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U20 월드컵 팀의 신태용 감독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 적이 있었는데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결론은 ‘참 어렵다’이다. 어린 선수들을 이끌고 어떤 성과를 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 고충을 이해한다.
손오공이란 완구회사는 ‘또봇’으로 유명한 영실업과 더불어 우리나라 남자아이 완구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회사이다. 빅히트를 기록한 터닝메카드 시리즈로 또래 남자아이를 둔 부모들에게는 애증의 대상이다. 부모의 호주머니에서 돈을 잡아먹는 것도 있지만 한때는 돈이 있어도 완구를 구할수가 없어서 부모들이 마트를 전전해야 했다. 완구사 입장에서는 재고관리 때문에 잠시 인기가 있다고 해서 특정 완구를 무한정 많이 만들어 낼수 없는 고충도 있다.
< 터닝 메카드 완구, 출처: 손오공 이샵 >
터닝메카드는 영화 트랜스포머 이후로 완구 시장의 스테디셀러가 된 자동차-로봇 변신 완구의 일종이다. 자동차에서 로봇으로의 변신이, 동봉된 금속성 카드에 미니카를 갔다대면 자동적으로 경쾌하게 변하게 만든 손바닥안에 들어가는 작은 완구이다. 종류만 해도 이제는 50여개 이상이다. 완구회사에서는 유행이 다할때까지 계속 만들어낼 심산인가 보다. 부모들에게는 악몽이다.
< 터닝메카드 배틀 게임, 출처: 손오공 이샵 >
이 손오공에서 마케팅의 일환으로 터닝메카드 배틀 대회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배틀은 작은 경기장 내에서 터닝메카드 완구를 카드를 향해 발사하여 변신에 성공하면 해당 카드에 인쇄된 점수를 합산하여 승부를 내는 형식이며 마지막에 역전의 기회와 승부를 확정짓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어 나름 흥미진진하게 진행된다. 아이뿐만 아니라 보호자도 경기에 참여하므로 운적인 요소가 많지만 일정 부분은 작전을 잘 세워야 하는 요소도 있다. 고학년 경기는 사실상 아빠들의 머리 싸움이다.
아이를 데리고 근처 마트에서 열리는 지역대회에 참가하기로 했다. 참가에 의의를 두고 싶지만은 않아서 나름 공부를 시작했다. 게임 룰의 숙지, 이기는 방법 및 전략 검색, 모의 경기장을 만들고 연습하기, 정식 게임에 출전시킬 선수와 카드 고르기 등등. 꼼짝없이 한 팀의 감독이 된 셈이다. 이미 한번 참가한 대회에서 두번만에 탈락하고 그 이유에 대한 분석을 끝낸지라 여유는 있었다. 준비가 잘 되어 있으면 초조함이나 불안감은 많이 사라진다.
배틀은 미취학생 리그, 초등학생 리그로 나뉘어서 진행되고 마트에서 열리는 지역대회는 리그당 100명씩 총 200명의 참가가 허용된다. 연말에는 전국대회가 열리며 작년에는 참가자만 2천명 이상이었다. 지역대회 4강 이상 입상자에게는 연말 챔피언십 대회 시드가 주어져 예선없이 본선에 바로 진출하게 된다. 지역대회 8강 이상부터 상품이 지급된다, 상품은 해당 완구이다.
첫게임인 예선 1회전, 지난 대회의 전략적 실패를 거울삼아 이길 확률이 높은 전략으로 임한 것이 적중하여 무난히 승리하였다. 실패에서 교훈을 얻는 자만이 성공에 다다른다. 본선 첫게임에서는 , 총 두번의 점수 획득을 위한 첫 슈팅에서 아이가 어이없는 실수를 했다. 점수는 0점. 점수 획득이 두번뿐이므로 한번의 실수는 곧 패배를 의미한다. 다행히 동시에 같은 시기에 상대방도 슈팅에 실패하여 노게임으로 처리되어 재경기끝에 조기에 승부를 확정지을수 있었다. 본선 2회전. 8강 진출 여부가 걸린 중요한 게임이다. 8강은 곧 상품을 받을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1차적인 최종 목표이다.
