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빠요, 그것도 아주 많이…
백날 지난 손자 고사리 손 보는 일은
최고로 행복한 일이지요만
며느리는 퇴근하자마자 퉁퉁불은 젖 빨리느라 정신없답니다
돌 지난 아기 두고 도망간 손상기화백아내
나체 여인상도 궁금하고
나 혼자 맘대로, 권옥연 그레이도 궁금한데
러시아는 영하 2도 서울 현재 기온 영하 15도
최고로 추운 날, 운동도 가야하고, 은행도 가야하고
명절 차레 지내는 일이야 저 혼자 일 아니지만
바로 사흘 후 시부 기제사가
터억허니 버티고 있으니 말이지요
다행스럽게 전시회 날짜가 넉넉해서 후유~~
제사 지낸 후 아가 보러 가는 날 피해서 가도 되겠네요
쉬엄쉬엄 예습이라도 하려고요
찾아본 거 아까워 쉬는 시간을 위하여~~
발로 쓰는 전시회 before
화가의 여인, 나부裸婦 : 한국근현대누드걸작展 1930~2000
2013.01.31 ~ 2013.02.20 (수)
시간 – 10:30~20:00/주말~20:30
롯데갤러리 본점 (서울시 중구 소공동1번지 롯데백화점 본점 12,14층)
백화점 휴점시 휴관 / 02-726-4456
http://store.lotteshopping.com/handler/GalleryManage_F-ingview
“여인이 벌거벗은 그림인 고로 사진으로 게재치 못함(매일신보, 1916)”
1916년 동경미술학교 졸업생인 김관호(1890~1959)의 졸업작품인 <해질녘>이 문전(일본 문전10회) 특선을 알리는
신문기사 말미에 밝힌 내용처럼 지극히 보수적이었던 한국사회에 한국누드화의 역사가 근 100년이 되는 시기이다.
이번 전시는 1960년을 기점으로 전, 후 구분하여 전시되었다.
알몸은 볼거리라는 편견에서 벗어나 서구문화의 소산인 누드가 한국에 정착하며 변화되는 과정을 살펴보려 한다.
1960년대 이전은 누드 작품이 극히 드물며 아카데믹한 미술의 전형에서 차츰 벗어나려는 시도로 보인다.
1960년대 이후 작품은 누드를 그린 작가 중 화단의 위상, 다양한 화풍, 그림 속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으로 골라
선보인다. 한국에 누드화가 시작된 이후, 1930년대부터 2000년대(현재)까지 근현대기 대표적 누드 50점 소개한다.
50년대 이전 제작된 누드화로 현재 남아있는 작품이 약 50여 점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그 중 이인성(1912~1950) 작품도 소개된다. 6.25전쟁 시 제작된 누드화, 이 림(1917~1983)의 누드는 피로 물든 것 같은 핏빛 누드로 아파서 신음하는 인류를 어머니의 누드로 표현하여 눈길이 간다. 전쟁 피난시절, 부산에서 제작된 권옥연(1923~2011)의 <부인상, 1951>,
평생 단 한 점의 누드만을 남겼다는 한 묵(1914~)의 <누드, 1953>는 전쟁 중에도 멈출 수 없었던 작가의 예술의지를
엿볼 수 있다. 종전 이후, 유럽, 미국 등지로 유학을 다녀온 초창기 유학파 김흥수(1919~), 박영선(1928~1996)의
이국적인 누드, 왜색이 짙었던 박생광(1904~1985)의 초창기 누드도 선보인다.
1970년대 민족 고유한 정서가 담긴 설화나 민담 등을 에로틱한 여인의 누드와 결합하여 독자적 세계를 구축한
최영림(1916~1985)의 독특한 모래그림을 비롯하여 박석호(1919~1994), 박항섭(1919~1994), 장리석(1916~),
송혜수(1913~2005), 이종무(1916~2003) 등 향토색이 짙은 누드를 소개한다.
