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우연찮게 보게된 영화가 기대하지 않았던 재미를 안겨주며 빠져들게 하는 경우가 있다. 영화 ‘암살’은 극장가에서도 꽤 눈길을 끈 영화였으나 영화관에서 볼 기회가 없었다. 공중파에서 방영한다고 했을 때도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시청했으나 영화 시작 몇분만에 시선을 사로잡으며 쏠쏠한 재미를 선사해 주었다. 재미있는 영화의 가장 확실한 척도는 두번 봐도 재미있다일텐데 그 범주에 속하는 영화이다.
큰 줄거리는 중국 상해와 만주를 근거지로 독립운동을 벌이던 독립투사들의 이야기이다. 영화 제목에서처럼 일본 거물 관료와 친일파의 거두를 암살하기 위해 선발된 3명의 독립군들이 내부 밀정의 방해로 목숨을 잃는다. 전지현이 분한 역할 또한 그 일원이었으나 겨우 목숨을 건져 영화의 마지막에 가서야 그 임무를 완수한다. 전지현의 쌍둥이 동생 이야기, 김구 선생, 의열단 등, 중간 중간의 여러가지 에피소드가 소소한 재미를 더한다.
< 영화 ‘암살’ 포스터 출처:movie.daum.net >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깊은 역할은 바로 영화배우 이정재가 분한 염석진 이란 인물이다. 간단히 말하면 한때는, 추후 반민특위 재판정에서 자신의 몸에 일본군의 총탄 여섯발의 탄흔이 있다고 큰소리쳤듯이(이 장면은 이후 방송에서 많은 패러디 및 성대모사의 단골소재가 되었다) 열정적인 독립투사였으나 이후 친일로 변하여 자신이 뽑은 암살대를 자신의 손으로 제보한 밀정이기도 했다. 그리고 일본 경찰의 일원으로 큰 공헌을 했다고 한다. 그날이 오기까지는.
그날은 8.15 독립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끝까지 살아남아 마지막 임무를 수행한 독립군의 손에 죽음을 맞이하며 그는 부르짖는다. “왜 그랬냐고? 해방이 될줄 몰랐으니까”라고. 충분히 공감되는 말이다. 어느 누가 그 시대의 한가운데에 있다고 했을때 이런 선택에서 자유로울수 있다고 큰소리칠수 있을까. 어쩌면 처음부터 친일의 행적을 걸었던 사람보다는 오히려 염석진 같은 인물이 더 낫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다시 영화 암살과 염석진을 떠올린 것은 얼마전 자당의 대선후보를 내팽겨치고 원대복귀한 13인의 전 바른정당 의원들 때문이다. 영화에서처럼 어떤 것이 맞고 어떤 것이 틀리다라고 빗대어 말할수 있는 것은 아니겠으나 그 행적에서 떠오른 것은 바로 그 이름이었다. 만약 이 비유가 다소 유쾌하지 않은 비유라면 그것은 그 행적에서 딱히 내세울만한 명분이나 당위성이 설득력있지 않아서일게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는 염석진과 13인 의원들의 고민을 충분히 이해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암울함 속에서, 되돌아가고싶다는 것은 사람의 본능이며 어쩌면 비난할 일도 아니다. 나 역시 그 선택에서 자유로울 것이라고 장담하지 못한다. 다만 시간이 흐로고 난뒤에 지금의 선택이 맞았는지 틀렸는지, 맞음과 틀림과는 상관없이 정의로웠는지는 명명백백 밝혀질 것이다. 그때에 이러러서 “**** 될줄 몰랐으니까”라고 변명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지금의 선택도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닐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명분과 정의로움에서의 판단과는 별개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