리도덕은 무너져 인간성이 척박의 도를 넘어 살벌한 지경에 이르렀고, 법질서는 무시되고 인간의 욕망이 사회를 교란하는 Hell조선을 구축하는 가운데, 정녕 이대로 대한민국이 주저앉아서는 안 되겠다는 절박한 염원의 발로가 그 같은 담론의 장을 마련하였고 더불어 내용을 책으로 묶어 나왔을 것이기에 여간 기대가 적지 않았다고 말해야겠다.

 

여덟 사람의 석학에 의해 심리, 종교, 역사, 정치,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주제로 한국인의 내밀한 정체성을 파고 든 노력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려도 좋지 않을까 싶기는 하다.

 

책은 크게 1, 2부로 나눈 뒤에 8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개인의 의식에서 한국인을 발견하다이고

2부는 민족의 역사에서 한국인을 발견하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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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의 첫 번 째 담론자로 나선 진중권 교수의 ‘한국적 인간, 호모 코레아니쿠스’를 읽어 보자.

우리가 우리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크게 두 가지 문제에 부딪힌다고 한다. ‘하나는 자화자찬’이고 하나는 자기비하‘라는 것이다.

동족상잔의 쓰라린 한국전쟁으로 인해 우리는 전국토가 폐허화되는 불행을 겪었는데, 전후 70년 가까운 세월을 보내는 동안 외국이 놀랄만한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냈음은 세계가 인정하는 바다.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라 어깨가 으쓱거리지 않을 수 없겠다. 이는 분명 한국인의 뛰어난 유전인자의 영향이라 자부해도 좋을 만한 일이다. 반면 선진대국들의 품격 있는 문화생활이나 교양과 도덕성을 겸비한 준법생활을 지켜보게 되면 성공했다는 우리네의 무질서하고 이기적인 생활행태가 부끄러운 자화상으로 다가온다. 조급하고, 저돌적이며, 결과 위주의 가치관에 매몰된 천박한 성공주의가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한국인의 은근과 끈기, 이웃과의 공생, 배려정신을 함몰케 한 것이라고 반성하게 한다. 따지고 보면 자화자찬이나 자기비하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어느 한 쪽 만으로 전체를 평가한다는 건 부당하고 온전한 평가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다만 우리 민족성 안에 잠재된 궁극의 정서와 가치관에 대하여 냉철한 분석과 판단을 필요로 함은 시의 적절한 담론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필자는 ‘하비투스’개념을 들어 한국인의 참다운 모습의 발견과 미래에 나아갈 길을 모색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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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분노범죄’라는 말을 부쩍 자주 듣게 됩니다. 물론 언제나 있어왔던 범죄지만 오늘날에는 그 정도가 매우 심각한 수준에까지 이르렀고, 유형 또한 다양하고 새로워졌습니다.‘

 

오늘 아침(6.24) 신문만 봐도 어느 탤런트가 부부싸움 끝에 자살을 기도하여 현재 의식불명 상태에 있다는 뉴스가 사회면에 떠 있다. 부부싸움 끝에 자살기도라?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욱! 하는 감정이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고 극단적인 행동을 초래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운전 중 사소한 시비 끝에 보복운전을 한다든가, 여성혐오범죄, 묻지마범죄 등이 점증하는 데는 알게 모르게 한국인만의 격정적인 정서가 바탕이 되고 있음을 추리하기란 어렵지 않아 보인다. “왜 우리는 뚜껑이 자주 열릴까

담론자인 권수영(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교수)은 이 같은 분노범죄심리의 저변에는 ‘수치’경험이 지배한다는 하바드 의대 정신의학과 교수인 제임스 길리건의 연구 결과를 인용하고 있다.

수치심은 자존심이 상처받았을 때 느끼는 창피한 심리상태를 말한다. 사건의 본질을 떠나 알량한 자존심이 공격받으면 인간은 야수로 변할 소지가 강하다. 이것이 한국인의 심성 가운데 크게 자리 잡고 있음이 원인일 수 있음을 짐작케 한다. 여기서 부연하여 나는 5백년 유교사회의 잔재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음이 아닐까 나름으로 유추해 보기도 한다.

감정에는 양면성이 있는데, 담론자는 이를 원심력과 구심력으로 구분해 설명하고 있다.

한국인의 ‘앵그리’국민성을 파악하기 위하여 담론자는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자의 이론을 인용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문화적 해석에서도 감정 표현에 차이가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뜨거운 물을 마시면서도 한국 사람들은 아, 시원하다고 표현한다는 것이 그 사례다. 뿐더러 한국인에게만 있는 특이한 정신질환이 있는데 이는 ‘화병’을 일컬음이다. 화병은 왜 생기는가. 분노를 느끼는데 분노의 감정을 억누를 때 생기는 것이 ‘화병’이다. 그러니 적절한 분노의 표출은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건만 한국인들은 ‘관계를 중요시 하는 우리의 관습이나 전통’ 때문에 비합리적으로 감정을 억누르다가 어느 순간 뚜껑이 열리는 참변을 맞는 격이다. 자기의 감정을 솔직하게 상대에게 전달하는 훈련이 부족하다는 지적인 셈이다.

 

“한국인의 정서는 서구인이나 일본인의 정서와 매우 다릅니다. 한국인의 습성을 살펴보면 첫 번 째, 고맙다. 사랑한다. 미안하다 등 마음 표현을 잘 하지 않습니다. 서구인과 일본인의 관점에서는 네 마음을 내가 모르고 내 마음도 네가 모르기 때문에 서로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말로 표현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는 것은 사랑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하지만 한국인의 관점은 내 마음을 네가 알고 네 마음도 내가 알기 때문에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다고 믿습니다.”

