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사옥 아라리오 그룹 회장 ‘씨킴’인수

김수근의 空間 사옥 인수한 천안 갑부 김창일 아라리오 그룹 회장

세계적 파워 컬렉터로 유명
35년간 3700점 작품 수집… 한국의 ‘디아비콘’ 만들어 사람들에 전율 선물하고파

예명 ‘씨킴’으로 작가 활동도

삼수생에서 巨富로,

27세때 터미널 매점 맡아 6개월만에 억대 매출 일궈 백화점·멀티플렉스로 확장

나는 바보 온달
아내 경기여고 모임 갔는데 남편들 다 서울대 수석에…무서워 다신 못가겠더라고
김수근의 空間 사옥 인수한 천안 갑부 김창일 아라리오 그룹 회장

"21일 공간 사옥 공개매각이 유찰됐다고 뉴스가 나오는데요. 야, 이거 큰일 났구나. 부끄럽고 화나고 창피하고 진짜 머리꼭지가 돌아서요. 내가 ‘또라이’ 기질이 있어서 그런 거 못 참걸랑요. 친구한테 전화해 ‘나라 꼴이 이게 뭐냐’고 막 열을 내다 가만있다 보니 ‘내가 나설까? 내가 할까?’ 그런 생각이 든 거예요."

스스로를 ‘또라이’라 부르고 또 부르는 사람치고 진짜 ‘또라이’는 없을 것이다. 한국 현대건축의 개척자인 고(故) 김수근이 설계한 공간 사옥을 지난 11월 25일 150억원에 인수한 아라리오 그룹 김창일(62) 회장은 그런 사람이다. 3일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만난 그는 "이번 공간 사옥을 통해 보존과 창조, 그 두 가지를 확실히 보여주겠다"며 "그간 작품 3700여점을 모으면서 얻은 노하우를 발휘해 시민 모두가 즐길 수 있게 하겠다"고 강조했다.

1978년 천안 시외버스 터미널 매점 경영을 맡으면서 사업을 시작한 그가 데이미언 허스트, 키스 해링, 트레이시 에민 같은 세계적인 작가 작품을 여러 점 보유한 게 언론에 알려지면서 ‘괴물’ ‘돈키호테’ 같은 별명이 붙었다. 지난해에도 미국 유명 미술잡지 아트뉴스가 선정한 전 세계 파워 컬렉터 200인에 한국인으로 유일하게 이름을 올리며 2000년대 이후 다섯 차례 세계 컬렉터에 선정됐다.

아라리오그룹 김창일 회장

공간 사옥을 인수한 아라리오그룹의 김창일 회장은“아트(art)는 사업가로서 또 컬렉터로서, 작가로서 현재진행형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게 한 나를 지탱해주는 힘이자 폭풍우를 막아주는 우산”이라고 말했다. 뒤에 있는 작품들은 그가 직접 자신의 모습을 형상화해 만든 조형물이다. / 천안=신현종 기자

돌발적이고 도전적인 행보에 일부에선 찬사를 보냈지만 시기의 목소리도 들렸다. ‘시골 졸부가 돈 자랑하려고 안달이 났다’는 식의 조롱도 이어졌다. 1999년부터는 씨킴(CI Kim)이라는 예명으로 작가로도 활동하는데, ‘졸부 소리 듣기 싫어 예술가인 척한다’는 비아냥도 나왔다. 이번 공간 사옥 매입에 관해서도 그에게 의구심 어린 눈빛을 보내는 이가 적지 않았다.


"매입 다음 날 (김수근) 사모님하고 점심을 같이 하면서 걱정하지 마시라고 인사드렸걸랑요. 어떤 바보가 그 역사 있는 건물을 함부로 하겠느냐고요. 나는 3700번의 경험이 있잖아요. 쇠를 3700번 때리면 얼마나 강해져요. 진짜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 그 바보들, 정말 바보들의 행진인 거 같아요."

◇"공간 사옥 유찰에 분노와 슬픔이…."

―공간 사옥 매입에 원래 관심이 많았나요?

"1월부터 뉴스가 나오긴 했잖아요. 전 경매에 나왔다고 해서 좋았어요. 돈 많은 사람들이 뛰어들어서 400억원, 500억원 되면 공간 그룹도 쌓인 빚 갚고 새 출발 할 수 있어 좋고, 또 잘 꾸며놓으면 시민도 좋겠다 생각했죠. 그런데 거참, 세상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확 돌더라고요. 너무 슬프고."

