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전광영, 베르나르 뷔페 &…

바닷가에 매어 둔
작은 고깃배
날마다 출렁거린다.
풍랑에 뒤집힐 때도 있다.
머얼리 노를 저어 나가서
헤밍웨이의 바다와 노인(老人)이 되어서
중얼거리려고.
살아 온 기적이 살아 갈 기적이 된다고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고.

– 어부(漁夫) 김종삼(金宗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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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많고 많은 작가, 그 중 옛 종이로 조각 만드는 단 한 사람

[중앙일보]입력 2011.05.25 00:38 / 수정 2011.05.25 00:49htm_20110525004916a000a010-001.jpg

“20대 못잖은 에너지가 샘솟는다”라며 웃었다. 한지작가 전광영(67). 고서(古書) 종이로 수천, 수만 개의 크고 작은 스티로품 조각을 보자기처럼 싸서 평면과 설치로 작업한다.

스스로 “전세계 1억 명 작가 중 비슷한 작업이 전혀 없다”고 자신한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 지명도도 높다. 2009년 일본 모리아트센터 초대전에 이어 올해만도 미국 코네티컷 얼드리치 현대미술관, 녹스빌 미술관 등에서 순회전을 갖는다.

뉴욕 맨해튼 유엔본부의 한국 유엔대표부 메인 로비도 장식했다. 내년에도 중국·독일 등 세계 6개 미술관 순회전이 예정돼 있다. 1년에 2~3개월을 외국에 나가있을 정도다.

 그가 다음 달 1~30일 서울 신사동 갤러리현대 강남에서 개인전을 갖는다. 2007년 이후 작업한 예의 ‘집합(Aggregation)’ 연작을 선보인다. ‘집합’은 그가 한지로 작은 조각을 싸고 그것을 쌓아 올리는 과정에서, 우리의 얼과 한국의 정신을 함께 쌓는다는 작품 철학에서 나온 것이다.

“1968년 홍익대 미대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갔을 때, 그 수많은 서양작가들 틈새에서 나는 과연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절망했습니다. 그때까지 했던 추상미술로는 안되겠다 싶었어요.”

 방황은 귀국 후에도 이어졌다. “나는 누구인가에 답하지 않는 작품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시각적 독창성에 작가의 철학, 자신만의 스토리가 녹지 않고서는 혹독한 현대미술의 경쟁에서 설 땅을 찾기 힘드니까요.”  그는 아내와 함께 2년간 전국 방방곡곡을 여행했다. 나를 찾는 여행이었다. 온양민속박물관은 30차례나 들렀다. “어느 날 강원도의 한 민속박물관에 들어서는데 갑자기 웅성대는 소리가 들려요. 전시된 농기구와 생활소품 사이로 조상들의 밭 가는 소리, 아낙네들의 떠드는 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온 거죠. 그 때 무릎을 쳤습니다.”

 어린 시절 한약방을 하는 큰할아버지 집에서 보았던 한약봉지 이미지도 겹쳐졌다. “답은 한지였습니다. 전국의 고서점을 돌면서 내다버린 고서적들을 모았어요. 천년 넘게 끈질긴 생명력을 보이는 한지, 그 글귀 안에는 조상들의 삶의 흔적, 역사와 정신이 담겨있죠. 그걸 보자기처럼 쌌습니다. 서구의 선물상자가 딱딱하게 고정된 거라면 우리 보자기는 무정형의, 넓은 포용력으로 대상을 품어내는, 정(情)의 상징이기도 하고요.”

 그렇게 나온 그의 한지 작업은 90년대 중반 비로소 큰 호응을 얻었다. 한지를 일일이 손으로 싸고 천연염료로 물들이는 수공에 사람들은 혀를 내둘렀다. “지금은 해외에서 러브콜도 많이 받지만 화업 50여 년 동안 고통도 많았습니다. 미국 유학 중에는 2번이나 자살을 생각했고요, 95년까지는 인사동 화랑 대관조차 거절당하는 무명이었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단거리 주자가 아니라 마라토너”라고 했다.이제야 작품에 대한 응어리가 풀리고, 제가 갈 길이 보이고, 창작열이 더욱 넘칩니다. 서구 화단에서는 2년에 한번씩 작품에 변화가 없으면 죽은 작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변해야죠.”

