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일4.마티스/모자를쓴여인
HenriMatisse(1869-1954)
처음에는파리에서법률을배웠으나화가로전향했다.
드랭블라망크등과포비즘운동을전개한그는장식적이고
현란한색채를사용하여독특한작품을창조했다.
제2차세계대전후인1949년,남프랑스니스의방스성당의
건축장식일체를맡아모든기법과재료를동원하여
그의예술의집대성을이룩하고니스에서죽었다.
FemmeauChapeau(WomanwithHat),1905,
"여인이쓰고있는모자가그렇게유치찬란하게요란한이유는?‘
‘여인의머리칼이왜한쪽은붉은색이고다른쪽은암록색인가?’
‘여인의얼굴에는실제로연보라색.녹색.파란색줄무늬가있는가?’
‘붓자국자체를두고보더라도그렇다.무성의하고성급하게아무렇게나찍찍칠해도되는가?‘
사물의외관에일반적인선입관부터들이대는보수적인살롱전展화가들에게
마치만화처럼보이는[모자를쓴여인]은그런비난을받아마땅했다. 그러나사물의색채는작가의주관적인해석을거쳐표현되며화면전체에구사한 각양각색의색채가전체적인조화를이루어또다른시각적즐거움을줄때, 그런효과의창출이야말로작가고유의독창성이다….
-본문44p.[파리화단을경악시킨현란한색채]중에서-
심한야유와비난에도이겸손한화가는누구처럼반박을아니하고 “어쩌다나의그림이시대를앞서가는사람들사이에서 다소인정을받기는했지만내마음에썩들지는않았다. 고통스러운노력의서막이오른셈이었다”고뒷날술회했다합니다. 법률사무소서기직을걷어치우고22세에미술에입문하여 85세로죽을때까지,마티스만큼동시대의모든시류를 겸허하게소화하며그시류를뛰어넘어자신의세계를 부단히개척한정력적인화가는없다고합니다. 오전8시에에서해질녘작업을마칠때까지 수도사같은규칙적인생활로일관했다고… ‘원색의마술사’란칭호는그외에누구에게도 붙여져서는안된다고작가는기술하네요 무슨색으로어떻게그렸냐가아니라색이가진 무한대의잠재력을화면으로끌어내기는 마티스전과후로나뉘어져야한다지요. 피카소가당대의유일한경쟁자로평생동안질투와 개인적으로피카소보다마티스를훨신좋아하는이유는 티없는동심,그리고틀에매이지않는 자유분방함을곳곳에서느낄수있어서입니다. 단순하고격식을무시하는듯한그의그림은 더러오해를사는경우도있지만
존경의갈등을한이유를조금은알것같으신가요?
성실한삶의자세와겸손함때문이기도합니다.
그리고무엇보다그의그림엔율동과음악,
처절한노력과생략을거쳐꼭꼭필요한
마지막몇가지만남기고탄생한작품은
선하나점하나가결코우연이아니란건
마티스를조금만좋아하면할수있지요.
그의모든그림을보고있으면예술가는
질서와윤리를초월해도된다는
은근한폭력을풍기지도않으면서
인생을마냥찌푸리며심각하게살필요가없다고
조근조근말하고있는것같아좋답니다.
윗그림은36세때포비즘(fauvisme,야수파)
화풍을막받아들였을때그린아내의초상입니다.
2004/04/20-참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