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유월    한강

그러나 희망은 병균 같았다
유채꽃 만발하던 뒤안길에는
빗발이 쓰러뜨린 풀잎, 풀잎들 몸
못 일으키고
얼얼한 것은 가슴만이 아니었다
발바닥만이 아니었다
밤새 앓아 정든 胃장도 아니었다
무엇이 나를 걷게 했는가, 무엇이
내 발에 신을 신기고
등을 떠밀고
맥없이 엎어진 나를
일으켜 세웠는가 깨무는
혀끝을 감싸주었는가
비틑거리는 것은 햇빛이 아니었다,
아름다워라 山川, 빛나는
물살도 아니었다
무엇이 내 속에 앓고 있는가, 무엇이 끝끝내
떠나지 않는가 내 몸은
숙주이니, 병들 대로 병들면
떠나려는가
발을 멈추면
휘청거려도 내 발 대지에 묶어줄
너, 홀씨 흔들리는 꽃들 있었다
거기 피어 있었다
살아라, 살아서
살아 있음을 말하라
나는 귀를 막았지만
귀로 들리는 음성이 아니었다 귀로
막을 수 있는 노래가 아니었다

한강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 ‘  134~135P
문학과 지성사

044

 

나도 노인이면서 가급적 경로석엔 잘 안앉는다.
다리 많이 아프거나 좌석이 그 곳밖에 없을 땐
할 수 없이 앉아 얇은 시집을 읽거나 손전화 꺼내
겨우 수정이나 하고 있으면 말 걸어오는 노인들이 있다.

“눈이 참 좋은가 봅니다.”
– 아 네…

이런 일은 허다한데 어느 날 한강의 시집
마지막 즈음 읽을 때 였다

바로 곁의 할아버지 한 분이

“경기여고 나왔지요”
– 네에?

“틀림없을걸요”
… ….;;

이 ‘사건’ 이후엔 더더욱 경노석은 피한다.
말을 안해 그렇지 더 한 일도 허다하지만
… ….

10 Comments

  1. 데레사

    04/06/2016 at 16:16

    나는 경로석에 앉으면 아예 눈을 감아버리거나 딴짓을 합니다.
    말 걸어올 틈을 안 주지요.
    예수 믿고 천당가자는 사람에서 부터 어디 아픈데 없느냐
    뭘 먹으면 낫는다는등…. 귀찮아서에요.

    • 참나무.

      04/06/2016 at 17:13

      저도 아예 자는척 해야겠어요
      데레사님 수술날짜가 말경이라
      또 어디 여행 한번 더 하셔도 되겠다…
      했지요

  2. 홍도토리

    08/06/2016 at 12:14

    경로석은 나름대로의 풍경이 있나봅니다..!?
    ..한강 시집
    집안의 가장 작은 공간에 앉아있을 때 조금씩 읽고 있어요.
    때론 슬프고, 때론 아프고,..
    푸근하고…
    아직 더더더
    감정 이입이 되려면 더더더 많은 시간을 쏟아얄 것 같습니다.

    • 참나무.

      08/06/2016 at 16:13

      맨부커 수상도 번역이 관건이었지요
      번역 잘 하는 아드님 생각도 하며
      그녀 작품 대하고 있어요

  3. 비풍초

    13/06/2016 at 13:34

    헉.. 그 할아버지는 도대체 뭘 근거로 그런 추측발언을 하셨다는 것입니까요?
    저는 참나무님이 K여고일지도 모르겠다라는 추측을 오래전부터 해왔지만 그건 블로그 내용을 참작해서 나온 추측이고요.. 한강과 경기여고? 한강이란 소설 중에 경기여고와 상관있는 얘기가 나오나요?
    근데 출신고교 물어보는 거나 밝히는 것도 굉장히 조심스러워 하는 사회인데요.. 특히 K와 S 는 말이죠..
    하여튼 내 아는 이들에게 수다떨 일이 하나 생겼군요.. 조블 참나무라는 분이 너네 선배다라고.. ㅎㅎㅎ

  4. 비풍초

    13/06/2016 at 13:39

    아.. 한강이 소설이 아니고 작가 이름이군요.. 무슨 상 탔다는.. ㅎㅎ

    • 참나무.

      13/06/2016 at 15:32

      저 가만 있으면 경기여고나온 여자 되는데
      사실은 아니랍니다.
      제 추측인데 제가 아직 눈이 좋아 안경안쓰고
      또 꼬불꼬불 퍼머머리가 아닌 생머리라
      그런 추측을 한 건아닐까요…^^

    • 참나무.

      13/06/2016 at 15:34

      넵 아버님이 소설가 한승원작가지요
      예전엔 한승원작가의 딸…이랬는데
      요즘은 한강의 아버지…이런다네요

  5. 비풍초

    13/06/2016 at 13:43

    근데 그 번역가가 어떻게 이중언어가능자 bilingual 도 아닌데 한국어 몇년 배워서 한국어 뉘앙스를 다 이해하고 번역이 가능했을까요? 노벨문학상은 번역된 책에만 상을 주는 것일까요? 설국도 번역된 것에 대해 노벨상 수상한 건가요? 노벨상 심사위원들이 모두 일본어를 아주 잘 하는 사람들이 아닐테니까 …

    • 참나무.

      13/06/2016 at 15:41

      번역 잘 하기 정말 어렵지요
      고유의 정서까지 이해를 해야하니…
      이런 일도 혹 운이 따르는 건아닐까
      가끔 그런 생각도 들더랍니다
      더 좋은 작품도 있는데 번역이 잘 되어 선택된 경우도 있어서
      언제였나 영인문학관에서 ‘번역문학전’ 이란 테마로
      강의 들은 적 있는데 보통 심각한 게 아니더군요
      학구적인 ㅂㅍㅊ님 덕분에 bilingual 단어 하나 알게되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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