 그는 이번에 색채의 다양화, 화면구성의 다양화로 변화를 줬다. 10만개의 한지 조각을 거대한 탑처럼 쌓아 올린 설치 *집합09-SE 056 은 관객을 압도한다. “고뇌하는, 평화 없는 현대인의 두상(頭象)”이라고 소개했다. 한지작업을 위해 미리 고서적 2만5000권을 확보하는 등 전략가적 풍모도 드러내는 그다. 26일 개막하는 홍콩 아트페어에서는 무라카미 다카시·리우 웨이 등과 함께 퍼블릭 스페이스 작가로 선정돼 대형 설치작업을 선보인다. 02-519-0800.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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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합09-SE 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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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숙

2,3층엔 K옥션 새로운 작품들도 전시중이다

갤러리 현대 강남점 직원들 모두 친절하다 – 갈 때마다 느끼지만

촬영 허락받은 김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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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로 생을 마감한 베르나르 뷔페

강한 텃치가 독특하여 좋아하는 화가라서…

오래 전 영인문학관에서 열렸던 한국 문인 육필 展에서

김종삼 시인 육필을 보고 베르나르 뷔페 를 연상한 적이 있었다.

더 오래 전 * Dr.Park 갤러리 에서 만난 이후 그냥 좋아

-*신발 벗고 들어간 유일한 갤러리, 양평 이전 후엔 한 번도 못가다니

지난 토요일, 자살 때문에사랑을 쟁취하고 생을 마감한 오페라베르테르랑

자살 꿈꾸다 다시 일어나 늦게라도인정을 받은 전광영

끝내 자살해버린 뷔페 작품 앞에 오래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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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열 물방울이 특히 많았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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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처음 만난 데미안 허스트 물방울 그림을

바탕이 금색인 게 특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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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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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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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태 인 줄 알았는데 심인자. . . 그리고 단 한 작품 피카소 도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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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품은 무한에로의 통로이며 그 문이다 – 이 우환

따로 작은 방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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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익중 화백의 해피랜드 – 조각 하나는 미간 사이즈

이런 아이디어도 참 기발나다 아침마다아틀리에 가면서

지하철 안에서도 그릴 수 있으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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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큐레이터랑 진주성 지도 병풍 앞에서

진주 출신 박생광화백 얘기하고 있는데

어떤 남자분이 말을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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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회사가 진주로 이전하여 그 곳에서 살게 되었노라고

웬지 낯익다 싶었는데 풍월당 쇼핑백을 들고 있었다.

(. . . . . .)

– 그래서 풍월당에도 전시장도 혼자 다니세요

– 아무도 같이 갈 사람이 없어서요 마누라도 친구도 모두 거절합니다

– 거절 당하면 제 전의까지 상실하여 , 저도. . .

200% 공감하는 듯한 표정이다

늙으면 편하다

외간남자랑 말도 술술 잘 하고, 고향 진주 때문인진 몰라도

안병석 ‘바람결’ 작품 찍는데 잡혔길래. . .

123.JPG <– 제일 마지막으로 본 작품,

그리고 서울숲에서 불타는 양귀비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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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동 화백 그림 모델들과 좀 놀다

아차! 아마릴리스 궁금하여 급히 집으로…

우엣건 꽉 채운 토요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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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방 비운 후 내 책상이 하나 생겼다

이제 자방침 꺼내고 넣고 안해도 된다

주일은 교회다녀온 후 계속 바느질만 했다

노는 것도 재밌지만

적당히 피로한 생산적인 일에 비하랴.

4 Comments

  1. 김진아

    30/05/2011 at 08:53

    베르나르 뷔페의 그림이 자꾸만 잡아 끄네요.

    그림 속 집안..어딘가, 이야기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서.ㅎ

    노크하면 열어줄것 같기만 해서요. ^^

    참나무님…

    고맙습니다. *^^*   

  2. 참나무.

    30/05/2011 at 12:18

    자살로 사랑을 얻고 행복하게 죽어간 마스네 오페라 베르테르
    자살을 두 번이나 꿈꾸다 늦게라도 인정받는 전광영 작가
    자살로 더 유명해진 뷔페…

    이런 저런 잡생각 때문에 그림 앞에 오래 서 있었나봅니다
    오래 전에 뷔페 그림들 많이 올렸는데 대부분 배꼽만 내밀고있네요
       

  3. 소리울

    30/05/2011 at 14:15

    구경한 번 잘 했소. 촌놈은 이리로 밖에 구경할 수 없다오   

  4. 참나무.

    31/05/2011 at 00:19

    더 좋은 바다 안고사는 사람은 투정할 자격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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