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법정 스님을 추모하며 – 박청수 원불교 원로교무

마르지않는산밑의우물山中친구들에게공양하오니

표주박하나씩가지고와서저마다둥근달건져가소서…

다실벽에걸려있는글귀를읽어보면서스님의다실에고여있는

한적함과청정함은스님의내면적투명함에연유하고있을것이란

생각이들었다

나는법정스님을지금부터꼭19년전에처음만났다.나는일행과함께불일암에당도하였음을어떻게알릴까하고서성거리고있었다.그무렵손수군불을지피고나서부엌문을열고나오던스님이아래채에서있는우리를보고"아!어서오십시오"하고반겨주셨다.한번도뵌일은없지만그렇게말하는분이법정스님임을멀리서도알수있었다.

"불일암에올때는미리송광사에전화연락을하라"는당부를지켰기때문에아마스님도불일암길손에대한전갈을받으셨음에틀림없었다.우리가묵을처소인아래채쪽마루에짐을놓고갖고온호접란을들고위채로올라갔다.스님은꽃부터반기셨다."내가LA있을때많이보던꽃이구나.멀리오느라애썼다"하시며꽃과대화하는사이나는매화나무곁으로갔다.아래채에서위채를올려다보았을때,정적속의불일암뜨락에피어있는매화는참으로그윽하고아름다워보였다.

‘매화가지에꽃망울이조금씩부풀어오르고댓잎이부서지는봄햇살이향기롭습니다.꽃가지에향기번질때쯤다녀가십시오’라는스님의편지를받고나선길이었다.겉봉에’순천91.3.4.’라는소인이찍혀있었다.나는시절을딱맞추어온것이다.내곁으로다가온스님은"얘들이겨울부터꽃망울을서서히부풀리면서참으로오랫동안망설이다가피었어요.그렇게오래망설였다피니까이렇게향기도좋은가봅니다"라고했다.스님은만개(滿開)한나무를가리키며"저것은이제혼이다빠져나가버렸어요"하면서허허로운미소를지었다.깨끗한얼굴의삽이서로등을맞대고걸려있었다.호미와괭이,쇠스랑,크고작은톱등스님의살림살이에소용되는연장들이아래채곳간안에질서정연하게자리하고있었다.

불일암사랑채뒤뜰에는작고예쁜항아리들이나란히묻혀있었다.저독속에는무엇이담겨있을까하는호기심때문에살며시뚜껑을열어보았다.그속에는빨간글씨로’열어보지마시오’라고쓰고다시그아래에검정글씨로’91년여름에먹을짠무지’라고쓰여있었다.불일암나그네들의버릇이비슷하기에스님이이러한조치를해놓았을것이라고생각하니웃음이나왔다.

불일암은자연의아름다움이우거진곳에정결과질서로조화를이루고있는곳이었다.그러나그정결과질서가스님의일상이라고생각하니잠시무서운긴장감까지느껴졌다.그모두는스님의자기자신에대한엄격함이었다.

‘수류화개실(水流花開室)’로불리는스님의다실에서그날밤차를마셨다.스님은전깃불을끄고운치있는촛대에촛불을켰다.그러나촛불의불빛이위아래로움직이는것을한동안바라보다"촛불도시끄러워"라고했다.그러고는말간기름이담긴하얀백자등잔위로살짝올라온가느다란까만심지에불을댕기고촛불을켰다.밝음의강도가한결낮아진방안은그지없이아늑해졌다.

일러스트=김현지기자gee@chosun.com
스님은이야기하는동안처음에는차향(茶香)이그윽한녹차를,두번째는구수한우롱차를,그리고세번째는홍차를내놓았다.차의종류에따라다기(茶器)도바뀌었다.

여러종류의차를음미하면서마시니차향과차맛이더욱

향기로웠다.

마르지않는산밑의우물

山中친구들에게공양하오니

표주박하나씩가지고와서

저마다둥근달건져가소서.

다실벽에걸려있는글귀를다시읽어보면서스님의다실에고여있는한적함과청정함은스님의내면적투명함에연유하고있을것이란생각이들었다.사람들은법정스님을’무소유의실천자’라고일컫지만나는그가자기자신에

대한엄격한관리자라는점에서무릎을꿇게된다.

내가불일암으로법정스님을방문했던1991년은히말라야설산에학교를설립하려애쓰던시절이었다.왠지친근한마음이들어얼마뒤설산학교설립의어려움을토로했다.그랬더니스님께서편지로"거들고싶다"고하시더니,내가있던원불교강남교당에오셔서100만원을내놓으시며"원고료요"하셨다.내가힘들어하는부분에대해서는"일을하고힘이남아있으면되느냐.큰일을했으면힘이드는것이당연하다"고위로해주셨다.

1997년길상사가문을열때스님은봉축위원에나를넣으셨다.그래서개원식날갔더니스님옆에김수환추기경님과내자리가있었다.아마도스님은종교의울타리를넘어추기경님을초청하셨고,남녀의차별도넘어선분이라나도부르셨던것같다.

스님은내저서’나를사로잡은지구촌사람들’에실린추천의글에서이렇게썼다."박청수교무님하면나는문득천수천안(千手千眼)관세음보살을연상한다.불교경전에나오는천수관음은두손과두눈으로는모자라천개의손과천개의눈을지니고한량없고끝없는구제를펼친다.종교의본질을한마디로표현한다면따뜻한가슴과자비의실천에있다."

스님의귀한격려말씀을세세생생실행할것을명심하면서스님의참열반을빈다.

Faure//Romancesansparole(무언가)op.17-3

4 Comments

  1. 도토리

    13/03/2010 at 05:23

    저절로두손이모아집니다.
    법정스님.
    ……   

  2. 揖按

    13/03/2010 at 05:31

    나는불교를믿지않지만절마당까지는갑니다.
    나는인도와중국의냄새와관습으로덧칠된부처는믿지않지만,
    그것들을벗겨낸뽀얀속살의우리"얼"이담긴모습은존경합니다.

    법정스님은속세의욕심에찌들은불교를넘어,깨끗하고무소유의불교를깨달으셨고,
    그가르침을위해서,모든불자들에게내가어떻게죽는지보라고일갈하셨는데
    과연그들이눈과귀를열고그말씀을안아들이기나할런지요…..
    원불교박교무님은감동적인말씀대로세세생생실행하시리라믿습니다.   

  3. 참나무.

    14/03/2010 at 00:15

    제가이래뵈두길상사초창기멤버였다우
    가난한절만들자…첫법문하실때부터
    추운날이불빨래오대산적멸보궁성지순례까지한…^^

    매달한번씩에서계절에한번씩주요기념일
    예를들면우란분절초파일동지…그이후점점뜸하시다가…결국…

    박교무님추기경님오셨을때도동석하셨고
    어느해초파일이었나이해인수녀님이’초록빛바닷물에두손을담그면…’
    동요부르고소녀처럼후닥닥들어가셨을때도뵈온기억이납니다
       

  4. 참나무.

    14/03/2010 at 00:15

    종교을초월하여언행일치모범을보여주신몇안되는심플한사표셨지요
    마즈막입적하시는모습까지명쾌하게…!

    아디다스멋쟁이신사얼바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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