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Happy Birthday! – 획기적인 10주년 기념 모델, 701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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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는 워크맨 탄생10주년을 기념하여 F701C를 선두로 F-700시리즈를 출시함으로써 10년 동안 축적된 기술로 워크맨 성능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 하여 시장에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카세트를 연상시키면서도 유연한 바디라인, 풀 리모컨, 역대 제품 중 최경량인150g을 달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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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의 특징은 종래의 워크맨과는 달리 카세트 테이프를 확인하는 창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테이프 주행 방향을 확인할 필요 없이 조작이 가능해진 점이 디자인에 반영되었다고 봅니다. , AB든 어떤 면을 재생하더라도 FF는 빠르게 뒤감기, REW는 빠르게 앞감기를 수행하는 간편한 FF/REW 조작 기능을 갖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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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러한 리모컨을 본체에 장착하는데 기존의 이어폰 단자와는 전혀 다른 일자형 단자를 사용하여 기존의 이어폰을 본체에 사용하려면 부속으로 제공되는 별도의 어답터를 먼저 본체에 장착한 후 이어폰을 연결하여 사용하여야만 하였습니다. 이렇게 기존 이어폰을 바로 사용할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아마도 유저들의 불만이 적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이후에 기존의 이어폰 단자와 병용하여 사용할 수 있는 방식을 개발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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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는 10주년 기념 모델인 WM-701C를 출시하면서 동시에 미국의 보석회사인 Tiffany & Co.와 함께 은도금(銀鍍金) 한정판 모델인 WM-701T를 전세계에 250대를 발매하였습니다. 그 중 200대는 고급스런 목제 케이스에 넣어져 10주년 한정판의 가치를 더욱 높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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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700시리즈의 라디오 장착모델부터 소니 워크맨 시리즈 중 최초로 Digital Synthesizer Tuner가 장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드디어 아날로그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에 디지털 기술의 서광이 비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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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맨의 代父 – 20세기 최강 소니의 기술혁신을 이끈 이부카 마사루( 井深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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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자신이 개밣한 일본 최초의 트랜지스터 라디오와 함께한 이부카 마사루

이부카 마사루는 1908 4 11일 닛코 (日光)에서 태어났습니다. 2살 때 청동제품 기술자였던 부친이 돌아가시자 아이치현에 살던 할아버지의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5살부터 8살까지 도쿄에 이사를 가서 살다가 다시 아이치현으로 돌아와 살았습니다. 어머니가 재가를 하면서 고베의 외갓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第一와세다고등학교를 졸업 후 와세다대학교 이공학부를 졸업하였습니다. 이미 학생시절부터 기발한 발명으로 유명하였고, 졸업논문은 광선전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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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도쿄통신공업 사장 시절의 이부카 마사루

도쿄시바전기 ( 도시바)에 입사시험에 응시하였으나 불합격하였습니다. 대학졸업 후 사진화학연구소(Photo Chemical Laboratory, 통칭 PCL)에 입사하였습니다. 학생시절 발명하여 PCL에 근무할 때 출품했던 달리는 네온이라는 제품이 파리만국박람회에서 금상을 획득하였습니다. 이후 일본광음(光音)공업주식회사로 이직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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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도쿄통신연구소 전경

그 이후 일본광음공업주식회사가 출자한 일본측정기주식회사에 상무로 취임하였습니다. 일본측정기는 군수용 전자기기의 개발을 하던 회사로 이를 인연으로 열선유도병기 개발 중 소니의 공동 창업자인 아키오 모리타를 만나게 됩니다. 패전일 바로 다음 날 도쿄로 상경하여 2개월 뒤인 1945 10도쿄통신연구소를 설립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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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트리니트론 TV 개발과정을 설명하는 이부카 마사루

이때 아사히신문에 파란연필이라는 칼럼에 게재된 도쿄통신연구소의 기사를 아키오 모리타가 읽고 회사설립에 합류하게 됩니다. 1946 5월 자본금 19만엔의 주식회사로 전환하여, 의부(義父)이자 종전직후 내각의 문부대신이었던 마에다 다몬이 사장, 이부카 마사루가 기술담당 전무, 아키오 모리타가 영업담당 상무, 사원 20명의 소니의 전신인 도쿄통신공업을 창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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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공동 창업자인 아키오 모리타(좌)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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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아키오 모리타와의 팔씨름을 겨룬 이부카 마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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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초 도쿄시내의 소니네온사인

이후 이부카 마사루는 새로운 기술개발에 도전하여 소비자의 생활을 풍요롭고 편리하게 만드는 신제품의 공급을 경영방침으로 하는 활동을 전개하였습니다. 이러한 그의 업적은 20세기 일본최초 및 세계최초의 혁신적인 상품들을 탄생시켰고 전후 일본경제의 기적적인 부흥과 급성장을 상징하는 세계적인 일본기업인 소니를 우뚝 세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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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카 마사루 회장의 휠체어를 밀어준 아키오 모리타

이부카 마사루의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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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어린이를 위한 카드 리더기를 개발

