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대에 세워진 양면 그림 앞에서 탁 풀어졌다
도슨트가 박고석화백 부부 이야길 꺼냈거든
( . . . . . . . )
정능 청수장 근처에 살던 박경리 선생의 집 부근에 박고석 화백 부부도 살아서 친하게 지낸 걸로 기억한다. 박고석 화백이 山 그림 작가로 유명한 건 옛날엔 잘 몰랐고 그 때 보던 간략한 신문 연재 삽화가 먼저 떠올랐다 부인 김순자 여사는 양장점을 운영했는지 박경리 선생은 그 곳에서 옷을 맞춰입는다셨다 지금도 생각나는 노 슬리브의 무무 방학하여 서울가면 가끔 박경리선생 집에서 자기도 했다. 여인 삼대가 살던 집- 홀 어머님과 나랑 동갑인 딸 김영주 (곧 영인 문학관에서 강연 있다 해서 동생과 가기로 했고)
토지 구상 중 (그 땐 제목도 모르고) 하동 근처 사전 스켓치 하러 오셨다고 내가 다니던 학교에 찾아오셨을 때 밀짚 모자에 소매 없는 무무 원피스를 입고 계셨다
같은 반이던 친구 집 ‘월성 여관’에 머문다는 연락을 받고 엄마랑 갔을 때도 당시로는 꽤 대담했던 그 무무를 입고 계셔서 멋쟁이 여류작가가 엄마 친구인 날 부러워도 하고 그랬다 그땐 여류를 붙일 때여서. . .
도슨트가 좌대의 양면 그림 유심히 보라며 ‘이 그림 제목 이상하지않냐~’ 몇 안되는 관객들 앞에서 물었을 때 난 이런 옛생각에 젖어있었다
(난 척하면 재수없어 한다고 김기덕 감독이 말하던데 ♬ 노리턴~노리턴~~ 강도 돌아오지 않고옛날도 안돌아올텐데 쾌쾌묵은 회상조라니. . . 노리턴~ 노리턴~~♬나도 참 . . .)
이중섭- 돌아오지 않는 강 (양면화)연도미상 종이에 연필. 유채 18.8 x 14.6 개인소장
가족을 끔찍하게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중섭은 일본에 있던 가족와 끝내 재결합하지 못했다. 41세의 나이에 영양실조와 간염으로 쓸쓸히 세상을 등졌다. 돌아오지 않는 강은 이 해 그가 마지막으로 그린 드로잉 가운데 하나다. 박고석의 부인 김순자 여사는 이 그림이 그려지던 당시의 정경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박고석의 집에 박고석과 이중섭, 한묵, 장욱진, 정규가 함께 있었다. 술을 가지고 오라 해서 김 여사가 술을 가져다주었는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마릴린 먼로 이야기를 하더란다. 빌어서 외상술을 가져오느라 속상한 판에 화가들이 마릴린 먼로가 좋다는 이야기나 나누니 새색시 속이 편할 리 없었다. 그렇게 떠드는 가운데 이 그림에 붙은 제목이 <돌아오지 않는 강>이다. 마릴린 먼로가 출연한 영화의 이름을 딴 것이다. 사실 그림 어디를 봐도 강은커녕 실개울조차 보이지 않는다. 집이 그려져 있고 창턱에 한 사람이 얼굴을 괴고 있다. 멀리서 여인이 머리에 무엇인가를 이고 오는 듯 지나가는 듯 걷고 있다. 어디를 봐도 마릴린 먼로나 돌아오지 않는 강과는 상관이 없는 이미지다. 술자리에서 왁자지껄 하는 가운데 정해진 제목이라 하니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림과 제목이 전혀 상관이 없지는 않은 것 같다. 이중섭은 끝내 가족과 재회하지 못했다. 그와 가족 사이에는 분명 돌아오지 않는 강이 놓여 있었다. 농담과 취흥 속에 내면의 두려움과 아픔을 그대로 녹여 놓은 제목이 아닐까 싶다. – 해설 이주헌
돌아오지 않는 강 (양면화) 연도미상 종이에 연필. 유채 18.8 x 14.6 개인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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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빛깔과 영혼을 추구한 손응성(孫應星, 1916년 ~ 1979년)화백
참 야무지고 단정한 백자, 시선이 독특했다 그간 봐 왔던 백자그림이나 사진들 ‘대부분’ 측면인데 위에서 내려다 보고 그린 그림은 처음인 것같아서. . . 작가 최인호씨의 외삼촌 손응성 화백 어디서 읽었더라? 오래 전이어서 정확한진 몰라도 가족 이야기에선가?