전형적인 사실주의 계열 화가로 완벽한 뎃생력으로 생동감 넘치는 여인의 나체상을 그린 박득순(1910~1990)을 비롯한
김호걸(1934~), 구자승(1941~), 조병태 등 누드화를 즐겨 그린 사실주의 누드화와 함께 대부분의 작가들이 그랬듯이,
평생 남긴 누드화가 몇 점 정도밖에 안되는 작가, 남관(1911~1990), 박성환(1919~2001), 이만익(1938~2012),
임직순(1921~1996) 등도 소개된다.
자신의 신혼을 담은 손상기(1949~1988)의 연인상인 <화가와 여인, 1978>과 임신한 여인그림 <초조,1986>는 작가의 행복한 순간을 화면에 담았다. 또한 천경자(1924~)의 대작, <전설, 1962>역시 당시 가정적으로 가장 행복한 시기를 보낸 작가의 모습을 반영하듯 의례적으로 따뜻하고 서정적인 작품을 선보인다.
누드와 춘화의 다른 점은 춘화는 대중의 성적인 정서를 의도적으로 드러내는 것에 치중한다면, 누드는 인간 자체의 가치를 부여하는 작업이다. 이제 백년을 넘어서는 한국 서양화의 역사를 ‘누드’를 통해 폭넓게 조망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1960년대 이전>
이인성 李仁星 (1912~1950 )초록배경의 누드
24.2×33.4cm, 나무에 유채, 1935, 개인소장
초록색배경의 누드는 1935년 작품으로 그가 즐겨쓰던 초록색 바탕과 화병,
테이블을 배경으로 뒤돌아선 여인의 모습을 그렸다. 작은 소품이지만, 당시
아카데믹한 분위기를 탈피하여 특유의 건삽하면서도(유화가 말라 윤택이 없음) 경쾌한 마티에르와 묘법을 선보이고 있다. 일본적 아카데미즘이 맹목적으로 이식되던 시기에 독자적 감성의 화풍을 구추한 이인성의 화풍이 잘 드러나 있다.
일제시대 선전의 대표작가인 청정 이인성은 보통학교 졸업 후 대구에서 서동진(徐東辰, 1900~1970)으로 부터 수채화를 배우고 태평양미술학교에서 수학(1932~1935)하였다. 일찍부터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여 선전에서 6회 연속 특선, 최고상 수상, 심사참여, 추천작가 일본 제전에 입선하는 등, 당시 화단에서 최고의 명성을 얻었다. 자유분방하고 풍부한 감성의 소유자였던 그는 일찍부터 인상주의에 경도되어 풍부한 색채와 감각적인 터치로 생활주변의 풍경이나 정물, 인물을 주로 그렸다. 만년에는 세잔느와 보나르의 회화에 편력하고 이를 자기 나름으로 발전시키려고 노력했으나 일찍 타계함으로써 아쉬움을 남긴 신화적 인물이다.
권옥연 權玉淵 1923~2011 부인상,
72x99cm, 캔버스에 유채, 1951, 구삼미술관 소장
전쟁 중이었던 1951년 그린 그의 대표작 <부인상>은 권화백이 1951년 결혼기념으로 부인을 그린 것이다.
거의 비슷한 크기, 똑같은 구도의 옷 입은 부인상도 전해진다. 한국전쟁의 와중에서 그린 것이지만,
낭만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작품으로 당시 물감, 팔레트 같은 기본재료도 구하기 힘들었던 작가는
동료화가들 여러명에게 물감을 겨우 빌리고도 모자라 연탄재를 섞어 검은빛을 냈을 뿐만 아니라
깨진 유리조각을 팔레트 삼아 제작한 그림으로 작가는 술회한 바 있다.
작고한 미술평론가 이일씨는 이 시대 제작한 "부인상"을 권옥연 회화 양식의 첫걸음으로 보고 있다. 묘사적이기보다 오히려 암시적인 배경처리가 어떤 신비감을 지니게 하는 것 같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부인을 모델로 한 것은 북쪽이 고향인 작가에게 남다른 심경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랑의 힘이 이 역작을 만들어내지 않았나 여겨진다.’호는 무의자(無依者), 함남 함흥 출생으로 1944년 동경제국미술학교 (현 무사시노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1957년에는 파리 아카데미 드 그랑 쇼미에르에서 수학하였다. 유학시절 인 1941-44년, 20, 23회 조선미전에 출품 입선하였다.