  • 1951테이프 레코더 개발. 도쿄통신공업 사장취임.
  • 1955트랜지스터 라디오 개발
  • 1958:이전까지 상표로 사용하던 SONY를 정식으로 상호등록하여 브랜드명과 회사를 통일하였음.
  • 1961트랜지스터 TV 개발
  • 1962일본영화, TV녹음협회 초대명예회원으로 선출됨.
  • 1964가정용 비디오 테이프 레코더 개발
  • 1975소니 회장 취임.
  • 1976국철이사, 발명협회 회장 취임.
  • 1977소니 명예회장으로 취임
  • 1979일본오디오협회회장 취임
  • 1987철도총합기술연구소 회장취임.
  • 1990:소니Founder 명예회장에 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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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카 마사루의 역사적 개발품

  • 트랜지스터 라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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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에서 개발된 트랜지스터의 일본 생산에 성공하여 이것을 이용한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출시하였고 이로서 일본이 전자대국이 되는 기초를 다지게 되었습니다.

  • 트리니트론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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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초의 크로마트론 방식에 도전하여 5년간의 개발노력을 하였으나 제품으로서의 완성도는 낮았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전혀 새로운 방식의 브라운관인 트리니트론 개발에 성공하였습니다. 색선별기구(色選別機構) Aperture Grille, 1 Gun 3 Beam의 전자총, 완전수직 실린더 타입 사각코너 스크린 등 독자기술에 의한 고성능을 실현하여 Shadow Mask방식의 브라운관을 채용했던 기존의 TV시장에서 소니의 앞선 기술을 각인시킨 계기가 되었으며 탁월한 화질로 1973년 미국 에미상을 수상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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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3년 에미상을 직접 수상한 이부카 마사루

  • 베타맥스 비디오 레코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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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정용 비디오 테이프 레코더로 독자 개발한 베타맥스를 추진하였습니다. 하지만 경쟁방식인 VHS에 결과적으로 시장에서 완패하여 소니도 VHS로 제품을 생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베타맥스 및 그 이전부터 비디오 레코더 개발로 획득한 기술특허를 VHS 제품에도 사용되었고, 방송용기자재를 비롯한 업무용 제품은 현재까지도 베타맥스에서 진화한 포맷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에스퍼(Esper:Extra Sensory Perception and Excitation Research)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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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氣"에 대해 저술한 "이부카 마사루가 본 꿈"

1991년 에스퍼연구소를 소니 사내에 설립하여 자칭 초능력자에 투시능력이나 텔레파시의 실험, “()”의 과학적 검증, 유아교육의 연구 등을 하였습니다.

원래 이부카 마사루는 종래의 과학의 범주를 초월하는 동양적 사상에 강한 흥미를 있었으나 이것을 단적으로 오컬트(Occult)적인 유사과학의 경향으로 보는 견해도 있었습니다. 이부카 마사루 사후 1년 뒤인 1998년 연구소는 폐쇄되었습니다.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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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에도도쿄박물관에 특별 개최되었던 미부카 마사루와 혼다 소이치로 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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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에서 아마추어 무선이 1927년 해금되기 전에 이미 불법으로 무선 송수신을 취미로 하였다고 합니다
  • 말년에는 몸이 부자유스러워 어쩔 수 없이 휠체어로 이동하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측근의 말에 따르면 운명직전까지 고개를 꼿꼿이 세웠다고 합니다. 또한 뭘 하고 싶으십니까?” 라고 물어보면 작은 회사를 만들어 여러 가지 도전을 하고 싶네.”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 공동 창업자인 아키오 모리타는 이부카 마사루가 해외출장 등 식견을 넓히는 여정에서 돌아오면 어떻습니까? 10년 후가 보입니까?”라고 그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 이부카 마사루의 장례식에서 일본의 저명한 물리학자인 에사키 레오나는 조사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온고지신이라는 얘기가 있지만 이부카 마사루는 달랐다. 미래를 생각하고 보는 것에서 현재와 내일을 꿰뚫어 본 사람이었다.”

  • 일례로 1980년대 전반의 에피소드로 이부카가 당시의 신소재에 대해서 소니 사내의 담당 책임자에 그 가능성에 대해 의견을 구했으나 그의 대답은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담당자는 현재 가능한 것과 얼마 후 가능한 것에 대한 가능성을 이야기하였으나 이부카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고 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가? 그렇게 수년 후가 아니다.19902000년이 아니라 2010, 2020년에는 어떻게 되고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교육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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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카 마사루가 집필한 "유치원에서는 너무 늦다."

이부카 마사루는 교육활동에도 열성을 보여 1969년에 유아개발협회, 1972년 소니교육진흥재단을 설립하여 이사장에 취임하였습니다. 또한 1985년에는 보이스카웃 일본연맹 이사장에 취임하였습니다. 그의 교육지론은 그 사람의 능력은 여기까지다 라고 결론지어 버리면 그 사람의 능력 발휘되지 못한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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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카 마사루 (1908 ~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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