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 가게주인을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글쓴이;최성은클래식음반점풍월당실장.

-칼럼’일사일언’중

3.가을이면생각나는그사람

해운대동백섬에짙은자주색의동백꽃들이쑥스럽게고개를내미는늦가을이었다.

조금은이른듯한검정겨울코트를입은아가씨가매장으로들어왔다.

두손은검정장갑으로가려져있었다.

피아노음악들이진열된곳에서열심히음반을고르고있는그녀에게커피한잔을권했다.

그녀는블랙커피로달라고짧게대답했다.

종이컵에담긴자판기블랙커피를들고그녀에게다가갔다.

그녀는장갑을낀채두손으로커피를건네받았다.

커피를받는그녀의손은심하게떨리고있었다.

느낌이이상해서고개를돌려봤다.

그녀는커피를음반위에쏟은뒤심하게당황해하고있었다.

그뒤에도그분은같은옷차림으로여러차례매장을찾아왔다.

올때마다유독피아노음반만구입했으며,항상블랙커피를마셨다.

그때마다떨리는손으로종이컵은늘불안해보였다.

그녀의방문이잦아지기시작한어느날,나는그녀를위해큰머그잔을하나구입해서매장에갖다놓았다.

손떨림이심한그녀를위해준비한것이다.

나중에그녀가피아니스트였다는사실을알게되었다.

몇달뒤,그녀는치료와공부를위해미국으로떠났다.

일주일쯤지났을까.

소포하나가도착했다.

거기엔러시아피아니스트를너무도좋아하던그녀가보낸

두장의음반과함께떨리는손으로쓴듯한짧은쪽지가있었다.

“당신이커피를담아준그큰머그잔을영원히잊지못할거예요.”

그날그녀가선물한니콜라예바의바흐와스비야토슬라브리히테르의슈베르트음반을종일들었다.

블랙커피를마실때마다검정장갑속의하얀손으로피아노를치는그녀의모습을상상하게된다.

블랙커피한잔에도,음악한곡에도우리의삶과사연이담겨있다.

G.B.Pergolesi-StabatMater

페르골레지-스타바트마테르

제1곡.Stabatmaterdolorosa

2중창그라베의슬픔을담은여린서주로시작하는데,2도위에서알토를

소프라노가뒤따르는음형으로[슬픔에잠긴성모는]을타이틀로노래한다.

4.어느날그녀가혼자왔다

중년부인은등산복차림이었다.

늘남편과함께매장에오셨고,남편은꼼꼼하게새음반을확인한뒤1~2장의신보를구입해서돌아가곤하셨다.

내가부산을떠나오기전까지부인은항상그렇게남편과함께음반매장을찾았다.
남편의일방적인클래식음악사랑으로티격태격하는여느부부의모습과별다름이없었다.

부인이보기에남편의음악사랑은병적인수준이었다.

그런남편에대한불만은그녀의표정만봐도짐작할수있었다.

남편이음반을고르는동안그녀는매장소파에앉아서주변사람들에게전화를걸었고,

남편이계산할때면짜증스러운표정을짓곤했다.

그러던어느날부터부부의모습이보이지않았다.

그리고한참만에부인이매장을찾으셨다.

중간에남편과사별했다는소문을전해들었다.

부인은겉보기에변함이없었지만,심경의변화라도있었는지혼자서매장을찾아와음반을구입했다.

어쩌면부인에게는남편이좋아했던음반과좋아하는작곡가는크게중요하지않았을지도모른다.

하지만허전한마음으로남편이좋아했던음반가게에서조금이라도

그마음을달래기위해매장을찾았을지도모른다는생각이들었다.

남편이그토록좋아했던선율과리듬에감탄하면서예전에느끼지못했던

남편의음악사랑을다시느끼고있을지도모르겠다.

남편이너무나사랑했고새로운음반이나올때마다무조건모았던음악은

페르골레지의‘스타바트마테르(슬픈성모)’였다.

부인도그사실을알고계셨을까,혹시알려드렸어야하지않을까.

그음악을들을때마다마음한구석에아쉬움으로다가온다.

2.할아버지원장님의브람스사랑

부산의레코드가게에서일할때,자주찾아오시는단골할아버지가계셨다.

산부인과원장이신그분은음반에대해웬만한매장직원들보다더많이알고계셨고,

빽빽하게메모된그분의음반들을찾다보면1~2시간이훌쩍지나가버렸다.

그분은오실때마다늘브람스의삶에대해이야기를해주셨다.