귀국 후 현실에서 취한 서정적인 주제의 작품을 발표하였으나 1957-60년 프랑스로 건너가 그곳에서 작품 활동을 하였다.이당시 프랑스의 앵포르멜적 추상주의에 동조하여 새로운 화풍을 시도한다. 우리의 문화에 남다른 이해와 안목을 갖춘 그는 사재를 털어 한국의 전통가옥을 중심으로 세우고 그 박물관의 관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1953년 제5회 대한미협전 문교부 장관상, 1986년 대한민국예술원상, 1994년에는 3.1문화상을 수상하였다. 2000년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어 국립현대미술관이 근대미술관으로 운용하고 잇는 덕수궁분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개최 한 바 있다.
박영선 朴泳善 1928~1996 – 아뜰리에,
72x92cm, 캔버스에 유채, 1957, 고려대학교박물관
1957년작 <아뜰리에>는 1955년 떠났던 파리 유학시절, 아름다운 파리여인과 그 밖의 서양여성들을 모델로 그린 작품으로 서구적인 미모에 팔등신 미인으로서의 개념을 충실히 따르고 있으며 작가의 이상적인 미인상을 반영하여 파리 시절의 전형적인 여성상을 보이는 작품이다.기하학적으로 분할된 화면은 대상에의 감정, 이입을 차단하고, 지적 분석과 통합의 세계를 지향한다. 청색조의 색감 역시 차갑고 주지적인 박영선 작품의 특징이다. 귀국 후에도 전형적인 실내 여인상과 누드여인상을 끊임없이 그렸던 박영선화백은 그 당시로서는 돈주고도 살 수 없는 모델을 주로 그렸다.
즉 돈을 주고 살수 있는 모델은 그릴 의욕이 안 생기며 예술을 사랑하고 화가를 존경하는 지적인 여성만을 그려야 한다는, 그래서 모델료 대신 감사의 뜻으로 음악회나 전시회로 동반하는 게 일이었다는 일화는 상대적으로 화백의 부인에는 큰 근심거리었다고 전해진다.1955년 프랑스 파리로 떠난 박영선은 그 곳에서 새로운 조형어법과 현대미술의 최신의 경향들을 만나면서 새롭게 자신의 작품을 일구어 나간 작가이다. <아뜰리에>는 파리 체재시의 작품으로, 당시 아카데믹한 화풍을 고수하면서 조선미술전람회와 대한민국미술전람회 풍에 머물러 있던 그가 낯설고 버거웠던 파리의 현대미술을 극복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누드모델을 비롯한 인물들의 완벽한 모델링, 면의 분할과 뛰어난 색채 표현, 구상과 추상의 조화로운 공존이 인상적이다
<1960년대 이후>
김흥수 金興洙 ( 1919~) 누드 60.5×72.5cm, 캔버스에 혼합재료, 1980, 개인소장
"내가 여성의 누드를 그리는 것은 누드, 특히 여체가 자아내는 곡선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어서다. 따라서 내가 추구하는 것은 창조적인 데폼(deform)이 아니라 아름다운 선의 창조에 있다. 이상적인 선의 아름다움이 자아내는 매혹적인 선율,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최고의 미와 행복을 동시에 찾아내는 것이다.” (김흥수) 1936년 제16회 조선미술대전 특선으로 데뷔한 작가는 1944년 일본 동경미술학교를 졸업하고 1955~61년 파리로 유학했다. 김흥수 화백은 여성의 누드와 기하학적 도형의 추상화를 대비시킨 조형주의를 개척한 인물로 ‘한국의 피카소’라는 별칭을 얻고 있다. 1993년 동양인 최초로 러시아 에르미타쥬 박물관에서 초대전을 열었으며 1996년 문화훈장 옥관장, 1999년 대한민국 금관 문화훈장을 각각 받았다. 