―처음부터 나서지 그러셨어요.

"내 역할이 아닌 줄 알았죠. 지금 제주도에서 아라리오 미술관을 6개 만들어 내년 10월쯤 오픈할 예정이걸랑요. 그런데 언제인가요? 조선일보에 승효상 선생님이 공간 건물을 손으로 딱 가리키며 ‘팔리게 놔둘 겁니까?’ 하는 기사가 났잖아요(11월 13일자). 그거 보면서 ‘야, 이거 여전히 이렇게 문제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얼마 뒤 유찰됐다는 뉴스 보곤 화가 나서 잠도 못 잤어요. 세상에 돈 많은 사람 얼마나 많아요. 몇천억원도 아니고, 김수근 선생님의 그 작품을 품어 줄 이가 없다니…."

―어떻게 운영하실 계획인가요?

"그간 건축 사무소로 쓰여 김수근 선생님 작품을 대중이 많이 못 봤잖아요. 전 모든 사람이 볼 수 있게 오픈할 거걸랑요. 내년 9월 문을 열 건데, 이름은 가칭으로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공간 속의 아라리오 미술관)’로 지어놨어요. 중심 작품은 마크 퀸의 ‘셀프'(작가가 본인의 피 4리터가량을 뽑아 자신의 두상 형태로 얼린 작품. 전 세계 4점뿐)가 될 거예요. 선생님 작품 비추려고 지난 일주일간 독일서 최신 조명 트렌드도 배웠어요."

마크 퀸-셀프

―지금까지 투자하신 예술 작품 중 공간이 제일 비싼가요?

"샀을 때를 기준 하면 공간이 제일 비싸죠. 제가 가진 작품 중 현재 시가로 따졌을 때 공간보다 비싼 건 있지만…. 근데 김수근 선생님 작품이 그렇게 돈으로 따질 수 있는 건가요? 제가요 좀 ‘또라이’라서요. 택시 요금이 4800원인데 5000원 내서 기사가 안 거슬러주면 줄 때까지 기다려요. 500원짜리가 하수도 구멍에 들어가잖아요? 열 받아서 하루 동안 잠을 못 자요. 근데 미술엔 돈 개념이 없어요. ‘또라이’ 아니고선 25일 한 시간 반 만에 담판지어 그 돈을 덜컥 내기도 어렵잖아요."

그의 작업실로 향하는데 아파트 현관 문 세 개 정도를 붙여놓은 크기의 프로이트 자화상이 눈에 띄었다. "이분이 절 닮은 거 같아서요. 제 자화상처럼 생각하고 보고 있어요. 제 이마에 굵은 주름 두 개 파였는데 프로이트도 딱 그런 거예요. 정신 세계요? 다른 건 몰라도 제가 ‘또라이’ 기질이 있는 것만은 분명하걸랑요. 집중하고 명상하고, 꽂히면 무조건 해야 돼요. 왜냐, 내 꿈이 있으니까요."

"졸부가 돈 자랑한다고 수군대도…"

그는 27세 때인 1978년 어머니가 채무자에게 빚 대신 받은 천안터미널 매점을 운영하는 걸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적자가 300만원이던 매장을 직영으로 돌리고 껌, 음료수 등 10원, 20원짜리 물품도 그가 직접 챙겼다. 6개월 만에 억대 매출이 됐다. 이렇게 번 돈으로 1986년 버스터미널을 매입하고 백화점, 멀티플렉스, 외식 사업 등으로 확장했다.

그저 ‘시골에서 돈 좀 만져본 정도’로 알려진 그가 2000년대부터 해외 유명 미술 전문지나 일간지의 머리기사를 장식하기 시작했다. 미술을 배워본 적도 없고, 국내 미술계 인맥도 거의 없던 그가 가장 먼저 들은 말은 "졸부 주제에…"였다.

"허스트 작품 200만불에 샀다고 하니까 시골에서 뭐 하는지도 잘 모르는 놈이 돈 썼다고 비웃는 거예요. 신문에 시골 졸부가 돈 좀 있다고 외화 낭비한다고 몰아세우는데…. 그래서 저 세무조사도 받았잖아요. 그림은 다 현금결제거든요. 누가 보면 국부 유출인 거죠."

―졸부가 그림으로 돈 자랑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기분은 어땠나요?

