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는 우리 정치사에 기이한 현상을 많이 만들어 놓았다.
물론 시대의 흐름에 편승한 측면도 있고 그 혼자 만들어 낸 것은 아니겠지만, 그 면면을 보면 모두, 도저히 생각할수도 없었던 불가능한 상황을 현실로 만들어 놓았다.
첫번째 장면은 2010년 서울시장 보궐 선거이다. 그 스스로 정치 입문을 선언하고 서울 시장 후보를 박원순 현 시장에게 양보하면서 지지율 5%짜리 후보를 서울시장으로 만들었다. 이는 온전히 그의 공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박원순씨가 서울 시장이 될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이라도 해 본 사람은 그때까지 단언코 한명도 없었을 것이다.
두번째 장면은 2012년 대선이다. 이번에도 막판 후보직을 사퇴하면서 압도적인 구도하에 치러질뻔했던 대선을 박빙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때의 득표율을 기반으로 문재인 후보는 지금 대권(피해야 할 용어이지만 알기쉬운 고유명사로 생각함)에 가까이 가 있다. 두번째 기적이다. 하나, 단일화를 위해 사퇴한 후의 미적미적한 행동은 두고두고 아쉽다.
세번째 장면, 바로 지금이다.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간의 양강 구도. 이 장면을 상상했던 사람이 누가 있었을까. 사실상 누가 되도 정권교체이자 진보정권의 탄생이다. 진보 성향의 지지자들은 지금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다. 그 과정에서 그래도 냉정한 승부이기에 치열한 입씨름이 오가고 있으나 결국은 한뿌리이며 대선후에는 결국 하나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진보 진영의 후보끼리의 이파전. 상상도 못했던 세번째 기적이다. 더불어 극심했던 지역 대결의 양상까지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특정 후보의 지지자들이 가혹하게 안철수를 공격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정치 인생을 건 경쟁이기에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나 불과 4년전에 같은 지점을 지향하며 단일화를 이루었던 동지를 이런 식으로 폄하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건별로 다소 금도를 벗어나기도 한 상호간의 비방전은 용인된다고 하나 정체성에 대한 설득력 없는 공격은 실망스럽다. 보수층들의 안철수에 대한 지지도 충분히 존중받아야 할 것이지 이를 근거로 상대를 비난함은 명분도 없고 지지자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아쉬운 부분은 그의 뒤에서 지역색을 부추기는 세력이다. 지난 총선에서 디딤돌이 되었던 그 동력이 이제는 부담이 되어 점점 스스로를 죄어올 것이다. 하나의 선택이 그 찬란한 결말을 이루기 위해서는 참 밝은 눈이 필요하다. 당장의 이익이 아니라 미래의 명분과 도의를 따라야 하고 그로 인하여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고, 때로 가혹한 실패가 뒤따르기도 하지만 결국은 찬란한 결말에 이르게 해 줄 것이다. 그가 이번에 뜻을 이루지 못한다면 온전히 이 요인 때문일 것이다.
지천으로 꽃이 피고 지는 이 봄, 처음으로 편안한 마음으로 선거에 임한다. 만약 그 반대의 경우에 처하신 분들이 있다면 지난 9년간의 시간동안 서로 반대의 처지였기에 너그러이 이해하고 다음, 그 다음을 기약하며 새로이 마음을 가다듬고 애쓰면 어떨까. 어떤 순간에서도 모두를 만족시킬수는 없을테니. 주기적인 정권교체는 민주주의의 꽃이지 절망도 최악도 아니다. 진보와 보수는 적이 아니다. 멀리 날기 위한 동반자일뿐. 동서의 분열도, 진보를 빨갱이로, 보수를 악으로 규정하는 의미없는 일도 이번에 끝내자.
journeyman
2017년 4월 25일 at 11:10 오전
저도 2010년과 2012년에 안철수에게 거는 기대가 컸습니다.
그런데 두 번 연속 실망시키더군요.
만일 2010년에 서울시장이 되었더라면, 만일 2012년 대선에서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은 또 다른 양상이 펼쳐지고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단일화 외에는 문재인 후보와 경쟁하기 쉽지 않아 보이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