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대첩에서의기적적인승리를발판으로이순신은조선수군을재건하여,1년뒤1598년여름에는80척이상의판옥선을보유하게되었다고합니다.칠천량에서의전멸을딛고이룬극적인부활이었습니다.이즈음왜군은철수명령이떨어져본국으로의안전한귀환에골몰하고있었습니다.살아서돌아가겠다는왜군과살려서돌려보내지않겠다는이순신함대의팽팽한대립의긴장감이남해바다를감싸고있었습니다.
조선침공의1선에섰던고니시유키나가휘하의왜군은당시순천에주둔하고있었고남해바다를안전하게빠져나가려갖은수를다썼으나이순신에게먹힐만한전략은존재하지않았습니다.궁지에몰린왜군의마지막선택은죽기를각오한공격뿐이었습니다.궁지에몰려서살려고마지막발버둥을치는적을상대하는건그리쉬운일이아니었을듯합니다.1598년음력11월중순노량해협에서조선수군과왜군의마지막일전이벌어졌습니다.
<노량해협,사진출처:네이버지도서비스>
죽기를각오한왜군의필사적인저항앞에전투는그어느때보다치열했으나시간이지남에따라조선수군의승리로전세는기울었으며왜군은관음포앞바다로도주하다다시금막다른곳에몰리고맙니다.관음포의깊은만을,탈출할수있는바닷길로착각하여왜군이들어섰을것이라고합니다.마지막궁지에몰린왜군의최후의저항도조선수군의분노앞에으스러지고살아남은일부만이황급히도주하여먼바다를돌아본국으로돌아가면서임진년에시작된참혹한전쟁이드디어끝나게됩니다.그마지막순간에이순신은없었습니다.마지막순간까지적을쫓다관음포앞바다에서조총을맞고전사한것은익히아는사실입니다.마지막승전을뒤로한조선수군의통곡은오래도록관음포앞바다에그칠줄몰랐다고합니다.
<관음포,사진출처:네이버지도서비스>
호사가들은이순신장군의죽음이우연이아니었다고말하기도합니다.전란의와중에서백성들이의지할유일한하늘이되어버린장군의앞날이너무도위험했기때문이라는이유에서입니다.사실여부를떠나서그런말까지나올수밖에없었던정치적상황과권력층의패륜적행태가치를떨게합니다.어쩌면만에하나그가정이맞았다면,그들에의한희생은장군만이아니라그를따르던전체조선수군과,난리7년간희생당하고,또맨몸으로싸웠던조선백성들이었을지도모릅니다.그것이,백성위에있고자하는,내려놓고자하지않는권력의속성입니다.장군이스스로그러한선택을하였다면그이유는스스로의안위보다는,전란중에자신을따랐던그리고앞으로도조선을지켜나갈군사와백성들의안위때문이었을것입니다.이는최근의현대사에서도우리가목도할수있는장면이기도합니다.
장군의죽음으로전후무고한이들의희생은더이상없었으나,장군이마지막순간까지구해내었던조선은끝내39년뒤삼전도에서청에의해굴욕적인종말을맞게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