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노래-박영남 개인전. 6.7~7.1/가나아트센타

어디론가 갈 곳이 있어
달리는 바퀴들이 부러웠다.
앞만 보고 질주하다
길모퉁이에서 부드럽게 꼬부라지는
빨갛고 노란 불빛들이 부러웠다.

비에 젖은 8차선 대로는 귀가하는 차들이 끊이지 않고

신호등을 읽었다면,
멈춤 때를 알았다면,
나도 당신들의 행렬에 합류했을지도 … ….

내게 들어왔던, 내가 버렸던 삶의 여러 패들은
멀리서 보니 나름대로 아름다웠다.

하얀 가로등 밑의 물웅덩이에 빗방울이 떨어져
보석 같은 빛을 탁탁 튀기며
지루하지 않은 풍경을 만들고
번쩍이는 한 뼘의 추상화에 빠져
8월의 대한민국이 견딜 만한데
이렇게 살아서, 불의 계절을
살아남아서 다행이라고
비 오는 밤을 젖지 않고
감상하는 방을 주신 신에 감사하며,
독한 연기를 뿜었던 입 안을 헹구고
내 밑에서 달리는 불빛들을 지웠다.

지루하지 않은 풍경-최영미 도착하지 않은 70p. 문학동네(2009)

002.jpg

가지 말라는
길을 갔다

만나지 않으면 좋았을
사람들을 만나고

해선 안 될
일들을 했다

그리고 기계가 멈추었다

가고 싶은 길은 막혔고
하고 싶은 일은 잊었고

배터리가 나갔는데
갈아끼울 기력도 없다

청개구리의 후회 同 시집 82.p

Landscape against Blue Sky, 250x400cm, Acrylic on canvas, 2012

자연의 풍경을 추상으로 그려내는 박영남 화백의 6년만의 가나아트센터 개인전

가나아트는 핑거 페인팅으로 유명한 추상화가 박영남(b. 1949-)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2006년 개인전 이후 6년 만에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달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달빛을 기다리는 고매하고 순수한 작가의 내면이 반영된 근작 50 여 점이 출품된다.

제 3 회 김수근 미술상을 수상하기도 한 박영남은 서울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뉴욕시립대학에서 석사학위를 수여하였으며, 1970년대부터 국내외 개인전 및 단체전에 꾸준히 참여하며 한국 추상회화의 계보를 잇고 있는 작가이다.(중략…)

캔버스라는 대지(大地)에 손 끝으로 전하는 예술가의 직관: 핑거 페인팅

박영남은 캔버스 위에 물감을 붓고 붓 대신 손으로 그림을 그린다. 수용성인 아크릴 물감은 15분이 지나면 마르기 시작하여 30분이 지나면 굳어버리기 때문에 작업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작가는 순간의 직관에 의지하여 캔버스 위를 움직인다. 문명의 도구를 거부하는 예술가의 이러한 몸짓은 원초적 표현의 경지인 동시에, 관객들로 하여금 시각뿐 아니라 촉각의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며 자연스러운 상호 교감을 이끌어 낸다.(중략…)

그윽한 달빛 아래 분출되는 색채의 서정적 심상: 달의 노래

박영남은 자연조명 아래에서 작업한다. 작가에게 있어 평생의 화두인 ‘흑과 백’은 자연광 아래 광활한 캔버스에서 더없이 숭고하게 빛난다. 물감의 중첩에 의해 완성된 ‘흑과 백’ 안에는 무한한 색의 스펙트럼이 내재하는데, 이러한 색의 향연을 경험하는 것이야말로 작가가 말하는 ‘자연의 색채’가 ‘경험의 색채’로 거듭나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일 것이다.

때로 작가는 내면의 질서를 깨트리고 색채에 대한 본능적 욕구에 따라 작업을 하기도 한다. 마치 넓은 대지를 더듬어 나가듯 물감을 발라나가는 작가는, 감각적 색채로써 작품에 충만한 기운을 불어넣는 조물주가 된다. 작품 속에서 소생하는 자연의 힘은 달을 기리며 작업하는 작가의 작품세계와 동화되어 더욱 아름답게 빛난다. 흑과 백, 섬세한 색색의 단층이 여러 겹 중첩된 구조는 각각의 층에서 빛이 스며 나오는 듯한 미묘한 시각적 체험을 제공한다. 마치 달빛을 머금은 듯한 몽환적 색채는 관객들에게 순수한 미적 정서를 전하게 되는데, 결국 박영남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미적 체험은 관객과의 물리적, 심리적인 소통으로 완성된다.