"다른 사람 같으면 다 포기했을 거예요. 그런 얘기 듣고 좋을 게 뭐가 있겠어요. 그런데 제가 좀 ‘또라이’ 경향이 있걸랑요. 제가 (남의 말 듣는) 귀가 없어요. 100 중 99가 반대하는 일을 난 해요. 2002년에 채러티(허스트 작품)를 또 샀잖아요.(당시 시가 20억원)"

―루이비통, 구찌, 프라다 등 명품업계 회장이 다 세계적인 컬렉터들이잖아요. 상업적 이미지를 상쇄하기 위해 고상해 보이는 미술 작품을 사들인다는 평이 있어요.

"저는요, 꿈이 있거든요. 1978년에 미국 LA 현대미술관(MOCA)에 가서 현대미술을 접했을 때, 그 책에서만 보던 미술 작품이 눈앞에 있는 걸 봤을 때 그 전율, 그런 거 사람들이 느끼게 하고 싶은 꿈이요. 나중에 제 미술관 왔을 때, 백만 명 중 한 명이라도 1978년 당시 저 같은 감동을 느꼈다면 전 그걸로 돼요."

"재단 만들어 작품 모두 기증할 것"

35년간 3700점이면 거의 하루에 한 점 매입한 셈이다. 돈만 있어서 되는 일도 아니라고 했다. 그중 1500번은 ‘실패’였다고 자인했다. 그만큼 ‘수업료’도 톡톡히 냈다는 것이다. 작품을 선점하기 위해 작가를 만나 설득하는 데 최소 1~2년이 걸리기도 한다. 세계적인 화랑들과 인맥도 스스로 텄다.

―하지만 현대미술이라는 게 결국 작가와 딜러와 컬렉터가 만들어놓은 부자들의 놀이터라는 얘기도 있어요.

"물론 작품이 좋아야 하지만 30%는 가변성이 있는 거 같아요. 화이트 큐브(영국 유명 현대미술 전시관) 오너인 제이 조플링이랑 굉장히 친한데요. 2000년 초인가 저한테 이렇게 권해요. 데이미언 허스트가 마약 해서 곧 죽을 거 같으니 빨리 작품 사라고요.(그는 여전히 살아있다) 그런 식으로 시장가격이 올라가는 거죠."

―결국 그림 장사 하는 거 아닌가요?

"제가 소유한 그 3700점은 파는 게 아니에요. 2001년에 시그마 폴케 작품을 60만달러에 샀걸랑요? 지금 800만달러에 팔라고 하는데 안 팔아요. 문화재단 만들어서 거기서 관리할 수 있도록 기증할 거예요. 전 그걸 제 돈으로 생각지 않아요. 천안 아라리오 조각공원(코헤이 나와의 ‘매니폴드’ 등 수십억원대 작품 20여점이 전시됨)을 보면 우리가 어떻게 생활하는 거 느끼지 않나요? 사람들이 공원에서 좋아하는 거 보면 정말 행복하고 매일 두근두근 설레요. 진정성과 영혼, 그게 아라리오 정신이에요."

"야생초의 생명력을 닮고 싶다"

꿈은 있었지만 그 해답을 찾긴 어려웠다. 20년 넘게 머릿속이 복잡했다. "2000년대 초인가, 제주도 야생초를 보는데 뒤통수를 딱 때리는 느낌인 거예요. 누가 심은 것도 아니고 저절로 자라 뿌리를 내리잖아요. 이거다! 싶었죠. 미술관을 보면 너무나 권력적이라 느꼈걸랑요. 너무 웅대해서 사람을 기죽여요. 제일 하고 싶은 건 미국 뉴욕의 디아비콘 같은 미술관이에요. 그냥 툭 왔다가 보고 가는, 그런 생명이 있는 미술관을 만들고 싶어요." 7~8년쯤 뒤면 그가 꿈꾸는 ‘꿈의 미술관’을 완성할 수 있을 거라 했다. 제주도 하도리에 1만5000평(4만9587㎡) 땅도 샀다.

"저는 말이에요. 미술도 안 배웠고, 삼수해서 후기 대학에 들어갔잖아요. 나 스스로 알아요. 지식이 모자라서 좋은 대학 못 간 거요. 그런데 아트라는 건요, 제가 모자란다고 절 밀어내지 않았고, 지금까지 절 끌어줬어요. 전 그래서 더 열심히 일해요."

