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30년 – 백 투 더 퓨쳐의 카세트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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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7월 3일 미국에서는 SF 영화사에 큰 획을 긋게되는 영화를 개봉하였습니다.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서 영화예술학을 전공하고 학창시절 제작한 영화 "A Field of Honor"로 일찌감치 스티븐 스필버그의 눈에 든 로버트 저메키스(Robert Zemeckis)가 감독을 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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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는 스토리작가이자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이 학창시절 알게된 같은 학교출신의 영화 스토리작가 밥 게일(Bob Gale)이 미주리주에 있는 부모님댁의 지하실에서 아버지의 고등학교 졸업앨범을 우연히 찾아 아버지가 고교졸업반 반장이었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자신이 다시 고교생이 되면 아버지와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구상을 떠올리고 이러한 스토리를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에게 이야기하자 그도 학창시절 남자와 키스 한번 한적이 없다고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였던 그의 어머니를 떠올려 스토리를 만들게 되었고, 이 프로젝트를 콜롬비아 영화사로 가져가 1980년 9월 영화 "백투더 퓨쳐"의 대본을 완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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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의 대본에서는 냉장고가 타임머신이었고 1985년으로 돌아오려면 네바주의 군기지에서 핵폭발 테스트를 통하도록 하였으나 나중에 이 영화를 보고 많은 10대가 스스로 냉장고에 갇히게 될 것을 염려한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은 자동차를 타임머신으로 사용하기로 하였다고 합니다. 자동차 중에 드로리안을 선택한 것은 1955년의 농부가 비행접시로 착각할 수 있는 디자인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이 냉장고 스토리를 2008년 개봉한 인디아나존스 Kingdom of Crystal Skull에서 사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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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2월 영화의 초안이 완성되었으나 콜롬비아 영화사는 영화의 수익성이 충분치 않을 것으로 판단하여 다른 영화사에 초안을 넘기도록 하였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메이저 영화사들도 그 이후 4년 동안 이 영화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1980년대 초반의 틴에이지 영화는 다소 외설적인 요소가 있는 것들이 흥행이 되었는데 백투더 퓨쳐는 내용이 다소 밋밋하다는 평가였습니다. 그 사이 대본은 2차례 수정이 되었고 로버트 저메키스와 밥 게일은 수정된 대본을 들고 디즈니에 영화화 검토를 요청하였으나 아들이 과거로 돌아가 어머니와 사랑에 빠지는 스토리는 건전한 가족주의 를 지향하는 디즈디의 사풍에 맞지 않다고 거절당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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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되자 두사람은 이전에 흥행에는 실패한 "Used Car"와 "I wanna hold your hand"등 두 영화에서 제작에 참여했던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다시 제작을 요청할까도 생각했었지만 백투더 퓨쳐마저 스티븐 스필버그 밑에서 흥행에 실패하면 다시는 영화를 만들 자신이 없어질 것으로 생각하여 생각을 접었습니다. 대신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이 맡은 작품 "로맨싱 스톤"(1984)이 흥행 대박을 만들면서 A급 감독으로 위상이 바뀌었고,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정식으로 제작의뢰를 하였고 마침내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제작하기로 계약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영화가 만들어졌고 1900만불의 제작비를 들인 백투더 퓨쳐는 전세계에서 무려 3억 9천만불의 흥행수입을 올린초대박 SF영화로 영화사에 기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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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중간에는 주인공 마티 맥플라이가 SF 작가를 꿈꾸는 소심한 아버지 조지 맥플라이의 방에 방사능복을 입고 밤에 들어가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에 밴핼런(Van Halen) 록밴드의 시끄러운 록음악 테이프를 넣고 아버지에게 헤드폰으로 듣게하며 어머니에게 청혼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협박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 등장한 기기가 바로 아이와의 카세트보이 HS-P02였습니다. 사진은 HS-P02와 동일한 모델에 녹음기능이 추가된 HS-F7입니다. 어느덧 30년전 이야기이지만 아직도 영화에서 들었던 밴핼런의 록음악이 귀에 생생합니다. (한국에서는 1987년 여름 대한극장에서 개봉하였고 저는 1987년 개봉전 카투사로 근무시 도서관에서 비디오 테이프로 보았습니다. 1989년 2월 제대할 때까지 20번은 보았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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