여성의 인체를 탐미하며 자신의 주요 소재로 삼았던 작가는 1955년 폐허였던 서울을 떠나 파리로 유학하면서 자신이 그리는 누드, 특히 여성누드는 평화를 상징하며 이는 프랑스에서 체득한 누드화에 대한 예술철학이라고 고백한다. 최영림 崔榮林 (1916~1985 ) 비둘기와 여인, 45.5x53cm, 캔버스에 유채와 모래, 1970, 갤러리대아 소장 “내 그림에는 미인도랄 게 없다. 구수한 흙 냄새가 코끝을 스쳐갈 때 나는 향기로운 여인의 탄생을 보게 된다” 1960년대 후반부터 그는 풍만한 여성 이미지나 민담 속에 등장하는 인물을 해학적이고 활달한 붓 터치로 그려 냈다. 실험과 모색을 거쳐 1970년대부터 입체감이나 원근법을 무시한 채 왜곡되고 과장된 여체로 풀어낸 최영림식 나부가 등장한다. 그의 나부에는 처자식을 두고 피난 온 이후 절망의 늪에서 헤매던 실향민으로서 망향정신이 담겨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평양에서 태어난 최영림은 일본 태평양미술학교를 졸업하고(1938), 1940년 평양에서 박수근, 장리석과 함께 주호회 동인전을 갖고 제 14, 17, 21, 22회 선전에 입선하였다. 해방 후 1950년 한국전쟁 때 가족을 남겨 둔 채 동료화가 장리석과 함께 남하한 그는 제주, 마산, 서울 등지를 유랑하며 어려운 피난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제 8회 일본 동경비엔날레를 차가하고 창작미협(1957), 구상전(1967)의 창립회원으로 활동하였다. 이화여대(1958~1960)와 중앙대(1975~1981) 교수를 역임하고 국전 초대작가, 심사위원을 지냈다. 장리석 長利錫 ( 1916~ ) 해녀 24x44cm, 캔버스에 유채, 1971, 구삼미술관 소장 “일반적으로 누드를 그리는 데에는 여성 몸매의 아름다운 곡선에 포커스를 맞춰 탐미적으로 다루는 경우가 흔하다. 나의 경우 누드의 단순한 곡선의 아름다움 보다는 탄력있는 근육과 생동감 넘치는 야성적인 인상에서 더 강한 감동을 받는다. 단순한 구도상의 누드보다는 생동감있는 삶의 현장에서 누드를 그리려는 것이 나의 작품세계라고 하겠다.” – 장리석
평양 출신의 장리석은 일본 다마가와 제국미술학교를 졸업하고(1939) 선전에 입선하였다. 해방 후 제7회(1958) 국전에 <그늘의 노인>으로 대통령상을 수상했으며 이후 추천작가, 심사위원(1962~1981)을 역임했다. 한국창작미협전, 창립위원(1956), 국제자유미술전(1962), 목우회(1964~1969), 한국사실작가회원전(1969~1971)에출품했으며 중앙대 교수로 재직하였다. 손상기 孫詳基 ( 1949~1988 ) 화가와 여인 23x23cm, 캔버스에 유채, 1978, 샘터화랑 소장 <화가의 여인>은 그의 짧은 생애에 가장 행복했을 순간 중 한 장면을 담았다. 작가나이 29세, 여인의 나이 약 20세를 갓넘긴 젊은 연인이 첫눈에 반해 동거와 혼인을 시작했을 무렵 제작한 작품으로 색감과 표정에서 행복함이 묻어난다. 20센티가 겨우 넘는 작은 화폭에 연인의 모습을 그려 넣은 작가는 간결한 선과 형태, 단순한 색감, 언뜻 스치는 표정으로 당시의 감정을 고스란히 전하고 있다. 길고 커다란 눈망울을 한 작가는 몸매에서 그 특유의 장애를 드러냈지만, 표정만큼은 애정과 사랑이 묻어있는 반면, 덜 성숙된 여인의 모습은 이목구비를 표현주의적으로 흐트러뜨림으로써 약간의 불안과 망설임이 비친다. 