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창(梅窓)
타고난시재와기예와인품으로시인묵객들의사
랑을받았으며인조반정의기수연평부원군이귀,
홍길동전의저자허균,위항시인촌은유희경등
과더불어시문과교류의정이깊었다.
등잔불그무러갈제,문풍지가떨립니다.
바람결이뒤돌아보는제생과어쩌면저리도닮았을까요.아무래도
이승이저를오래붙들어두지않으려나봅니다.박정한세월에떠
밀려천길낭애로떨어지듯수시로몸의고통이엄습합니다.바짝여
윈손가락에헐거워진가락지가안맞아요.조석으로이몸뚱이지탱
하기도버거워요.
지만내규방의안온함을한번이라도부러워한적없답니다.칼날
같은아스라한생을나는사랑하였더랍니다.
다.거문고를처음제게쥐어주시던아비의고의적삼자락이아직도
눈에선합니다.아비는한문과시문을익히게하셨지요.아비는시를
좋아하고거문고를잘타는숨은풍류객이셨습니다.어미는저를세
상에내놓은지석달만에산욕열로세상을버리셨으니아비는저에
겐둘도없는분이셨습니다.아전의옹색한자리에머무셨지만저에
대한애정은참으로각별하셨지요.핏덩이같은딸을애지중지손수
기르셨고세살적부터몸소거문고를배워주셨으며다섯살때부터
글을가르치셨습니다.
니다.가난하고궁벽한살림이었기에한때는남장을하여아비를따
라이곳저곳서당을떠돌기도했어요.남복을하면서구걸하듯글을
읽었지만자청하여글배우기를마다하지않았습니다.
내는듯한애끊는심정을저는거문고의가락에싣곤하였습니다.
창창한날소리는덧없이흐르는세월이었고가는비보슬보슬내리
는해저물어갈즈음소리는가없는그리움이었습니다.
시절가며느는것은상념뿐,생각은수풀처럼무성합니다.바라
보는꽃에도한숨일고제비소리에도옛시름자아낸답니다.
매화나무창가.
계생,계랑,향금,제가불리운많은이름이있었지만저는‘매창
(梅窓)’을사랑하였답니다.스스로매창이라불렀어요.찬바람,눈
발속에서이른봄온갖꽃들의선두로피어오르는매화의고결함과
품위를사랑하였답니다.창(窓)이란기다림과다름없지요.또한창
에는하늘이있고별이있고스쳐가는바람이있습니다.창은어쩌면
제가숨쉬며살아가는생명의호흡일지도몰라요.
수업을시작했던기억이떠올라요.근자엔앞날을꿈꾸기보단걸어
온길을되짚는시간이잦아졌답니다.노래와춤,그림과예악을배
웠지요.음률과가무,시화는제몸의일부였고흐르는피였답니다.
청풍유수,유유자적의삶을동경했어요.
어릴적부터버선만지길좋아했답니다.추녀의선처럼,
그럼에도첫정에이끌려저는서진사를찾아한양을향하였답니다.
냉정히닫힌대문앞에서제아둔함의끝을본뒤에야저는돌아설
수있었답니다.아,무슨회한이이리도굽이굽이이어지는것일까요.
하많은시절중어쩌면맨먼저제상념속을찾아오시는분.
나는푸르른소매걷고붉은치마여미어해기울어갈무렵대나무
울타리에기대고선여인,삶의슬픔을이미알아채버린여인의표정
으로정인을기다리는그시절의모습으로돌아간듯합니다
잔들어시름은풀곳없고
-정인(情人),묵재이귀前에
어르신께서저를찾아주시기까지저는줄곧자리에누워있었습니
다.뜬세상괴로움말하기도싫어져요.저는입에곰팡이가피도록
말을잃었고오랜시간을침상에서일어날수없었답니다.달포전
이었던가요?
당혹스러워손을뿌리치자이번엔억센손아귀로사정없이날끌었
습니다.어떤오기가발동한것일까요?순간취객의눈을뚫어지게
노려보았습니다.이따금씩뵈어낯이익던점잖은선비였습니다.취
기에기대어저를능멸함이견딜수없이분하였습니다.
