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밖에서 일을 하다보니 집에서 찬거리를 만들어 먹는 일이 많지 않습니다. 어느날 식당에서 숙주나물을 먹어본 아이가 이거 맛있다고 집에서 해 달라고 합니다.
까짓것 숙주나물 정도야 어려운 일이 아니니 마트에서 숙주를 사다가 데치고 당근, 파, 마늘, 소금, 참기를, 깨를 넣고 조물조물 섞어서 주니 게눈 감추듯 해치워 버립니다. 숙주나물 참 맛있죠.
내친김에 아이에게 숙주나물의 이름에 얽힌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태-정-태-세-문-단-세’를 외우고 있는 아이이고 신숙주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던 터라 쉽게 이해를 했습니다. 그러고는 이야기가 재미있었는지 음식에 얽힌 이야기를 또 해 달라고 졸라댑니다. 또 어떤게 있지 ? 겨우 샌드위치 백작 이야기를 해 주곤 밑천이 딸려 버립니다.
학문적으로는 큰 업적을 쌓은 당대의 천재학자가 600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 그리 유쾌하지 못한 의미에서 사람들의 입에 매일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600년전 힘없는 백성들이 지체높으신 양반들을 다루는 방법이 참으로 기가 막힐 따름입니다. 무지몽매하다고 업신여기던 그 일반 백성들에 의해서 자신의 이름이 이렇게 길이 남겨질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을까요.
신숙주 또한 자신의 판단에 의하여 자신이 옳다고 믿었던 길을 갔음에는 틀림없지만 일반 대중이 생각하는 그것과는 거리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만일 그 시절에 여론조사라는게 있었다면 어쩌면 그 길을 가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압도적으로 여론이 형성되었을 것 같으니까요.
100년후, 500년 후, 또 어떤 이들의 이름이 영예롭게 혹은 불명예스럽게 국민들의 입에서 입으로 오르내릴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저 두려울 따름입니다. 물론 아무런 권력도 재력도 없는 사람들이야 고민할거리는 아닙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