뿐만 아니라 단순하고 가라앉은 황토색 혹은 암갈색을 배경으로 선홍빛의 의자와 여인의 들뜬 입술은 긴장감마저 고조시킨다. "아내여, 어서 오라, 소식이라도 와라" . 손상기 불안했던 예감처럼, 여인은 채 돌이 지나지 않은 첫 아이를 남겨둔 채 집을 나갔고, 아내에 대한 그리움은 슬픔으로 변해갔다. 이 작품은 행복했지만 앞날이 불안했던 당시의 심정을 압축하여 표현한 수작이다. 전남 여수에서 태어난 손상기는 세 살 때 구루병(척추가 굽어지는 병)을 앓은 데다가 초등학교 때 나무에서 떨어져 평생을 척추장애와 함께 살았다. 장애인이라는 사회적 편견을 불굴의 의지로 이겨내고, 원광대학교 회화과에서 그림을 배웠다. 고향여수의 바다와 어시장을 소재로 작업하다가 1979년 상경한 뒤 아현동 홍등가와 도심 변두리의 삶을 공작도시 연작으로 표현했다. 1981년 서울 동덕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가진 그는 이듬해 공작도시-신음하는 도심이라는 제목의 작품으로 한국미술대전 입선을 차지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가난과 고독을 그림과 글로 승화시킨 그는 울혈성 심부전증으로 1988년 서른아홉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이만익의 회화는 주제의 일차적인 비중과 설명적인 묘사로 인해 비예술적인 혹은 민화나 삽화와 같은 대중적인 그림으로 그쳐질 위험을 지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특이한 예술 차원의 내면을 성취하고 있다.
황해도 해주 출신의 이만익은 우리의 문학적 고전에 뿌리를 두고 그것을 현대적 조형어법으로 해석하는 작업을 해 오고 있다. 인물의 표정이나 전체의 사실성을 위한 원근법이나 농담법이 발견되지 않으나 명료한 형태와 고전적 정서를 결합시키면서 화려한 색조인데도 그림의 분위기엔 착 가라앉은 정한과 막연한 슬픔의 느낌이 배어 있다. 단순 명쾌하고 강건하며 때로는 부드럽고 리드미컬한 굵은 테두리 안에 작은 우주를 관장하는 듯한 여인의 모습이 깊이감 있는 푸른색과 강렬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굵게 구획된 테두리와 대담한 원색을 동반한 화면 속의 여인은 오히려 정겨움을 가져다 준다.
전혁림(1916~2010)누드, 98x64cm,캔버스에 유채,1979 한묵(1914~ ) 나부, 38×27.5cm,종이에 유채, 1953
출처: http://www.artday.co.kr/V2/exhibition/exhibition_list.php
summer moon
08/02/2013 at 01:52
아가보러 가시는 날 참나무님의 스케쥴을 생각해보다가
아드님, 그리고 사돈댁 모두 참나무님 사시는 곳 근처로 이사오라고 그래야 하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했다니까요.ㅎ
얼마나 바쁘실지 충분히 짐작이 갑니다,
뭐하나 대충하시지 않고 정성을 들여 준비하시는 분이니….
이젠 저까지 전시기간 날짜를 확인하게 되네요
참나무님이 보셔야 이렇게 멀리서 살아가는 저도 볼 수 있으니까!^^
아기 사진 한참 동안 바라보고(-정말 마음에 드는 표정!^^)
초콜렛이랑 커피…먹고 마시는 상상도 하다가
‘성형수술’ ‘다이어트’ ‘몸짱’이란 말들 하지 않았을 때(?^^)의
여인들의 누드화들 감상하면서 기분좋게 머물다 갑니다.
아주 많이 감사해요
정말 정신없이 바쁘실텐데 이렇게 전시 작품들 감상할 수 있게 해 주셔서 !!!!!!!!
참나무.