지금의 그를 만든 대부분의 공을 아내에게 돌렸다. "제가 필(feel) 꽂히면 막 테이블에도 올라가 노래하고 주체를 못해요. 제가 자폐증은 아닌데요, 머릿속의 나사가 탁 풀리면 계속 혼자 떠들걸랑요.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저걸랑요. 잘났다고 띄워 주면 교만할 수 있잖아요. 그런 저를 억제시켜주는 게 제 마누라예요."

그는 자신을 ‘바보온달’이라 말했다. "신혼 초에 아내가 졸업한 경기여고 삼총사 모임에 가봤는데요. 어이구 그쪽 남편들이 다 서울대에 수석졸업에 난리도 아닌 거예요. 난 후기대학도 겨우 들어가 거기서 또 낙제로 2년 꿇었는데. 내가 무슨 강제로 아내 취한 듯한 느낌 들어 무서워 못 가겠더라고요. 허허. 지금요? 제 아내 별명이 평강공주래요. 바보온달 알아봤다고. 허허허허." 출처:프리미엄 조선 Why<–

4 Comments

  1. 도토리

    07/12/2013 at 14:18

    반가운 소식입니다!!!!
    4차원의 씨킴 회장님께 박수를 보내며
    앞으로 보여질 ‘공간’을 기대합니다..

    좋은 소식 발빠르게 전해주신 참나무님.. 감사감사합니다..!^^*   

  2. 참나무.

    07/12/2013 at 14:46

    이제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 로 바뀌게 될 공간 사옥,
    벌써 개관전 전시작품까지 정해저있네요
    마크 퀸 -셀프…그 작품 보러 천안까지 갔었는데
    그 외 이진용 개인전 등 굵직굵직한 전시들이 많이 기획되었지요

    공간사옥이 좀 더 시민들과 가까워지겠네 …승효상씨 걱정도 다소 누구러지셨겠네…
    이러며 급히’ 드르륵 탁!’ 올려두고 모임 다녀온 후 이제사 수정합니다

    오늘 초승달 보셨나요- 참 이뿌던데…^^
       

  3. 士雄

    07/12/2013 at 16:16

    좋은 소식입니다!!!   

  4. 참나무.

    16/12/2013 at 07:30

    김수근 ‘공간 사옥’ 등록문화재 결정- 허윤희 기자 – 입력 : 2013.12.12 23:38

    문화재委 만장일치 의결… 새 소유주, 미술관 활용 계획

    건축가 故 김수근의 작품 ‘공간 사옥’
    /뉴시스 건축가 고(故) 김수근의 작품인 서울 종로구 원서동 ‘공간 사옥’이 등록문화재로 사실상 확정됐다. 지난 10일 열린 문화재위원회 근대문화재분과위원회는 공간 사옥 가운데 김수근이 설계한 옛 사옥에 대해 출석 위원 10명 만장일치로 "문화재로 등록한다"고 의결했다. 장세양 설계인 신(新)사옥과 이상림 작품인 신식 한옥은 등록 대상에서 제외됐다.

    앞서 지난달 29일에는 문화재 위원인 김정신 단국대 교수(건축사) 등 전문가 3명이 현지 조사를 벌였다. 김 교수 등은 "공간 사옥은 한국 현대 건축을 상징하는 기념비적 건축물로 건물 외관은 물론 내부 공간 구성도 원형대로 보존돼야 한다" "용도 변경과 훼손이 우려돼 긴급한 보호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심지어 "소유주의 재량권이 많은 등록문화재 정도가 아니라 허가 없이 형태 변경이 아예 불가능한 지정문화재로 추진하는 게 마땅하다"는 의견까지 나왔다.

    신안준 충청대 교수(문화재전문위원)는 "새로운 소유주가 화랑으로 활용할 계획을 갖고 있어 현실적으로 일부라도 개조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며 "김수근의 체취가 배어 있는 옛 사옥 본래의 가치를 원형 그대로 보존, 관리하기 위해서는 지정문화재로 추진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했다. 등록문화재가 되더라도 소유주가 지자체장에게 30일 전까지 신고만 하면 철거나 이전을 할 수 있어 완벽한 해결책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날 문화재 위원들은 ’50년 이상이 지나지 아니한 것이라도 긴급한 보호 조치가 필요한 것은 등록문화재로 등록할 수 있다’는 문화재보호법 시행령 제34조를 적용, 지은 지 42년이 된 ‘공간 사옥’을 문화재로 등록한다고 결정했다. 공간 사옥은 최근 공개 매각 위기에 처했다가 아라리오갤러리(회장 김창일)가 미술관으로 쓰겠다며 건물을 매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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