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 영혼을 위하여
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겨울 사랑 고정희
그 한 번의 따뜻한 감촉 단 한 번의 묵묵한 이별이 몇 번의 겨울을 버티게 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벽이 허물어지고 활짝 활짝 문 열리던 밤의 모닥불 사이로 마음과 마음을 헤집고 푸르게 범람하던 치자꽃 향기, 소백산 한쪽을 들어올린 포옹, 혈관 속을 서서히 운행하던 별, 그 한 번의 그윽한 기쁨 단 한 번의 이윽한 진실이 내 일생을 버티게 할지도 모릅니다
그대 생각 고정희
그대 따뜻함에 다가갔다가 그 따뜻함 무연히 마주할 뿐 차마 끌어안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대 쓸쓸함에 다가갔다가 그 쓸쓸함 무연히 마주할 뿐 차마 끌어안지 못하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어떤 것인지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내가 돌아오는 발걸음을 멈췄을 때, 내 긴 그림자를 아련히 광내며 강 하나가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거리에서 휘감고온 바람을 벗었을 때 이 세상에서 가장 이쁜 은방울꽃 하나가 바람결에 은방울을 달랑달랑 흔들며 강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이후 이 세상 적시는 모든 강물은 그대 따뜻함에 다가갔다가 그 따뜻함 무연히 마주할 뿐 차마 끌어안지 못하고 돌아서는 내 뒷모습으로 뒷모습으로 흘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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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
22/03/2011 at 19:33
지금 시간에…음악은 못 듣겠고
왜 이러십니까…;;
홍역같은 고정희 시인의 詩들…
그 한 번의 그윽한 기쁨
단 한 번의 이윽한 진실이
내 일생을 버티게 할 지도 모릅니다…
‘이윽하다’란 말 참 이쁘지요?
(느낌이 은근하다 또는, 뜻이나 생각이 깊다)
할수 없이
젊은 글렌 굴드와 새벽커피 한 잔…
참나무.
22/03/2011 at 22:08
…먼저 시작하셨잖아요…
이름만 들어도 무너져 버리는 사람
용기없어 더 야한 시는 못올리고 …
다른 분이 올려주시기만 바랄 뿐
산성
23/03/2011 at 09:51
바람결에 은방울을 달랑달랑…
그렇게 강물속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이쁜 은방울꽃 하나!
아까운 시인…
푸른
23/03/2011 at 13:02
흐~
은방울 꽃말은 …행복이라네요.
참나무.
23/03/2011 at 16:04
근데 왜 인상을 쓰셨나요…ㅎㅎ
이 연주 좋지요
김선욱 앵콜곡으로 듣던 기억이 있어 자주 듣게되네요
푸른
24/03/2011 at 00:54
어! 한줄로 긴시의 뎃글 없어졌네유…
흐~ 저 얼굴은 제눈엔 짖궂은 장난꾸러기 얼굴로 보이는데요?^^~
물론 음악 좋구요…밖이 차가워서 얼른 화분에 물주고 청소 다끝내고 들어앉았어요.
이제 커피 한 잔 해야겠군요.
참나무님도 유쾌한 하루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