저는한갓노류장화(路柳墻花)에불과한기녀가아니던가요?그날
저는끝내취객의손을뿌리쳤습니다.그바람에비단적삼이찢어졌
지요.찢어진비단적삼위에제눈물한움큼떨어졌답니다.그하얀
비단적삼은바느질솜씨가야무진업동네가이레전가져다준것을
그날처음입었더랬지요.내적삼하날아껴서그러는게아니었어요.
한바는아니었어요.선비의오랜시선을외면했던터이나잠잠히주
시는정에살픗고마움을느끼지않은것은아니었답니다.허나일개
해어화(기생)에게주는사랑이란고작적삼을찢어놓는욕망에불과
했던것이었을까요.
했답니다.객들은치졸하고품과격이낮은시로제마음을사로잡으
려했습니다.
있기는했지요.매창이라는이름하나에이끌려한양서먼변산의부
안까지발걸음을옮겨제게시를노래하던이도있었습니다.그러나
그또한나의뜻과정을얻을수는없었답니다.
평생에동쪽집에서먹는일배우지않고
오직매창(梅窓)에달그림자비침을사랑했지
시인은여인의맑은뜻알지못하고
부질없이뜬구름만잡으려하네
그러나여인네의소중한적삼자락이찢긴그날은어쩐지만사에염
증이느껴졌답니다.그날로저는문을굳게닫고자리에누웠던게지
요.모든회환이한꺼번에몰려왔더이다.그동안꾹꾹억눌려져있던
서러움이태산같이덮쳐들었더이다.떠나신지몇해동안소식돈절
한유희경이그립고미웠습니다.떠난정못이겨문닫고앉으니눈
물은속절없이소매를적시고서러움으로베개는마를날이없었더
랍니다.
저를찾으시던날직접가마를보내시어제손을잡아일으키셨지요.
고마운일이었습니다.
저의외로움과고적함을누구보다깊이헤아리셨던분.
내한번도이귀를온마음으로사랑하지못하였나이다.
있었답니다.마당의느티나무새잎을돋아내는것도,
네마음가는대로움직이거라.네몸을진정으로아끼거라.
입버릇처럼말씀하셨습니다.그럴때마다헤아릴길없는사랑에
굳이마음을쓰지말거라.어찌꽃잎포개지듯
뒷산은붉게물들고앞산은맑아
-문우(文友),교산허균前에
그날이생각나시는지요?첫만남에서우리는한나절시를노래하
고거문고를뜯었습니다.제가시한수자아내면미리내흐르듯유
유히이어노래를부르셨습니다.탄금소리가락가락마다직소폭포
물줄기소리와섞여졌지요.며칠동안내리던비로씻겨진산과나무
들에서촉촉한향내가감돌았어요.여름오후한나절은깊은정적속
에싸여있었고,우리들의시가(詩歌)는마치정중동(正中動)의세계
를가르는듯했어요.골짜기엔오로지계곡물소리와우리들의가락
만이흐를뿐이었지요.
나절의정밀감과평화가저를말할수없이행복하게했고우리가빚
어내는풍류는점입가경으로내달리곤했습니다.제나이스물여덟,
교산께선한창이신서른둘의나이셨습니다.
참으로인생을알고사람을알고예술과철학을,
정에파묻힌일없습니다.우리의관계가오래흘러도시들지않음은
항시일정한거리를유지하며서로를아꼈던까닭일까요?
다.제가관속에잠들었을때그누구보다깊이애달파할분이
그날은참흐렸어요.정유년에벼슬을내어놓고동작나루를건너
을만지작거리며한땀한땀바느질을시작했지요.빗소리는더욱
굵어지고이상하게도제심장은가볍게뛰곤했습니다.어떤예감때
문이었을까요?제남은일생을함께할,제정신의한부분을점령할
사람을만나기까지의두근거림이전조(前兆)처럼제게다가온것이
었을까요?
래로써주고받으며어울려즐기리라"호방하게웃으셨어요.훗날재
주있고정이많은여자라자주말씀하셨지요.성정(性情)이절개가
있고깨끗하여세상의어지러움에물들지않았다고말씀하실적마다
민망하기이를데없었습니다.
피했지요.그아이에게정성껏천침(잠자리를돌봄)할것을당부하
기를잊지않았습니다.운우의지묘한멋과풍류를아시던교산이아
니십니까.한때는풍류를넘치게즐기시어황해도사로있을때서울
의창기들을데려갔다가파직까지당했던교산이아니십니까.또한
그일을호탕하게껄껄웃으시며말씀하실수있는분이바로교산이
시지요.
