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ur

그러기야하겠습니까마는
약속한그대가오지않았으면좋겠습니다
날을잊었거나심한눈비로길이막히어
영어긋났으면하는마음이굴뚝같습니다
봄날이이렇습니다,어지럽습니다
천지사방마음날리느라
봄날이나비처럼가볍습니다
그래도먼저손내민약속인지라
문단속에잘씻고나가보지만
한한시간돌처럼앉아있다돌아온다면
여한이없겠다싶은날,그런날
제물처럼놓였다가재처럼내려앉으리라
햇살에목숨을내놓습니다
부디만나지않고도살수있게
오지말고거기계십시오

화분/이병률

1

자주지도를들여다본다
모든추억하는길이캄캄하고묵직하다
많을델다녔으므로,많은걸본셈이다
지도를펴놓고얼굴을씻고,
머릿속을헹궈낸다
아는사람도,마주칠사람도없지만
그길에화산재처럼내려쌓인다
토실토실한산맥을넘으며,
온몸이젖게강을첨벙이다
고요한숲길에천막을친다
지도위에맨발을올려보고나서도
차마지도를접지못해마음에베껴두고잔다
여러번짐을쌌으므로여러번돌아오지않은셈이다
여러번등을돌렸으므로많은걸버린셈이다
그죄로손금위에얼굴을묻고
여러번운적이있다

2
깊은밤,나는
그가물을틀어놓고
우는소리를자주들었다
울음소리는물에섞이지않았지만
그가떠내려보낸울음은
돌이되어잘살거라믿었다

-내마음의지도/이병률

종이를잘다루는사람이고싶다가

나무를잘다루는사람이고싶다가

한때는돌을잘다루는이되고도싶었는데
이젠다집어치우고

아주넓은등하나를가져
달(月)도착란도내려놓고기대봤으면

아주넓고얼얼한등이있어
가끔은사원처럼뒤돌아봐도되겠다싶은데

오래울양으로강물다흘려보내고
손도바람에씻어말리고

내넓은등짝에얼굴을묻고
한삼백년등이다닳도록얼굴을묻고

종이를잊고
나무도돌도잊고
아주넓은등에기대
한시절사람으로태어나
한사람에게스민전부를잊을수있으면

-아주넓은등이있어/이병률

왼편으로구부러진길,그막다른벽에긁힌자국여럿입니다

깊다못해수차례스치고부딪힌한두자리는아예음합니다

맥없이부딪혔다속상한마음이나챙겨돌아가는괜한일들의징표입니다

나는그벽뒤에살았습니다

잠시라믿고도살고오래라믿고도살았습니다

굳을만하면받치고굳을만하면받치는등뒤의일이내소관이아니란걸비로소알게됐을때

마음의뼈는금이가고천장마저헐었는데문득처음처럼심장은뛰고내목덜미에선난데없이여름냄새가풍겼습니다(2006년)

-사랑의역사/이병률

출처;(한국인이애송하는사랑시31-조선일보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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