08/02/2013 at 06:33
괴뢰군 모자 쓴 모습 보며 잠시 쉬는 시간, ( 또 나가야하지만…)
은행가면거 카드를 안가지고가서 …오늘 시작부터 스케줄이 엉켰어요..ㅎㅎ
덕분에 운동 시간이 좀 줄어들었고…나머진 다 계획대로…
맞아요 요즘 한국 연예인들 직접 보면 얼~~마나 말랐는지…
오늘 여인 누드들은 정이가지요…^^
허러럭대며 이렇게라도 올려놓길 자알 했네요
플로리다까지 건너갔으니…^^
전혁림 화백과 한묵 화백, 빠진 거 방금 추가했어요
손풍금
08/02/2013 at 06:44
아기를 보고있자니..
새삼스레 참나무 언니를 처음 뵌 날이 생각났습니다.
이후 시간을 함께 보낸듯 싶어 몹시 기쁜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제나 이곳에서 웃으며 마주앉아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
그 이야기 귀담아 듣고 갑니다.^^
산성
08/02/2013 at 10:06
아침에도 들렀다가 읽을거리 너~무 많아 포기(?)하고 나갔어요^^
지금도 이쁜 아기만 들여다 보다 갑니다.
손상기 화백..하니 가슴이 찡~해 옵니다만
설 잘 지내시고,
준비하시는 동안도 기운 넘쳐나시기를
저에게도 당부하는 말(씀)이랍니다.
揖按
08/02/2013 at 11:29
아이의 눈망울이 초롱초롱하니 맑고 깨끗합니다.
그 밑의 나부들의 표정에 비하면 천사입니다.
벗어 봐야 그게 그거고, 상상만 깨어지고 마는데 왜 굳이 벗기는지….
보일듯 말듯 안 보이는데서 최고의 미학이 나오는 것 아니던가요.
참나무.
08/02/2013 at 12:28
그러고보니 우리 인연도 제법 오래되었지요
이럴 때 인터넷 고마움을 느낀답니다.
구정맞아 얼마니 바쁠까요
이젠 예전보다 조금 여유를 찾았으니
부디 즐기는 시간도 많이 가지길바랍니다
계속 신경쓰고있는 상인회 일도 순탄하길 빌어요 손풍금님..^^
참나무.
08/02/2013 at 12:33
볼 때마다 빠진 게 있어서 거듭 수정하고있답니다.
손상기 전 열리는 소식 들으면 모조리 다녔지요- 예당, 과천 국립…샘터화랑 등등
그런데 부인과 나란히 그린 이 나부상을 본 기억이 안나서요?
다 읽으시라고 올린 건 아니고 순전히 저를 위한거랍니다
가져온 곳에서 그대로 올리니 테이블이망가지고 날리도 아니어서
고치느라 애를 목느라 정작 하고싶은 얘긴 하지도 못했네요…;;
어디 다녀오셨나요 산성님? 한 며칠 안보이셔서?
마이란 블로그도 가보시구요..^^
참나무.
08/02/2013 at 12:39
개피향이 온 집안에 퍼집니다
수정과 하느라 생강과 개피 끓이는 중이거든요
누드…올리기 좀 그렇네요 그 전에도 비슷한 말씀 하셨어요
아 그래도 손상기 화백 스토리는 꼭 읽어보셔요
맨 위 이인성 화백 나부상도 개성있지않나요
직접 보면 어떤 느낌일지 많이 궁금하답니다.
집필 계획이 있으시더군요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초록정원
08/02/2013 at 14:17
어휴~ 보들보들 야들야들 왕자님 입술에 뽀뽀하고 싶어요~ ㅎㅎㅎ
저도 손자 볼 때가 되어가나봐요~
큰녀석 이번 설에 여친 집에 인사 간다네요.
설명절 잘 보내셔요.
저도 차분하게 잘 보낼게요~ ♥
士雄
08/02/2013 at 15:06
권옥연님의 부인상 그림이 참 좋습니다.ㅎㅎ
자기부인을 그린거라지요.
제일 좋은 그림은 아기사진이고요.ㅎㅎ
trio
08/02/2013 at 18:24
손자가 너무 잘 생기고 예쁘네요.
바쁘신 것…당연하지요.
