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안진 시 몇 편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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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ekun Jang : Johann Kasper Mertz – Liebeslied

나는 사랑한다 유안진

넘어오는 언덕길로 옷자락이 보인다
아릿아릿 아지랑이떼
건너오는 다릿목께서 목소리가 들린다
귀에 익은 냇물소리

접어드는 골목마다 담장짚고 내다보는
개나리 진달래 덜 핀 목련꽃
바쁜 婚談이 오가기 전에 벌써
곱고 미운 사랑이 뿌린 눈물을
알면서도 시침떼는 민들레 피는 마을

나는 사랑한다
겨울 다음에 봄이 오는
어머니와 나의 나라
우리 마을을 사랑한다

구름의 딸이요 바람의 연인이어라 ( 시와 시학사 ) 발표년도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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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 속 악기 유안진

내 가슴 속 악기는
3월 버들피리
영혼보다 앞질러 흐르는
손금의 냇물소리

발톱 끝끝으로
전신을 가누어
천연색 춤 기다리는 봄꿈이여
묶을수록 향기로와지는
오직 그이름 사랑이여

내 아잇적
까까 머리 소년은
동화 속의 왕자되어
꽃수레로 납시는가
필릴릴리 고개 너머 필릴릴리

눈 안개로 젖으면서
실핏줄을 떨게 하면서
힌열 오르는 감기 몸살
내림굿을 시작하는가
내 가슴 속 악기는 -.

월령가 쑥대머리 ( 문학사상사 ) 발표년도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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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 유안진

이미 나는
깊푸른 이 바닷속에
몸을 던졌기로

아직도
나 살아 있더라고
누가 말할까만

서리서리 혼을 감는
젊은 형벌
죽음에 이르고 말
어지러운 춤을

황홀한 목숨의 마무리
그 하나를 노려

내 잠자리를
지하에 편다 해도

따라와 함께 누울
내 너를
어리리.

꿈꾸는 손금 ( 현대문학사 ) 발표년도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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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을 보며 유안진

남의 얼굴 같은
내 얼굴을 본다

어느 때는
피얼룩 말라붙은 수수이삭 콧잔등
또 어느 때는
허리 꺾인 갈대 같은

꽃을 이고 싶었던 가리마
목이 터져라 노래하고 싶던 입도
황토 흙가루 자욱한
달구짓길 둔덕

낯선 사람 보듯
내 얼굴 보면
남의 음성 같은
내 목소리 들린다.

노래이면서 노래일 수 없고
울음이면서도 울음이 분명한
남의 소리같이
귀에 설은 내 목청

거울아 요술거울아
내 얼굴을 돌려다오.

월령가 쑥대머리 ( 문학사상사 ) 발표년도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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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 오래된 목련은 언제 벙글어질까

떨어져 누운 꽃잎, 흔적조차 없는 날 생각하면

기다리는 이 시간이 더 좋다.

봄은 어디쯤 오고 있을까

길 다방 좁은 화단, 매화 가지툭 잘라다 꽂아 놓은

모르는 사람 마음엔 이미 와 있을까.

요즘 일찍 집을 나서면 할머니 엄마 손잡고 호기심

가득 담은 눈을 한 아이들을 자주 만나는 일이 즐겁다

저들이 한 세상 살 때까지 이 지구는 무사할까

조선걱정 가끔은 하면서 그들 곁을 지나다닌다

오늘도 빨리 나가봐야겠다

6 Comments

  1. 산성

    08/03/2011 at 12:02

    봄꽃, 흔적조차 아니보이는
    그래서 그냥
    ‘마음으로만 꽃길 내며’ 멀~리 다녀왔습니다.

    봄은 어디메쯤…
    꽃 없어 텅 비어있는 길목도 별로 나쁘지 않았어요.

    ‘오늘도 빨리…’
    어딜 다녀오셨습니까.^^

    잔잔한 음악이 참 좋습니다.

       

  2. 참나무.

    08/03/2011 at 13:13

    서해여행기 기대합니다
    온x 어디라는 서해안 지방 무슨 시가 있는 데
    하루종일 생각해도 기억이 안납니다.
    그 곳에 혹시? 해서…아니면 왜목?
    노을 속에 서 계시는 모습 상상해봅니다

    클래식 기타 참 좋지요
    풍월당 쇼케이스에 다녀온 이후 좋아하게된 장대건

    오늘 초처녁에 초사흘달 보셨나요 – 전 제대로 봤습니다
    아마 산성 님도… 막 이러며…^^   

  3. 소리울

    08/03/2011 at 21:28

    이성자 그림ㄴ을 만나고 오는 서울 동창회장의 승용차 안에서 초사흘 달을 보았지요.
    이 달도 참으로 바쁘겠네요.
    길에서 초사흘 달을 보았으니..
    그날은 좀 서울나들이를 할까 하는데 어쩔지 미지수인긴 하네요   

  4. 참나무.

    08/03/2011 at 22:34

    초사흘 달 앞에 형용사가 많기도하네요…^^
    동분서주, 그리 바쁘면서…서울행, 넘 무리말길 바래요

    유안진 – 몽타주를 그리다
    다시 펼쳐 읽다… 필사가 힘들어서 그냥 …요담에…^^
       

  5. 겨울비

    09/03/2011 at 22:08

    종이꽃 만들어 화단의 새순 돋는 줄기에
    붙여놓은 듯…
    저리 꽃피는 봄인데요.
    우리집 꽃밭은 아직 겨울잠 자고 있습니다.
    주인 닮아 길어지는 겨울…   

  6. 참나무.

    09/03/2011 at 22:23

    맞아요 꼭 그랬어요 좁은 화단…
    그래서 어제 부러 확인도 했답니다…^^

    길이 어긋났네요…서로
    오늘은 날씨가 좀 풀린데요 – 3.1도 서울 현재 날씨…^^

    브람스 취해있을 시간에 난 뭐하고있을까…
    (주황색, 꽃이름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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