어머니가 쌀자루를 주면서 외삼촌 댁에 갖다 드려라 해서 갔더니 화실 겸 방에서 가족들이 한 낮인데도 모두 누워 있더란다 이유인 즉슨 하도 오래 밥을 굶어 기운이 없어 그렇다며 외숙모는 들고 간 쌀 자루를 보고 당장 밥을 하더라고. . . ‘조선의 빛깔과 영혼을 추구한 사람’ 외삼촌을 회고한 최인호 작가의 글이다. 벽에 붙어 있었던가? 아무래도 한 번 더 가야겠다 ㅡ아직 윤동주 문학관에도 못가봐서 손응성 화백 작품들 네델란드 마술적 사실주의랑은 또 다른, 알 수없는 정감이 물씬풍겼다 무엇보다향토적인 개성도 돋보였고 사담 줄이고이주헌씨 글 일부실어본다 긴 글 싫어하는 분들은 나가실 시간.
손응성, 베냇저고리, 연도미상, Oil on Canvas, 38 x 46cm, 개인소장 ( . . . . . . . ) 손응성은 기조 동인전 참여 작가 중 가장 보수적인 화풍을 견지한 화가라 할 수 있다. 다른 화가들이 표현주의나 야수파, 입체파, 추상파의 영향을 받는 동안 그는 초지일관 사실적인 구상회화로 일관했다. 그가 우리나라 구상회화 동인그룹의 중추격인 목우회의 창립에 일조하고, 목우회 탈퇴 뒤 한국사실작가회를 결성한 것은, 그의 지향으로 보아 예견된 경로였다. 그의 그림은 단정하고 차분하다. 차분하다 못해 적막한 정서가 느껴질 정도로 정연하다. 그는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해 다른 소재를 과감하게 생략하고 주제와 배경이 단독으로 맞서는 구성을 선호했다. 꼼꼼한 사실적 표현과 맞물려 이런 구성은 그의 예술이 엄격하고 고전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그만큼 성실하고 고집스런 그의 성격을 반영한다 하겠다. 미술평론가 윤범모는 이와 관련해 이런 평을 했다. “그의 필치에는 주어진 대상을 파고 들어가 분석해내는 정교한 묘사력이 있다. 정돈된 그의 화면은 최대한도로 절제되어 있는 조형세계를 지니고 있다. 특정 소재의 비슷한 구도는 일종의 동어반복식으로 꾸준히 재생산되어 나왔다. 그 속에는 결벽주의자적인 절제가 뒤따라 군더더기를 용납하지 않았다. 냉혹하리만큼 질서정연한 화면효과를 추구했다.” 손응성은 대상을 그릴 때 고착증이라고 할 만큼 그리는 대상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그의 그림의 진정한 주제는 그려진 대상이 아니라 대상을 향한 몰입의 정신이라고 할 만하다. 손응성이 즐겨 그린 소재는 인물, 풍경, 정물 등 다양한데, 풍경 중에는 비원, 정물 중에는 고가구와 고서, 석류, 백자가 특별히 그의 눈을 사로잡았다. 이번 전시에는 <백자 항아리>, <석류>, <배냇저고리> 등이 출품되었다. 정자 그의 남다른 집착증을 잘 보여주는 일화로, 비원을 그릴 때 그는 늘 망원경을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정자의 기와 한 장, 나무의 나뭇잎 하나, 그렇게 꼼꼼히 관찰해 그렸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석류를 그릴 때는 석류나 고추장만 먹고, 백자를 그릴 때는 소뼈를 다린 곰국만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작품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계속 한 가지 음식만 먹어야 하는 고행 아닌 고행을 겪기도 했다.