어느날원장님께서내게음반을하나선물하셨다.짧은메모와함께.

“브람스이야기를할때마다자네의그눈빛이너무도애절해서매장을찾을때면내마음이뿌듯했네.

클라라슈만이힘들때마다그녀의마음을달래주었던브람스의피아노3중주를들어보게나.

클라라는자신의슬픔이브람스의작품에녹아들어가있다는것을잘알고있었을것이네.”

이음반을들을때마다원장님을잊을수없었다.

짙은갈색니트를즐겨입으셨고,동그란뿔테안경,조금은느리고세련된서울말씨는포근한인상으로남았다.

하루는“이많은음반들을어떻게하시려고모으세요?”라고물었다.

원장님께선“우리딸과아들,손자손녀들이서로가지려고할걸.

훗날구할수없는귀한음반을들으면서얼마나행복해하겠어”라고하셨다.

그러던어느날전화가걸려왔다.“원장님께서얼마전에돌아가셨다”는말씀이었다.

이어서“집에처치하기곤란한음반들이쌓여있는데,싼값이라도좋으니처분해달라”고말씀하셨다.

며칠뒤매장옆오디오가게에서음반1장에1000원씩받고2만5000장을모두처분했다는말이들렸다.

그날퇴근후에‘브람스의회상’이라는찻집에서평소원장님께서

즐겨드시던레몬홍차를시켜놓고내내브람스를들었다.

그뒤로언제나가을이돌아오면조금은쓸쓸함으로브람스의음악을다시찾게된다

1.꿈을파는‘소리놀이터’

음반매장에서아르바이트를시작한것이10여년전이다.

첫월급을받은뒤일본에서수입된피아니스트글렌굴드의전집을집으로들고왔다.

밤새그의피아노선율에행복했던날이생각난다.

그전집가격은한달동안일했던아르바이트비(費)보다비쌌다.

어렵게구입한그음반은더이상수입이되질않았다.

어느날손님께서꼭구해달라고사정하는통에음반을그분께드렸다.

그때는내가‘음악의전도사’라도되는것처럼철없는사명감으로위풍당당했던것같다.

건전한도취감을안겨주고,음악에대한꿈을꾸게하는이‘소리놀이터’를어떻게떠날수있을까.

음반점에서일하면새음반주문과재고관리부터매장청소까지많은일이뒤따른다.

그가운데가장행복한일은사람들이좋아할만한음반을찾아내는일이다.

혹시보석같은음반을하나라도발견하면그기쁨은말할수없을정도다.

보물같은음반을하나둘씩모아서1만명이넘는고객들에게이메일로발송하는것도큰즐거움이다.

때로는사랑하는사람에게보내는연애편지처럼기나긴편지가되고만다.

때로는이스팸편지에도수많은답장이날아온다.

“폐반인줄알았는데다시나오는군요.정보감사합니다.”

“이제아기가돌이지났겠군요.얼마전배부른모습을보았는데.”

“지난달추천해주신음반을지인(知人)에게선물했어요.너무좋아하더군요.”

오늘도오전10시에음반점의문을열고거리를내려다본다.

바릴리4중주단과외르크데무스(피아노)가연주하는슈만의피아노사중주를듣는다.

나를통해음반을구입하신분들이그음악을오래오래뜨겁게기억하기를바라면서.

JorgDemus(1928~)Austrianpianist

연속이어듣기입니다(BWV846~BWV857)

J.SBach
TheWell-TemperedClavier
Book1PreludesandFuguesNos.1~Nos.12
BWV846~BWV857
JorgDemus,piano
(1953-1954Westminster)
P.S

어제수영한후샤워장나오면서눈에뜨인아크릴판엔

"물을아껴씁시다"

물을아끼는여자들은없는데…

효력상실한문구속에내가있다

빈집에들어와황동규죄찾아읽도록아무도안온다

불을끄고도어둠속에얼마동안
형광등형체희끄무레남아있듯이,
눈그치고길모퉁이눈더미가채녹지않고
허물어진추억의일부처럼놓여있듯이,
봄이와도잎피지않는나뭇가지

-황동규’더딘슬픔’중

……………….

쓰다만포스트마무리도못하고

아침에내가한일이라니…

그리고긴스타바트마테르

듣다말다…두남자시중들면서

…………….

음반가게주인을꿈꾸던시절이있었다

오늘은풍월당실장이부럽네

실컷음악듣고…

글재주있으면이런글이나쓰면서말이지

꿈은사라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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