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너 마주친다 해도 가끔 젖은 천장의 얼룩이 벽을 타고 번져와 대접만 한 모란이 소리 없이 피어나 길모퉁이 무너지며 너 껌벅이다가 – 최정례 4번째 시집 레바논 감정 10 ~11p 당신은 찔레 가시 속에 있었지요 찔레 덤불 앞에서 이쪽으로 눈길을 주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요 찔레 덤 불과 나 사이엔 조붓한 길이 굽어 산을 오르고 등 뒤 로는 산골짝 물이 요란하게 뒤집히며 흘러가고 나는 당신을 똑바로 못 보고 비스듬히 찔레 덤불만 보는 척 하고 아니 나는 당신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고 모른 척하고내가 당신의 가시에 오 래 찔리고 있었다는 걸 전해야 하나 어쩌나 그러다가 다 흘러갔지요 그러다가 당신의 눈 당신의 귀 당신의 이마 온통 찔레 가시덤불인 채로 두고 어느 날 보니 나는 멀리도 흘러왔겠지요 말똥구리 소똥구리 말똥을 굴리며 엎어지며 고꾸라지며 들판을 건너가고 불 켠 차들이 요란하게 흘러가는 거리를 지 나가고 있겠지요 가뿐 숨을 내쉬다 검은 눈을 껌벅거 리다 이내 눈을 감겠지요 달리는 구급차 속에서 어딘 가로 가기는 가는데 큰 강에 이르기도 전에 세상에 찔 레 덤불 기억조차 없고 이따금 자잘한 꽃잎 떠내려오 지만 아무것도 모르겠고 따끔따끔한 이것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고 찔레 가시덤불 同 詩集 14~15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