락여미며물러나오는데뜰에활짝핀백일홍이어찌그리아름답던
지요.하마터면눈물이쏟아질뻔했답니다.
독처럼스며드는사랑……치명적인아름다움.
휘황한달밤의백일홍붉은잎잎은바로그것이었습니다.촌은유
희경을떠올렸지요.긴세월함께한시간은적었으되그그림자는
제평생을함께했답니다.
러나부드러운눈길은제마음을헤아리고계셨습니다.
교산께서는부안우반골을참사랑하셨지요.우반골정사암에서조
용히지내시던시절은제게도꽃봉오리맺히듯아름다운시절이었습
니다.이곳에서여생을보내고싶다말씀하셨지요.
교산께서저자거리와같은국문소설을쓰시다니요.허나탈고하신
직후제게보여주신홍길동전을읽고나서야저는비로소당신을이
해하게되었습니다.그심중에안은원대한이상과지향하는정치의
꿈을저는엿보았지요.그러나일순간소설속길동과달리혁명적
이상이좌절되지는않을까,이조선사회속에서당신의꿈이굴절되
거나소외되지는않을까하는염려가불안한예감과함께몰려오기도
했답니다.
제게참선을,자연을관조할것을자주말씀하셨어요.돌이켜보면
서른중턱을넘어서며저는줄곧당신의영향을지대하게받았습니
다.근래몇년동안제관심은오롯이깊은호흡속고요한내적합
일과자연과의친화에있었으니까요.십여년간더불어시를논하고
자연의무궁하고신비로운세계를이야기할때면우리도언제나자
연의일부가되어갔습니다.호방한정취를지니신분이라신선사상
에도꽤나경도되셨지요.
계(仙界)를꿈꾸기도하고불교적내세를희구하게도되니비록몸
은병치레가잦지만마음만은평온하답니다.순리대로가고오는,
멈추고흐르는자연에의탁하는제마음엔항시수국한송이탐스럽
게벙글고있답니다.
생각나시나요?천층암에올라천년사에서보낸가을을말입니다.
천층높은산위에자리한천년사.그곳엔상서로운구름이맴돌고구
름속으로난돌길을따라소롯한고찰에이르면풍경소리가정밀함
을더해주곤했어요.그대로신선의세계에오를것만같던순간들
이었습니다.맑은풍경소리스러지듯울리는가운데별빛달빛만비
처럼내리곤했어요.산이란산마다단풍들어가을소리로가득했구
요.구름에잠긴나무에선학이울고자욱한안개속에새벽달이희
미하고상서로운기운은온산에가득어리었습니다.천년사석탑에
기대면한세상시름도간곳없고무한한자연만이펼쳐져있었지요.
제손을잡으시며말씀하셨어요.매창아,이한순간을그대로사로잡
아등짐매고돌아가고싶구나.
간붉은먼지로신발이어지럽혀질것이라는것을.그즈음바로한
양으로올라가시어중국사신들을접대하느라바쁜나날을보내셨
습니다.사직은당신의재능을불러들였고광활하게달리는당신의
정치적꿈은시속을등진신선세계에만발을담그고있지못하게
했습니다.이곳부안에서몇달을사시다가은둔생활을버리고다시
벼슬에붙들린자신을몹시부끄러워하셨지만교산께선할일이,해
야할일이있으셨던겝니다.
봉래산가을빛이한창짙어가니돌아가고픈생각이문득문득난다
오.내자연으로돌아가겠단약속을저버렸다고매창은반드시웃을
거외다……언제라야이마음을다털어놓을수있으리까.종이를
대할때마다서글퍼진다오.
로난처한입장이되신교산께서저를오해하시고꾸짖는내용의서
신을보내기도하셨습니다.눈물이왈칵쏟아질정도로억울하고혹
독하게만여겨지던편지였습니다.그런데그서신의마지막구절에
담은당신의마음은참으로엉뚱하셨지요.
당신께선언제나서찰의마지막구절에서속절없이마음을풀어놓
곤하셨어요.문우(文友)로서우정과사랑을키워간지난십여년간
을떠올려봅니다.시간이흐를수록우리의내면은깊어지고부요해
져갔지요.지난삼여년간어쩌면저와가장가까이지낸분이아니
시던가요.
