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지처럼하늘이한칸씩
비어가고있습니다
그빈곳에맑은영혼의잉크물로
편지를써서
당신에게보냅니다
사랑함으로오히려
아무런말못하고돌려보낸어제
다시이르려해도
그르칠까차마또말못한오늘
가슴에고인말을
이깊은시간
한칸씩비어가는하늘백지에적어
당신에게전해달라
나무에게줍니다
수록작중투르니에의‘당나귀와황소’는성탄절을맞아읽기에좋은소설이다.예수가탄생한마구간에있었던당나귀의수다를통해당시상황을묘사한투르니에의입심이대단하다.투르니에는예수의탄생에담긴인간구원의메세지를되새기면서전세계소외된자들에게사랑의빛을던지자고문학의이름으로호소했다.
마르케스의단편‘사랑보다위대한죽음’은죽음앞에서도사랑을향한욕망을버릴수없는인간의초상을그렸다.업다이크의‘죽음을향한여정’은동년배친구의죽음을지켜보는중년남성의시각을통한삶과죽음의대면기록이다.겐자부로의‘이땅에버려진아이들’은삶과죽음의순환이라는동양사상을담백한필치로그려낸다.
서로멀리떨어져있는것같은예술과과학은사실닮은구석이많다.수학과시는궁극적으로보이지않는실재를탐구한다는점에서다르지않다.또예술과과학이서로영향을주고받는일도비일비재하다.예를들어19세기말피사체를찍어그대로기록할수있는사진이등장하자,화가들은사실을재현하는인물화나풍경화와는다른화법(畵法)을고민해야했다.예술과과학은우주와인간의진리를탐색할때선후가엇갈리기도한다.문학이나예술이발견한진실들이상당한시간이흐른뒤에과학적으로확인되고규명되는일도한두번이아니다. 이책은길게는100여년전예술가들이시도한창조적작업이훗날과학적으로입증된사례들을담고있다.더구체적으로는뇌의비밀,즉신경과학에관한것이다. 후기인상파의창시자인폴세잔(1839~1906)은식탁에놓인사과를오래도록바라보곤했다.화가로서그는눈(眼)으로만관찰하는건충분하지않다고믿었다.모네와르누아르,드가등인상파화가들은카메라가담지못하는시간의흐름을그리고싶어했다.그들이이용한건빛이었다.이를테면,기차가내뿜는연기가공기속에서어떻게퍼져나가는지를묘사하려했다. 그러나세잔은“생각할필요도있다”고말했다.그는우리가눈으로보는형태들이정신적산물이라는것을알고있었다.종종불필요하게추상적이라는비난까지받았던세잔의그림은시각의주관성,즉마음이현실을창조하는과정을보여준다. 이처럼눈에보이기전의세상이어떻게생겼는지를과학자들은나중에밝혀냈다.빛의신호는시작에불과했다.1950년대후반신경학자들은대뇌피질이어떤종류의시각자극에반응하는지실험했다.고양이망막에빛의점들을쏘는한편,V1으로불리는뇌영역(시각피질의첫단계)으로부터나오는세포전기를전기침으로기록하려했다.전압이감지되면세포가뭔가보고있다는뜻이었다.놀랍게도뇌세포들은빛의점들이아니라선들에반응했다.선들을이어붙인조각보같은세잔의그림들을떠올리게하는실험결과였다.
조나레러지음|최애리·안시열옮김|지호|384쪽|1만8000원
마음이현실창조하는과정보여준세잔등
예술가들의통찰이신경과학발전예고/박돈규기자coeur@chosun.com
소설가들에게서도과학적직관이발견되는경우가있다.프랑스의마르셀프루스트(1871~1922)의작품이대표적이다.천식때문에밖에나가기어려웠던그는기억안에서글감을찾았다.
‘…다시세모금째를마시자두모금째보다느낌이줄어들었다.이제그만할때가되었다.차는그마법을잃어가는것이다.내가찾는진실이찻잔이아니라내안에있다는것은명백했다.’(147쪽)
소설‘잃어버린시간을찾아서’에서과자마들렌(레몬즙으로향을낸버터맛쿠키)과함께기술되는이대목엔프루스트예술의진수가배어있다.두개골안에서우리감각들이어떻게상호작용하는지완전히알지못했던1911년,그는시각·촉각·청각과달리후각·미각은장기(長期)기억센터인해마조직에기록돼지워지지않는다는사실을통찰한것이다.프루스트에게마들렌은기억속으로들어가자신을탐구하는것을도와주는편리한도구일뿐이었다.
2000년에카림네이더등미국뉴욕대학의신경과학자들은회상하는행위가사실상사람을변화시키기도한다는것을가정한동물실험을했다.실험용쥐에화학물질을주사해두려운기억을회상하는것을차단하자기억의흔적또한사라졌다.회상할때마다기억의뉴런구조가조금씩변하기때문에,마들렌의본래맛에대한진짜기억에는영원히닿을수없는셈이다.
이책에서는과학보다먼저인간두뇌의비밀을통찰했던예술가8명이주인공이다.화가폴세잔,소설가마르셀프루스트와버지니아울프(1882~1941),시인월터휘트먼(1819~1892),작곡가이고르스트라빈스키(1882~1971),요리장오귀스트에스코피에(1846~1935)등이다.이들에게중요한영향을미친건당대의과학이었다.휘트먼은뇌해부서적을연구했고울프는정신병리학을배웠다고한다.예술과과학의결합이이따금얼마나위대한예술작품을낳는지에대한본보기다.
이책의클라이맥스는이고르스트라빈스키다.1913년그의교향곡‘봄의제전’이프랑스파리에서처음연주될때청중은격렬히저항했다.그들이기대하지도예상하지도않았던불협화음을들어야했기때문이다.
당시사람들은음악의아름다움이란불변의것이라고믿었다.으뜸화음으로마무리하는오케스트라의만족스런소리를귀에담고싶어할때,스트라빈스키는커다란북을쳐댄셈이었다.그러나이작곡가는한참앞서있었다.그는좋은음악이란정답이있는게아니라마음이만들어나가는것이라고생각했다.그리고새로운종류의음악에적응하는인간의능력을믿었다.
실제로신경학자들은훗날우리의음감(音感)은계속변한다는것을밝혀냈다.청각피질의뉴런(신경세포)들은우리가실제듣는노래와교향곡들에오늘도조금씩변경되고있다.우리뇌가자신을바꾸는능력이있음이밝혀진것이다.음악을“우리가알아듣는법을배운소음들의패턴”으로정의한스트라빈스키는시간이지나면‘봄의제전’도아름답고고전적인교향곡으로받아들여질것을알고있었다.결국그렇게됐다.
저자는콜럼비아대학에서신경과학을,옥스퍼드대학에서20세기문학과신학을공부한20대청년이다.그는예술이어떤과학보다우리의경험을잘설명해준다는데착안했다.이책속에서과학보다앞서인간두뇌의비밀에다가간것같았던여덟명의예술가들을살피는저자는과학과예술이통합되면종종유용한결과를낳는다는점을강조한다.과학과예술이거의접촉하지않고평행선을달리는우리문화풍토를돌아보게하는지점이다.
도서분류상‘신경과학’으로분류돼있다는게싱거울정도다.스트라빈스키의말을조금빌리면,이책은과학자들의뇌와예술가들의뇌를동시에공격하는음악이다.원제ProustwasaNeuroscien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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