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남해를 다녀왔다. 남해=남해도 라는 등식은 무의식속에 남아있다. 예전 교과서 표지에서 봤던 남해대교의 초라한(?) 모습도 확인했다. 사실 남해가 최근처럼 화제가 된 건 아마 몇달 전 한 중년 여배우의 남해에서의 일상이 전파를 타면서부터이다.
보리암이라는 독보적인 산중 사찰에서부터, 독일마을, 미국마을이라는 독특한 마을도 있다. 산중턱에 계단식으로 만들어놓은 논이 유명한 다랭이 마을, 독특한 특징과 모습을 가진 많은 해수욕장과, 사방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한려수도의 풍광이 온 섬을 수놓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리조트라고 하는 사우스 케이프도 한 켠에 자리잡고 있다. 사족을 달자면 배용준의 신행지이다.
그 많은 관광지 중에서도 꼭 가 보고 싶었던 곳은 바로 관음포이다. 임진왜란의 마지막 싸움인 노량대첩은 많이 알려졌으나 이충무공이 순국하신 곳은 남해대교가 놓여진 노량해협이 아니라 조금 떨어진 관음포라는 한적한 포구이다.
평일이라고는 하나 너무나 한적했고, 고요한 적막감이 감돌고 있었다. 방문 차량은 우리 뿐. 그 처절한 역사의 장소라고는 상상도 못할 고요 속의 평범한 바다였다. 한사코 도망치겠다는 왜적을 결코 살려보내지 않으려 했던 이 충무공의 걱정은 결국 300년 뒤 일본의 침탈로 이어져 걱정 아닌 현실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10여년 전, 부산에 있는 고등학교 모교를 방문했을때 가파른 진입로 입구에 서 있던 낯선 기념비를 보았다. 이수현, 일본의 전철역에서 술취한 일본인을 구하고자 철길에 몸을 던져 어린 나이에 죽음을 맞은 한국인이다. 그가 고등학교 후배인 줄은 까맣게 몰랐었다. 그 사건 이후 한국에 대한 일본인의 호감도는 급격하게 올라갔고 많은 일본 정치인들이 그를 기리며 숭고한 희생 정신을 기렸다.
그러나 결국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반성 없는 가해자의 공허한 말잔치는 결국 원점으로 돌아와 제 2, 제 3의 칼날이 되어 우리의 머리끝을 겨눌 뿐이다. 게다가 이에 동조하는 내부로부터의 적마저 우리를 절망에 빠뜨리고 있다.
이충무공과 이수현의 죽음의 의미. 지금 우리가 누구와 싸워야 하며, 이 싸움에서 왜 꼭 이겨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