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아들에게보내는편지/김훈

아들아,사내의삶은쉽지않다.
돈과밥의두려움을마땅히알라.
돈과밥앞에서어리광을부리지말고주접을떨지말라.

사내의삶이란,어처구니없게도간단한것이다.
어려운말하지않겠다.
쉬운말을어렵게하는자들이이세상에는너무많다.
그걸로밥먹는자들도있는데,
그또한밥에관한일인지라하는수없다.
다만연민스러울뿐이다.

사내의한생애가무엇인고하니,일언이폐지해서,

돈을벌어오는것이다.알겠느냐?
이말이너무심하다고생각하느냐?

그렇지않다.
이세상에는돈보다더거룩하고본질적인국면이반드시있을것이다.

그런데얘야,

돈이없다면돈보다더큰것들이이루어질수있겠느냐?
돈없이입만을나불거려서인의예지이며수신제가를이룰수있겠느냐?

부否라!돈은인의예지의기초다.
물적토대가무너지면그위에세워놓은모든것들이대부분무너진다.
그것은인간의삶의적이다.
그런허망한아름다움은인간의삶을풍요롭게할수없다.

이것은유물론이아니고경험칙이다.

이경험칙은과거와미래에대해서공히유효하다.
돈없이도혼자서고상하게잘난척하면서살수있다고생각하지말아라.
아마그럴수도있겠지만,그러지말아라.

추악하고안쓰럽고남세스럽다.

우리는마땅히돈의소중함을알고돈을사랑하고존중해야한다.
돈을사랑하고돈이무엇인지를아는자들만이
마침내삶의아름다움을알고삶을긍정할수가있다.

주머니속에돈을지니려면어떻게해야하는가?
그대답은자명한바있다.
돈을벌어야한다.
우리는기어코돈을벌어야하는것이다.
노동의고난으로돈을버는사내들은돈을사랑할수있게된다.
돈은지엄支嚴한것이다.
아,’생의외경’,

이외경스러운도덕은밥벌이를통해서실현할수있다.

돈이있어야밥을먹을수있다.
우리는구석기의사내들처럼자연으로부터
직접먹을거리를포획할수가없다.
우리의먹거리는반드시돈을경유하게되어있다.
그런점에서우리의노동은소외된노동이다.
밥은끼니때마다온식구들이둘러앉아함께먹는것이다.
밥이란쌀을삶은것인데,
그의미내용은심오하다.

그것은공맹노장보다심오하다.

밥에비할진대,유물론이나유심론은
코흘리개의장난만도못한짓거리다.
다큰사내들은이걸혼돈해서는안된다.


밥은김이모락모락나면서,
윤기흐르는낱알들이입속에서개별적으로씹히면서도
전체적로서의조화를이룬다.
이게목구멍을넘어갈때느껴지는그비릿하고도매끄러운촉감,
이것이바로삶인것이다.
이것이인륜의기초이며사유의토대인것이다.

이세상이우리에게보여주는모든먹이속에는낚시바늘이들어있다.
우리는먹이를무는순간에낚시바늘을동시에물게된다.
낚시를발려내고먹이만을집어먹을수는없다.
세상은그렇게어수룩한곳이아니다.

낚시바늘을물면어떻게되는가.
입천장이꿰어져서끌려가게된다.
이끌려감의비극성을또한알고,
그비극과더불어명랑해야하는것이사내의길이다.

돈과밥의지엄함을알라.
그것을알면사내의삶의가장중요한부분을아는것이고,
이걸모르면영원한미성년자이다.
돈과밥위에서,돈과밥으로더불어삶은정당해야한다.

알겠느냐?
그러니돈을벌어라.
벌어서아버지한테달라는말이아니다.
네가다써라.

난나대로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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