출처; http://www.ganaart.com/ 가나아트센타

Trio No 1 by Franz Schubert played by Jacques Thibaud (violin),
Pablo Casals (cello) and Alfred Cortot (piano). Rec. 1928

7 Comments

  1. 참나무.

    04/06/2012 at 23:23

    메일로 받은 소식 사이즈가 넘쳐서 줄이니 글씨가 잘 안보이네요
    그래서 가나아트 사이트에 가서 자세히 읽었습니다

    붓 대신 손으로,
    자연 조명 아래 달을 주제로 작업을 한다 해서 가 보려구요

    청담 시 낭독회가 이제 일주일 남았네요 담주 화요일이니…
    스케줄 조절하시라고 오늘도 시 한수 올립니다
    – 더 올릴지도 모르겠네요…ㅎㅎ    

  2. summer moon

    04/06/2012 at 23:23

    추상화 작품들은 늘 자유로움과 옅은 두통(^^)을 동시에 안겨줘요
    눈이 조금 더 커져서는 ‘알아보려고’ 바빠지고…ㅎ
    (물론 그림 그린 사람은 뭐가 뭔지 다 알고있겠지만….^^)

    그림을 직접 보면 ‘손’이 느껴질런지 궁금하네요.^^

    시를 읽어내려오다가
    ‘비오는 방을 젖지 않고 감상하는 방’에 잠깐 멈췄더랬습니다.

       

  3. 참나무.

    04/06/2012 at 23:42

    그러게요 현대미술은 ‘재현’ 이 아니고 ‘표현’ 이라는
    진중권씨의 현대미술 읽을 때는 고개를 끄덕거리다가도
    막상 전시장에 가면 뭔소린지 아무 것도 모를 때가 더 많지요

    그래서 이렇게 사전에 미리 예습이라도 하려구요…^^

    방금 시 한 수 더 올렸어요
    최영미 시인의 살아낸 삶 또한 쉽지않아서…
    어느 날 동창회에 갔는데 차도 집도 없는 건 자기 뿐이더라고
    일산에 산 아파트 부금 넣다 지쳐서 춘천으로 이사가서 ‘제법’유유자적’하고 살았다던데

    이번은 서울로 다시 오는 지?
    자세한 건 일주일 후에나 알 수 있겠지요

    근데 청담시낭독회가면서 팔뚝에 스티커 문신 하나 하고가면 어떨까요…ㅎㅎㅎ
       

  4. 산성

    05/06/2012 at 09:22

    아직 시집을 가지고 오질 못해 낯선 시들이 반갑기도 합니다.
    미리 읽어 두면 좋을텐데 말이지요.

    핑거 페인팅
    그 화가 분의 손가락은 또 무사할까
    지문들은 남아 있을까 싶어지기도 하네요.
    그윽한 달빛 아래…하니
    어제 그제 달 참 밝습디다.
    운전해서 돌아오다가 기어이 차를 한 쪽에 대고 사진을 찍었습니다만
    요즘 카메라도 망가져 주인짝 났습니다.

    손목 안쪽 쯤에 귀여운 새 문신 해보실래요?
    아니면 매직으로 꽃 한 송이!

    플로리다의 달님께 보내 드립시다…^^

       

  5. 지해범

    05/06/2012 at 12:36

    참나무님, 잘 보고 갑니다~   

  6. 참나무.

    05/06/2012 at 22:41

    아고~ 지기자 님 감사합니다.
    개인 보관용이라 안읽으셔도 되는데…;;   

  7. 참나무.

    05/06/2012 at 22:42

    15분이면 마르기 시작해서 30분이면 거의 굳어진다는 아크릴 물감,
    그 안에 재빨리 작업해야 한다 하니 예전 플래스코화 생각이 나더랍니다.

    손으로 그린 달그림이라 하고
    또 자연 조명이라하니 혹시 달빛아래 그리진 않았을까…이런 상상도 해봤답니다.
    그저께, 저는 달무리낀 달만 봤는데요- 초저녁어서 그랬는지?

    글쎄, 통큰 도토리 님께서 은교 문신을 같이 하자 해서 기암을 했더랬습니다
    손목 안쪽 귀여운 새 정도를 해보고싶은데요

    요즘은 날씨 더워 아침 나절에 산책을 한답니다
    층층나무도 보고 작은새도 보고…

    This little bird-‘마리안느 페이스플’까지 진도나갔지요…^^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