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온 뒤
빗방울 무늬가 무수히 찍혀 있는 산길을
느릿느릿 올라갔다
물빗자루가 한나절 깨끗이 쓸어놓은 길
발자국으로
비질한 자리가 흐트러질세라
조심조심 디뎌 걸었다
그래도 발바닥 밑에서는
빗방울 무늬들 부서지는 소리가
나직하게 새어나왔다
빗물을 양껏 저장한 나무들이
기둥마다 찰랑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비 그친 뒤
더 푸르러지고 무성해진 잎사귀들 속에서
젖은 새 울음소리가
새로 돋아나고 있었다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빗방울 길
돌아보니
눈길처럼 발자국이 따라오고 있었다
– 빗방울 길 산책 / 김기택, 소 , 문학과지성사, 2005
(중략…)
김기택(51) 시인은 소에 관한 시를 네 편 썼다.
꾀는 파리를 쫓아내지도 못하는 무력한 소,
무게를 늘리기 위해 강제로 물을 먹인 소,
도살되는 순간 바람이 빠져 나가서 빈 쇠가죽 부대가 되어버린 소에 대해 썼다.
시집 ‘소’의 표제작인 이 시는 소에 관한 그의 네 번째 시이다.
전작들이 소의 비극적인 몸에 관한 시라면 이 시는 소라는 종(種)의 역사를 바라보는 시인의 슬픈 시선이 있다.
한마디의 말도 사용할 줄 모르고 다만 울음이 유일한 언어인 소.
오직 끔벅거리고만 있는 소의 눈.
우리가 최초에는 가졌을 혹은 오히려 우리를 더 슬프게 내내 바라보았을 그 ‘순하고 동그란 감옥’인 눈.
당신에게 내뱉으면 눈물이 될 것 같아 속에 가두어 두고 수천만 년 동안 머뭇거린 나의 말….
김기택 시인의 시는 무섭도록 정밀한 관찰과 투시를 자랑한다.
그는 대상을 냉정하고도 빠끔히 묘사한다.
그는 하등동물의 도태된 본능을 그려내거나 사람의 망가진,
불구의 육체를 고집스럽게 그려냄으로써 역설적이게도
생명이 고유하게 가지고 있던 생명의 ‘원시림’을 복원시켜 놓는다.
시 ‘신생아 2’에서 ‘아기를 안았던 팔에서/ 아직도 아기 냄새가 난다/ 아가미들이 숨쉬던 바닷물 냄새/ 두 손 가득 양수 냄새가 난다// 하루종일 그 비린내로/ 어지럽고 시끄러운 머리를 씻는다/ 내 머리는 자궁이 된다/ 아기가 들어와 종일 헤엄치며 논다’ 라고 그는 노래했다. 이런 시를 한껏 들이쉬면 어지럽고 시끄럽던 머리가 맑아진다. 선홍빛 아가미가 어느새 새로 생겨난다.– 시인 문태준 / 입력 : 2008.02.12 00:07 출처; chosun.com
제 블로그에도 김기택 검색창에 올려보니 꽤나 많은 포스팅이 있네요
비 온 뒤 . . .문태준 시인의 해설이 와 닿는 아침입니다
청담시 낭독회가 일주일 남았네요
사진들도밤 새 비 온 뒤 새벽, 지리산-청학동
그냥 대고 누른 것들, 부끄럽지만
남깁니다 기억하고싶어
어제 듣던 샤프란과. . .
겨울비
08/06/2011 at 23:23
새벽에 깨어 먼 곳의 아이에게 전화를 걸고
태아의 잠을 펼쳐 읽었어요.
초기 시도 크게 다르지 않았구나 하며…
맨 위 사진이 좋아요.
라흐마니노프 주간이라 합니다.
산성
08/06/2011 at 23:51
아무래도 선홍빛 아가미가 필요해요.
숨 좀 쉬게 말이지요.
김기택 시인의 시를 많이 읽어야…?^^
순하고 동그란 감옥…에서 내다보는 세상
어떨까요…음악에 마음을 올려 둡니다.
참나무.
09/06/2011 at 10:59
비 오면 생각나는 사람…
시인의 눈을 직접 보면 많은 생각이 날 것같아요
라흐마니노프랑 잘 젖어드는 것 같지요 샤프란 연주는…
참나무.
09/06/2011 at 11:00
달, 별보면 생각나는 사람…^^
오늘은 귀한 라이브 편히 즐감하고 왔네요
…
연주자도 프로도 아니어서 참 행복했던…
summer moon
09/06/2011 at 22:06
참나무님이랑 커피 마시고 싶어져요 !!!!!!!ㅠㅠㅠ
참나무.
09/06/2011 at 22:58
오래 머무르셨네 …
따라다니며 답글 달기 재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