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잔치가 끝났다고 말한 적이 없다 – 최영미

. . . . .

우연히

내 일기를

. . . . . . . 엿보게 될

사람에게

. . . .

문학동네 ( 2009.11 )

나는 잔치가 끝났다고 말한 적이 없다

. . . . . . .

‘서른’ 하면 그 무렵 내가 살았던 어두침침한 방들이 떠오른다.

사방에 창문하나 없이 꽉 막혔던, 바퀴벌레 때문에 한밤에도 형광등을 켜고 자야했던 홍대 앞의 하숙집.

장마철이면 천장에서 물이 새어 잘 때 머리맡에 대야를 받쳐놓아야 했던 반 지하 셋방들.

지하창고나 주차장을 재고해 만든 그 습하고 쾨쾨한 방들의 냄새……. 더 이상 추억에 잠기고 싶지 않다.

나는 서른에 대해 할 말이 많은 사람이다.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펴낸 뒤 여기저기서 서른 살에 관한 질문을 수없이 받았고,

그때마다 비슷한 대답을 했으니 지겨워질 때도 되었건만.

그래도 불쑥불쑥 ‘서른’과 ‘잔치’가 목에 걸린다.

책의 제목과 관련해 어지간히 세간의 오해를 받아 내가 열을 받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 . . . . .

서른이 되기 훨씬 전부터 난 서른을 의식했다.

우리나이로 서른에서 만 나이로 서른 살에 이르기까지,

이십대 후반에서 삼십대 초반까지 몇 년 간 나는 서른 살로 살았다.

인생이 초라했던 그 시절, 난 실직과 실연의 늪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80년대 말 재야단체를 그만두고 난 뒤늦게 이사회에 편입하고자 발버둥쳤다.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어보고 면접도 수차례 보았지만 모두 퇴짜를 맞았다.

대학을 졸업한 뒤로 운동권 주변에서 맴돌던 나는 나이만 먹었지

사회에서 인정해주는 번듯한 경력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보편집실 직원을 구한다는-신문에 난 구인광고를 보고 찾아간 구로공단에 위치한

어느 메리야스 회사의 홍보실 직원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말을 들은 뒤부터 난 아예 취직을 포기 했다.

"최 영미 씨는 저희가 쓰기엔 너무 고급인력입니다. 조직관리 차원에서 그런 분들이 들어오면 인화에 문제가 있죠.

다른 데를 알아보세요."

그러나 난 다른 데를 알아보지 않았다.

다른 곳도 사정은 마찬가지라는 걸, 그의 동정에 찬 시선에서 짐작했기 때문이다.

결국 틈틈이 영어 과외 선생을 하며 어찌어찌하여 몇 년을 버티었다.

그리고 드디어 1992년 겨울, 나는 근 십년에 걸친 반실업자 생활을 청산하고 소위 등단을 하여 시인이 되었다.

사회의 미운오리새끼에서 어느 날 갑자기 ‘도발적인’ 마녀로 변신했다.

( 이 도발적이란 말은 세상에서 내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형용사 중 하나로 언론이 만든 나의 이미지에 불과하다 )

서른 살은, 특히 한국에서 여자나이 서른 살은 단순한 나이라기보다 하나의 강이다.

아직 젊음의 불꽃이 남아 있을 때있는 힘을 다해 생을 한 번 뒤집어 볼 수 있는, 도박을 할 수 있는 나이.

주사위는 던져졌고, 당신은 한번 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야 한다.

서른은 결코 한 해가 아니다.

언제든 자기 인생을 철저하게 뒤돌아 볼 때 우리는 영원히 서른 살이고,

부러진 뼈들을 추슬러 새로 시작할 수 있으리라.

가차 없이 자신을 반성할 수 있는 자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나는 감히 믿는다.

삼십대를 마감하는 지금 나는 문학이 나의 운명이듯이,

실연이 나의 운명이듯이 서른 또한 나의 숙명임을 엄숙하게 받아들인다.

내가 아무리 싫다고 고개를 저어도 죽을 때까지 내 이름 석 자에 ‘서른’과 ‘잔치’가 따라 다니리라는걸 나는 안다.

서른이라는 인생의 가을을 앞둔 이들이여.

그해에 접어들어 당신은 유난스레 거울을 자주 보게 될 것이다.

아직 젊다고 말하기엔 뭔가 뒤가 켕기는 것같고 늙었다고 하기엔 억울한 나이,

서른을 무사히 통과해 내 머리엔 벌써 희끗희끗 흰 머리도 제법 심어졌다.

더 이상 주책맞게 방황하지 말고,

더 이상 내게 없는 것을 애타게 찾지 않고 멋있게 포기하는 법을 배워야겠다.

그래서 20세기가 끝나는 올 가을,

조용히 강둑에 앉아 자투리로 남은 청춘을 방생하며 삼십대의 마지막을 보내고 싶다.

( 문단은 읽기좋게 제맘대로 나눴음을 양해바랍니다)

2002년 11월 08일 / 돌베개

“그림을 보는 지금 나를

숨막히게 하는 건 바로 그 시선이다.

누군가, 언젠가 그녀를 쳐다보았겠지.

그토록 사랑스럽게 그토록 뜨겁게…

그런 애틋한 시선을한번도

받아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사람도 있으리라.

살아 있다는 것의 기쁨과

허망함이내 안에서 교차된다.

아쉽고도 안타까운 순간이다.

이 그림의 모델은 누구였을까.

그러나 지금은 그녀도 죽고 그도 죽고…

오로지 화가의 따뜻하면서도

잔인한 시선만이 남아 있는 것이다.”

화가의 우연한 시선 중,베르메르 작품에 관한. . .