경기 진행 내내 경기장을 맴돌며 무한한 자신감을 뽐내며 여기저기 오지랖 떨며 간섭하던 아이가 상대가 되었다. 내심 그 아이의 자신감에 불안하기도 했지만 딱히 우리가 모자란 부분도 없어서 운과 확률을 믿기로 했다. 결과는 총점상으로 승리했고 마지막 역전 기회에서 확률이 우리편을 들어주어서 무난히 승리했다. 그 순간 무한 자신감에 들떠있다 16강전에서 완패하고 탈락한 우리 U20 월드컵팀을 떠올렸다면 나의 오버인가… 그렇게 목표했던 8강에 진입하여 소중한 상품 하나를 확보했다. 이제부터는 보너스다. 최선을 다하고 확률에 기대고 운을 믿자. 아이의 흥분도는 점점 올라가고 이제부터는 그것을 다스리는게 더 큰 일이다.
< 터닝메카드 배틀 장면, 출처 키즈스타 TV >
8강전, 가장 고비가 되었던 게임이다. 우리(내)가 세운 전략과는 반대로 총점에서 패하여 마지막 역전 기회를 노려야 했던 유일한 게임이었다. 확률은 우리편이 아니다. 슈팅. 운이 우리편이었다. 4강 진출 성공. 4강전은 상대방 아이 아빠가 실수를 하는 바람에 싱겁게 승리를 거두고 대망의 결승전에 진출했다.
지역대회이지만 결승전까지 올라왔다면 일단 상대방도 나름 관심과 경험과 전략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냥 지나가다 참가한건 아니다. 결승전은 단판 승부가 아니라 3판 2선승제이다. 결승까지 올라올줄 모르고 결승전 전략은 미리 세우지 못했다. 하지만 혹시나 모르기에 결승전 룰은 숙지하고 있었다. 우리의 전략은 3판에서 2연승으로 승부를 끝내는 것이었다. 마지만 판까지 가면 결국 운이 좋은 팀이 이기게 되어 있으니까.
결승 첫번째 게임, 작전대로 총점에서 압도적으로 이겨 승리를 확정짓고 마지막으로 승리를 확정짓는 아이의 마지막 슈팅만 남았다. 마지막 슈팅은 축구 경기로 치자면 골기퍼가 없는 상태에서 페널티킥을 차 넣으면 되는 것이다. 아뿔싸 연습게임, 실제 게임을 포함해서 한번도 실수를 하지 않았던 아이가 실수를 했다. 완벽한 승리 기회를 놓치고 연장전에 돌입해서 결국 지고 말았다. 0:1, 두번째 게임 역시 작전대로 총점에서 이기고 상대방의 역전 슈팅에서도 확률은 우리편이었다. 다시 아이의 승리를 확정짓는 마지막 슈팅. 아이가 또 실수를 범했다. 다시 연장전, 이번에는 우리가 이겼다. 마지막 결승 경기에서는 우리의 전략이 손쓸 여지가 없었다. 말 그대로 운이었다. 결승에 대비한 작전이 충분하지 않았었다. 총점에서 지고 역전 슈팅 기회. 확률과 운은 우리편이 아니었더. 상대방의 마지막 승리 확정 슈팅. 상대방 아이는 실수를 하지 않았다. 1:2 패, 준우승이 확정되었다. 작전대로 2:0 으로 쉽게 이길수 있었음에도 아이의 어이없는 연속된 실수로 아깝게 준우승에 만족하고 11만원 상당의 부상과 연말 챔피언십 대회 본선 자동 출전 시드를 받아왔다.
< 2016년 터닝메카드 배틀 챔피언십 대회, 출처: 손오공 공작소 블로그 >
결승전 시작전에 한번 더 아이의 흥분을 다독여야 했었다. 아이들은 연습대로 참 잘 따라 하지만, 한번 실수하면 같은 실수도 반복해서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도 목표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으므로 큰 불만은 없다.
장난같은 아이들의 놀이를 이렇게 자세히 복기해본 이유는 신태용 감독에 대한 나의 생각이 혹시 틀리지 않았냐는 우려 때문이었다. 결론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단기 승부에서 전략을 잘 세우는 것은 오롯히 감독의 몫이다. 당연히 책임도 져야 한다. 어린 선수들에게 자신감, 자만감, 흥분을 구분지어 불어넣는 것 역시 감독의 몫이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선수들의 역량 그대로 혹은 역량 이상의 성과를 이끌어내는 것 역시 감독의 역할이 크다. 그래도 어린 선수들과 잘 어울리며 유능한 감독으로 인정받고 있는 신태용 감독이 이번 기회를 토대로 더 성장하기를 응원한다. 아울러 손오공이란 회사가 레고 같은 세계적인 완구회사로 성장하길 주주로서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