제가 볼 때 조블에서 가장 부지런하신 참나무님이니까…
살림은 물론 손자 돌보고, 전시회, 음악회, 음악강연, 퀼트, 운동…어휴…
그리고 블로그에 포스팅까지….다 나열하기도 숨차네요. ㅎㅎ 죄송…
서울에서는 낮에 집에서 전화를 받는 여인이 있으면
아프거나 아니면 문제가 있는 거라고, 예전에 셀폰전화가 없던 시절에
그렇게 말하더니…정말 부지런하시고 건강하시고 바쁘시고…
좋아보여서 하는 말이예요. 오해 없으시기를…
구정명절 잘 지내세요. 참나무님!
참나무.
08/02/2013 at 23:25
이병복씨 자유극단 대표, 소시적, 연극깨나 보러다닐 때 먼 발치에서
더러는 까페 떼아뜨르 작은 공간에서도 자주 만나 참 멋진 부부…했지요
작은 그림으로도 그 때 모습이 보여 많이 궁금하해 하고 있답니다 원화를.
푸나무
08/02/2013 at 23:28
아이고 이뻐라…
아니 정말 잘생겼다요…. 참나무님 손자..
어제 서울 숲 지나오면서 참나무 님 생각햇어요.
바빠서 휙 스쳐지나가며요.
참나무.
08/02/2013 at 23:34
맞아요 그런 말 저도 생각나요
이민간 동서부부 시누이… 처음엔 길흉사 신경 쓸 일 없어’아주’ 편하다더니
요즘 나이드니 명절 시끌시끌한 분위기가 더러 그립다더군요
외국생활하는 남편들도 한국처럼 저녁 후 일정이 거의 없어 ‘억지로 가정적’이 된다지요
저도 짧은 시간이지만 딸네집 갈 땐 바느질거리 마~니 가지고 가곤 했답니다
남는 시간이 많더라구요…^^
블로그, 저에겐 보관의 기능이라 복잡하지요…^^
음악, 미술, 총체적 예술기행, 알찬 ‘장 트리오’ 일화들 저도 열심히 읽고있어요
오타 조심스러워 답글은 잘 달고 그냥 나오지만요…^^
참나무.
08/02/2013 at 23:36
아고…답글 다는 동안 푸나무님 짜안 등장…^^
서울숲은 봄이 더 좋아요…
쑥떡이 그 때까지 남아있을래나..ㅎㅎ
채송화 어머님과 명절 자알 지내셔요
블로그 딜다보는 시간이 쉬는시간입니다요~~
참나무.
09/02/2013 at 00:14
초정 님 답글이 빠졌네요
근데 아버님 퇴원하시나요?
얼마나 더 바쁘실까…
와인을 소주처럼 마시던 이야기 함 올려보셔요…아주 한가한 시간에..
이왕이면 그 댁 아드님 여친 이야기도…^^
조르바
09/02/2013 at 01:04
바쁘신게 당연해요~ ㅎㅎㅎ
감사히 잘 봅니다만,,, 행복한 명절되세요~
아카시아향
09/02/2013 at 09:19
바쁘신 중에도
유익한 포스트!!^^
새 해 복 많이 받으세요~~
참나무.
09/02/2013 at 16:01
수정과 먹으며 효능을 물어서 찾아보니 이거 자주 해먹어야겠네요
1 위장기능 강화, 소화 촉진,장을 따뜻하게 해주며 설사를 예방
2.기관지 질환 예방 및 강화, 감기 예방,
3. 철분이 많아 빈혈에 좋음
4,피부미용, 노화방지, 피로회복에도 좋은- 비타민 C가 많아서.
5. 멀미에 좋음 구토를 멎게한다 -생강향 때문에…
조르바 님도 떡국 많이 드시고 수정과도 해드세요…^^
참나무.
09/02/2013 at 16:05
장바구니들고 기어이 화랑에 다녀왔네요…^^
아카시아향 님도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박원
15/02/2013 at 14:07
그리 야하지는 않습니다.
기대하고 돌아보았는데 ㅎㅎ
참나무.
16/02/2013 at 04:54
아…제비꽃박사님 오셨네요..^^
출간하신 책 대박나시길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