비가(悲歌) – 신동춘 시 / 김연준 곡

아 찬란한 저 태양이 숨져버려 어두운 뒤에
불타는 황금빛 노을 멀리 사라진 뒤에
내 젊은 내 노래는 찾을 길 없는데
들에는 슬피우는 벌레소리 뿐이어라
별같이 빛나던 소망 아침이슬 되었도다

9 Comments

  1. 참나무.

    06/06/2012 at 01:02

    10시…지금 묵념시간…가사 추가합니다

    비가(悲歌) – 신동춘 시 / 김연준 곡

    아 찬란한 저 태양이 숨져버려 어두운 뒤에
    불타는 황금빛 노을 멀리 사라진 뒤에
    내 젊은 내 노래는 찾을 길 없는데
    들에는 슬피우는 벌레소리 뿐이어라
    별같이 빛나던 소망 아침이슬 되었도다
       

  2. 산성

    06/06/2012 at 02:03

    오랜만에 듣는 이 노래,悲歌
    숙연해지기도 합니다.
    더구나 얀손스라니…!!

    현충일 방송 잠시 보다가 ‘푸른 목숨’…이란 단어 마음에 왔었어요.
    정말 애처로운 푸른 목숨들입니다.

    최영미 시인은 도요님께 감사드려야 할 듯…길을 보여 주셨거든요.
    시인을 기다리는 우리에게도…!

    오십줄에서 좀 넉넉해졌을 시인과
    더 넉넉한(?) 우리들과의 만남,기쁨으로!

       

  3. 참나무.

    06/06/2012 at 03:35

    첨엔 왕년의 트리오 연주, 슈베르트 올렸다가 바꿨답니다
    날이 날인만큼

    2002년 발트뷔네 실황이지요
    어느 해 6월이었나
    풍월당 그름채에서 처음 DVD영상으로 만났던
    그 울컥하던 감흥… 저도 잊지못합니다

    최영미 시들 오늘 좀 많이 올렸는데
    오타 찾아주시면 후사하겠습니다아~~    

  4. 푸른

    06/06/2012 at 03:38

    가차없이 자기를 반성 할 수 있는 자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감히 나는 믿는다.
    ——-
    더이상 내게 없는것을 애타게 찾지않고 멋있게 포기하는법을 배워야겠다.

    . . .천천히 다 읽고난 후 최영미는 최영미라는 생각이들었습니다.

    그러나 독자에겐,
    작가와 개인사이의 틈에 상상을 불어넣고 엿볼수있는 권리가 있다고 봅니다.
    도발적인…
    무디게 잠자는 자들중 단 한명이라도 깨울 수 있었다면 도발적인것도 좋을 듯…^^

    참나무님! 금성일식은 꼭 보세요!!!
    전 지금 아들이랑 베란다에서 봤습니다!!!105년만에나 다시 볼 수 있다니…~@.@~

       

  5. 참나무.

    06/06/2012 at 03:52

    필터같은 보호장비가 있어야하는 거 아닌가요?
    이 글 읽고 베란다에 나가 쳐다보긴 했는데
    그냥 맨눈으로 봐서 아무 것도 안보였어요…;;
    실명하기 싫어서…관둘랍니다…^^
       

  6. Elliot

    06/06/2012 at 14:33

    고급인력이기 때문이 아니라 블랙 리스트에 오른 인물이기 때문이었겠죠. -_-

    퇴교 당하고 공사판에서 벽돌을 나를 수 밖에 없었던 친구 생각이 납니다.
    신혼살림이 리어카로 딱 반이었다는 말에 내가 눈물을 흘렸던….
    다행히도 그런 친구들이 모여 회사를 차려 지금은 그런 케이스로 가장 크게 대성했지요.

       

  7. 마이란

    06/06/2012 at 23:59

    6월의 시인이 최영미 시인이라 그래서 많이 안타까웠어요. ^^
    제가 시낭송회 체질은 아닌거 같지만 (저… 졸았잖아요. ㅋㅋ)
    그래도 이 양반의 시는 꽤 좋아하거든요.
    싫어하신다는 ‘도발적’이란게 제겐 매력으로 다가오는데…^^

    포스팅 중간에 ‘베르메르..’ 보여서 참 우연도.. 합니다.
    식구들과 점심먹고 케잌이랑 커피마시며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부전공으로 ‘미술사’ 하는 큰 아이가 해준 얘기가 있어서요.
    수업시간에 베르메르의 ‘우유를 따르는 하녀’에 대해 나왔는데
    교수님이 그러셨다네요.
    아마 그 하녀는 ‘커스터드’를 만드는 중이었을꺼라고.
    그림속의 빵이 좀 오래되고 딱딱해져서 그대로는 먹을 수는 없게 보이고
    우유를 항아리같은 큰 그릇에 따르는걸로 봐서 그렇게 추측한다고요.

    이 얘기 들으면서 맨 먼저 참나무님 떠올랐잖아요.
    진주귀고리.. 때문에 베르메르하면 자동연상작용이예요. ㅎㅎ

       

  8. 참나무.

    07/06/2012 at 00:20

    엘리엇 님 말씀 시인합니다 저도…

    아참, 그런 친구가…
    여튼 해피엔딩이라 다행입니다아~~ 해도 괜찮겠지요   

  9. 참나무.

    07/06/2012 at 00:22

    그러게요 최영미 시인께 따라다니는 발칙… 도발…

    오늘은 베르메르 때문에 미란씨 답글 받아보네요
    언제까지 팥고물 떡 먹어야하나…했는데
    조만간 숲속마을…소식 기대합니다

    그나저나 몸살 조심하구요 장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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