그림이 잘 안 풀린다고 그림의 대상을 연상시키는 음식만 줄기차게 먹는다는 것은 보통 열의와 집념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그는 그런 태도에서 비로소 대상을 제대로 통찰하는 능력을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 그것은 대상을 단순한 형상 이전에 우리와 교감하는 중요한 상징체로 봄을 의미했다. 석류를 즐겨 그린 이유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우선 색감이 그렇고, 또 오랜 인고 끝에 열매를 맺는
그 과정이 한국인의 역사와 상통하는 점이 있기 때문이다."
석류를 먹는 것은 석류의 실체에 대한 이해를 보다 심화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처럼 한국인의 역사에 대한 정서적 감응을 얻는 중요한 계기이기도 한 것이다.
손응성에게 그림은 그런 교감을 위한 중요한 매개물이었다.
. . .당분간 백자나 석류보면 손응성 화백이
제일 먼저 생각날 것 같아서. . .
벤조
08/10/2012 at 05:46
돌아오지 않는 강, 그림 제목 너무 재미있습니다.
저 그림속에 강이 있어요. 나는 봤는데…
보는 건 각자 마음이지요?
참나무.
08/10/2012 at 06:00
그럼요~~
저는 눈물도 봅니다 비오듯 뚝뚝 …
멀고 먼 알라바바에서 오셨네요
신납니다 첫 답글…편히 가셔요
오늘 배경음악으로 정해서 라지오 볼륨도 줄였답니다
노리턴 노리턴~~~
김진아
08/10/2012 at 06:31
오늘 아침에 곽아람 기자님의 간송미술관 기사를 읽고 출근했어요.
참나무님 아니 떠오를수가 없었죠.
돌아오지 않는 강…슬픕니다.시큰시큰…
마이란
08/10/2012 at 07:13
여러해 전에 제주 갔을 때 이중섭 미술관 갔던 기억 새롭게 나네요.
미술관 아래
납작한 집의 작은 골방,
한지로 하얗게 도배된 배추속같던 방과 벽에 붙어있던 시,
그리고 그 댁 할머니가 가꾸시던 남새밭과 돌담길…
그때, 화집 한 권 사오고
서울와서 주고받은 편지와 그림 사진들 있는 책도 한 권 사고..
참나무님 덕분에 또 다른 아릿한 향기로 중섭을 기억할 것 같아요.
참나무.
08/10/2012 at 08:16
맞아요 정말 작은 골방
그 방에서의 1년간이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다지요
우린 그 때 변시지…기당미술관이 목적이었지요
초가집 입구 밸 눌러봤어요
서귀포 칠십리- 송민도 노래가 흘렀는데…
마이란의 기억 속에 차곡차곡 쌓인 갓들
어느 시간 글로 나타나겠네…합니다
이번 전시회엔 얼마 전에 갤러리 현대. 한묵 화백의 100세 전(?)을 본 이후라
초기작도 몇 작품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관장이 이주헌씨라 차후 전시회들도 기대가 많이 된답니다
언제 서울 오면 제가 안내하리다…^^
무무
08/10/2012 at 10:56
무무원피스라는게 있군요 ㅎㅎ
제 이름 무무는 춤을 어루만진다는 뜻이예요
참나무.
08/10/2012 at 11:53
그잖아도 무무님 생각이 났더랬어요
무무. 아이디 사연도 궁금했는데
舞憮(?) 어루만질 무 (撫) 가 둘이어서 마음심 변인가 추측만 합니다
muu·muu 하와이언들이입는 헐렁한 민속 의상인데
제 기억으로 그 당시 박경리 선생님의 소매 없는 무무는
헐렁하진 않고 굉장히 멋져보였답니다
절으셨을 땐 날씬하고 화장도 안하시는 미인이셨거든요
– 머리도 당신이 면도칼로 직접 쓱쓱 자르시고. . .
기다리는 시간 아까워 미장원에도 절대로 안가신다 하셨지요
그래서 인터넷으로 떠다니는 뚱뚱하신 노후의 모습이 저에겐 많이 낯설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