거기에 ‘뿌리를 중시하는 습성’, ‘자기 자신을 둘로 보는 습성’, 등에서 담론자 이기동은 “한국인의 정서와 한마음 사상”을 설파하고 있다.

그밖에도,

‘보이지 않는 뿌리를 중시하는 민족’ ‘물질 시대에서 마음을 챙기는 시대로’ ‘한국적 정서의 장점과 단점’ ‘본래의 마음을 회복하는 일’ ‘한마음이 가져다주는 신바람의 기적’ ‘죽음, 새로운 성장이며 희망’ 으로 나누어 그는 한국인의 숨겨진 면목을 여실히 드러내 긍정적 마인드로 새로 태어날 것을 힘주어 강조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한마음을 회복하면 기쁘게 늙고 희망으로 영생한다. 사람은 누구나 늙고 병들고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는 불변이지요.’p91

‘우리의 유전자 안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상이 들어 있습니다.’p93.

‘죽음이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말입니다.’p94

‘행복한 삶이란 늘 여유롭고 느긋하고 양보하는 삶, 그러면서 하는 일마다 성공하고 즐겁게 늙어가다가 영생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국 사상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이제 행복해지기 위해 한마음을 회복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습니다.‘p94알고 보면 우리는 타고난 일꾼이요 춤꾼이며 풍류를 아는 민족이라 부를 수 있겠다. ‘IT나 자동차 산업에서 선진국들과 경쟁하며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은 물론, 케이팝(K-pop)이나 한류 열풍 같은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세계를 정복했다’고 믿기에 조금의 주저함이 없어서일 것이다. 이를 담론자 유동식은 “한국인, 진선미를 추구하는 풍류도인”에서 신명나게 풀이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우리 안에 잠재된 신명을 자각할 필요가 있음을 은연 중 깨닫게 된다. ‘멋진 풍류도를 가지고 있는 우리 한국인이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는 진, 선, 미, 즉 한과 삶과 멋입니다. 진(眞)은 종교적인 한, 선(善)은 윤리적인 삶, 미(美)는 바로 예술적 멋에 해당하며, 그것이 보편적 인류의 가치와 우리 풍류도의 가치의 접점이라 생각합니다.’2부 민족의 역사에서 한국인을 발견하다에서 조한혜정초고속 압축 성장의 빛과 그림자’를 분석하고 있으며,  ‘인류에게 닥친 전 지구적 위기’와 ‘대한민국 사회의 그늘’ 을 심도 있게 진단하고 있다. 사실 대한민국은 전후의 폐허에서 초고속으로 성장했으니 초고속으로 붕괴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압축 성장의 부작용으로 인한 불균형 현상이 이미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그렇다면 ‘어떻게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전환과 연대를 해낼 수 있을까’가 화두로 등장한다.

‘서로 도와야 하는 것’p148, ‘타인과 관계 맺는 법‘을 배우는 것’ p149, ‘가족끼리 매일 식사를 함께’하는 것,p149, ‘텔레비전 앞에 옹기종기 모여 드라마를 보면서 논평‘하고,p149, ‘이웃 간에 음식을 나눠 먹으며 급할 때 도움을 청하는 관계를 맺어 두는 것’,p149 등이다. ‘그런 것을 보면 결핍이 축복이고 풍요가 저주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자면 ‘관계를 맺어가는 소통 능력, 신뢰하는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는 태도가 중요’함을 깨우치고 있다.

 

한명기는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반도의 지정학적 숙명을 역사적 사건을 들어 조명해 보며 앞으로 한국이 나아갈 길을 지혜롭게 모색해 보라고 조언하고 있다. 주변 강대국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극심한 분열 양상을 펼치는 내부를 통합하고 역사 현실을 직시할 줄 아는 양식과 혜안을 가지라고 주문한다.

신용하는 독도가 역사적으로, 문헌적으로 한국의 고유영토임을 역사에 드러난 증거로 확인하며 일본의 야욕과 주장이 터무니없음을 지적하고 있다. ‘더불어 대한민국의 국민인 우리는 우리 영토주권의 상징인 독도를 굳건하게 수호해야 할 것입니다’로 글을 맺고 있다.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는 한국인의 역사와 정신에 영향을 미친 종교의 가르침에서 탄생한 위대한 인물들을 거론하며 ‘특별한 사명’을 가지고 태어난 한국인에 주목하고 있음이 시선을 끌어 모은다. 그는 굳건하게도 우리 민족이 특별한 사명을 가지고 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가 서서히 끝을 보이고 있다는 것, 즉 대서양 중심 시대의 쇠퇴는 한국인의 번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감추지 않는다. 과연 그의 말대로 대한민국이 ‘세계를 움직이는 나라’가 될 수 있을까? 그런 말을 듣는 우리의 귀는 즐겁지만, 정녕 대한민국의 미래가 그렇게 될지는 역사의 주관자인 신만이 아는 사실이라 우리는 오로지 흥미진진한 담론에 고개를 갸웃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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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덮으면서 한갓 아쉬움이 드는 것은 우리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 우리가 나아갈 길을 명료히 제시하지 않음에 대하여 미련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공직자의 복지부동과 무사안일주의에 부패는 정도를 넘고 있고, 사법부는 브로커의 손아귀에 놀아나며 법질서를 팽개치고, 사회기강은 무너져 범죄가 만연하고 있는데, 이를 시정하고 바로잡을 구체적 대안의 제시가 미흡함에는 여전히 찜찜한 실망을 금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러나저러나 대한민국은 달라져야 하고 달라지지 않으면 다시금 가난과 혼돈의 옛 시절로 되돌아 갈 수밖에 없음을 각성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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