던……자신과,상대와,감정과,유혹과……그러나그것은아름다
운대결이었습니다.저만치떨어져있었기에더욱애틋하고간절한..
….
이화우(梨花雨)흩날릴제
-연인,촌은유희경前에
어젯밤꿈을꾸었어요.이녁은술한병손에쥐고한손에는매화
가지를들고계셨지요.마치아무일도없었던듯웃으시며제게다
가오셨어요.어질어질한기운으로부스스일어나이녁이건네는꽃
가지를잡으려는순간몸서리치며잠에서깨어났답니다.그리곤비
몽사몽간에혼곤한취기에싸여박명에닭이홰를치기까지몸을엎
치락뒤치락했지요.
생(유성룡)을돕겠다며떠나실적,이녁의두루마기뒷자락에비처
럼흩날리던배꽃을기억합니다.그한순간이억겁마냥까마득하고
아련하여순간심장이멈추는듯하였습니다.뒤도돌아보지아니하
시고성큼성큼큰걸음옮기시던이녁이밟는황토먼지가내려앉는
배꽃과뒤섞여분분하였지요.
붙잡을수있었겠습니까.사사로운정으로어찌이녁의마음을어지
럽힐수있었겠습니까.
연한심정어찌필설로이루다말하오리까.연지빛치자빛으로붉
어지고노랗게물들어가는강산앞에저는풀썩주저앉았더랍니다.
전쟁은그끝을알수없고인간사에아랑곳않고절로푸르러오고
붉어져가는산하에,절로드넓어지고높아져가는가을하늘아래제
수심또한날로깊어져갔지요.
이녁을뵙지못했을시절에도한양서시로유명하다는풍문을익
히듣고있었답니다.천민신분임에도그지극한효성과예론에밝
으심은자자한소문으로끊임없이들려왔지요.이녁은어려서부터
책읽기를즐겼습니다.모친께서오래도록병을앓으며출입을못하
게되자,변을볼때마다자리에다기저귀를대어서받아내었지요.
그리고동소문밖으로나가손수빨래를하며치마바위에다널어놓
은뒤그옆에앉아서하루종일책을읽곤했다는이녁이들려주시
는이야기에저는가만히그얼굴을응시하였답니다.온건하고자애
로운모습이봄바다같이잔잔하였지요.천민이었기에과거에나아
가벼슬을할수없었습니다.그러나기술을배워직업을얻기보다
는일찍부터시를기웃거리셨지요.많은사대부들과시를주고받았
으며그들이이녁을깊이사랑하였음은그순숙함때문이었을겝니
다.
났을당시제질문은너무당돌하지않았던가요?
"유희경과백대붕중어느분이십니까?"
지금도그순간을생각하면슬그머니옅은미소가번져요.
문재(文才)를접해보고싶어서였을까요?미천한출신이라는동병
상련의심정에의지하는마음때문이었을까요?혹은기예를시험해
보고싶어서였을까요?
야그누구에게호소하리이까.거문고옆에끼고외로운난새의노
랠뜯으며삼청세계에계실그대를멍하니그리곤할뿐이었습니다.
이팔의꿈을갓지난앳된제가불혹하고도여섯해를넘긴이녁
앞에납작하게엎디어제마음을송두리째던졌더이다.
저를계랑이라부르시며다함없는사랑과정을주셨던분.
내숨이붙어있는한내마음은오직촌은유희경뿐이었습니다.
장안의북촌에정업원(淨業院)이란명소가있지요.땅이외지고
산이가까이있으며,맑은샘물한줄기가바위사이로흘러내렸습
니다.그땅에다손수복사,살구네댓그루를심고는돌을쌓아작
은집을지으셨습니다.날마다그위에나와앉고는침류대(沈流臺)
라이름지으셨고요.오류선생(도연명)이부럽지않았지요.당대의
이름난시인재상들이그곳에모여들었고,침류대주인촌은유희경
의이름은온나라에알려졌습니다.
이일어나기전일본의정세를살피러갈때에이녁을데리고가고
싶어하셨지요.이름난선비허성께서이녁을사랑하심은각별하셨
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