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T 타고 1박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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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달력을 보내주는 분이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렌즈인 인간의 맨눈으로 바라보는 편안하고 사실적인 사진을 추구하는’ 분이라 언제나 맘이 편안해지는…

어느 해인가 합천 가회 풍경이 있어서 막연하게 ‘언제 한 번 가보나’ 맘 속으로 원을 세운 적이 있었는데  2017 달력은 모두  합천 가회에 있는 ‘비채움 시원’의 풍광들이었고 우리는 초대를 받았다.  이름하여 1박 2일 봄맞이  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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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진주에서 국민학교 다닐 때 엄마 부임지가 합천군 가회국민학교였을 때가 있었다.  (그 때 교육 공무원들은 3년 간격 로테이션으로 전근을 다녔다) 할머닌 두풍 없애주는 게 국화라며 해마다 늦은 가을이면 헌 건 버리고 엄마가 따온 새로 말린 국화를 다시 채워 얇은 베개들을 만들곤 하셨다 .

그 국화를 따던  황매산 일출이 1박 2일 일정에 있는 것만 알고 다른 데는 어딜 안내 할지 도 모르고 분당선 수서에서 쉽게 탈 수 있는 SRT에 오른 우리는 오랜만의 만남이라 흥분하여 아주 작은 소리로 소근소근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한참 후 역무원이 조용히 다가와 주의를 주는거다. 아주 예의 바르게 키까지  우리 눈 높이로  낮추며 정중하게…요지는’…얘기 삼가라고…’

손전화도 진동으로 바꾸고  전화 받을 때는 객차와 객차 사이로 나가 받으란 안내 멘트를 듣긴해도 조용조용 말하는 것까지 주의를 받을 줄은 몰랐다. 그러고 보니 다른 승객들은 모두 재미없게 손전화만 드려다 보고 있었고 우리처럼 소근거리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긴 했다.

우리는 무안해서 금방 얘길 멈추고 다른 승객들 처럼 손전화를 드려다 보며 한편으론 얘기를 크게 한 것도 아닌데 문자로 불편사항을 신고한 승객이 혹시 있었을까? 의문을 품고 주위를 휘휘 둘러보기도 했다. 오래 전 기차여행 할 때가 생각났다. 삶은 계란 까먹고 사이다 마시며 트림하던 ‘그 때 그 시절’ 아주 가끔 갈고리 손인 상이군인이 물건을 강매할 때는 간이 콩알만 해질 때도 있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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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김천 (구미)에 내려 비로소 큰 숨을 내쉬며 ‘그때 그시절’ 얘기도 했고 한 유모어 하는 바리톤 임준식씨께 들은 일화까지 풀어놓았다. 조용한 음악회장에서 기침 때문인지 사탕 까먹는 관객이 단 한번에 까면 될 걸 딴엔 조심하느라 “뽀시락 뽀시락” 또 한참 있다 “뽀시락 뽀시락” 하면 더 짜증난다 하던…

조용한 객차 안에서 우리처럼 ‘소근소근’ 하면 그 ‘뽀시락 관객’처럼 더 신경은 쓰일거라며 올라가는 SRT 에선 아예 벙어리가 되자고 굳게 약속 하며 속 시원하게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여하튼지간에 엘로카드 받은 사건은 충격이라 오래오래 회자될 사건이었다.

수서에서 김천 (구미)까지 1시간 20분 (KTX보다 훨씬 더 빨리) 도착 했고 김천(구미)에서 합천까지 자동차로 두 시간 남짓이라 우릴 초대한 분이 차를 가지고 마중을 나와 합천 100리 벚꽃길을 달리며 맘 놓고 떠들었다. 하동 십리 벚꽃길도 굉장한데 팝콘처럼 팡팡 터질 100리 터널은 얼마나 더 장관일까(아마 이번 주 중이 피크?) 유행가 가사처럼 손만 대면 터질 듯한 봉오리들을 차창으로 보며 신나게 달렸다. 어떤 길은 대관령처럼 꼬불거리기도 해서 초대한 분께 몇 번이나 고맙다는 인사를 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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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비채움 이정표가 보이고 달력으로만 보던 ‘비채움 시원(詩園)- 2017 달력엔 詩苑: 나중에 다시 물어봐야지) 나타나고 연수원과 숙소가있는 곳으로 들어가 일단 짐부터 풀었다. 입구 테라코타 인형들이 모두 입을 벌리고 우릴 환영하는 듯 했다. 숙소 내부은 2층으로된 단독  건물인데 온돌방도 있고 1,2층 침대방도 있었다.   (*우고 우고 틔운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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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먼저 물소리 나는 계곡부터 안내받았다. 내설악 오색 약수터를 방불케 하는 계곡은 전국적으로 대가뭄 인데도 폭포도 볼만했고 한여름 자연 풀장으로 손색없는 소도 몇 군데 있었다. 비채움 시원은 두 군데로 나뉘어진다. 경남 합천군과 산청군을 경계로  산철쭉 군락지로도 유명한 황매산 앞쪽은 유홍준 교수가 즐겨 찾은 영암사지 석탑을 껴안은 모산재와 모산재 아래 천연 계곡을 끼고 있는 ‘석정’ 지역과 산 아래 저수지를 내려다 보는 ‘구실’ 지역 두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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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먹까지 있는 넓은 정원

첫날은 넓은 저수지(보다는 호수가 더 어울리는 )를 차로 한 바퀴 돌았고 다음 날은  아침밥 먹고 걸어서 호수 주위를 돌았다. 주변엔 버들꽃도  연두잎과 함께 한창이고,  열매가 같이 맺히는  오리나무, 또 은사시 나무, 그 외 익혀도 나는 금방 까먹는 나무들과 야생화 설명까지 들으며 물안개가 피던 풍광은 상상만 했다. 도처에서 백로와 왜가리들이 놀고 있었고 우린 좀 이른 저녁을 먹고 생각지도 않았던 카페에서 커피도 마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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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나 …시골 다방에서 이딸라 에스프레소 잔과 고흐 ‘별이 빛나는 밤에’ 가 전사된 컵이 나오다니… 우리는 생각지도 않았던 터라 얼마나 호들갑을 떨었는지…더구나 우리가 마신 커피는 저녁 식사한 식당 주인장이 꿈꾸는 정원사(이하 꿈정님- 옛 조블 가족들은 초반부터 눈치채셨겠지만 )이 일등 고객이라 한 턱 낸 공짜커피라 더 기분을 좋게했다.

4 Comments

  1. 데레사

    07/04/2017 at 08:31

    아주 좋은 여행 하셨습니다.
    몇년전 무무님 만나러 가면서 합천 벚꽃길을 지나갔지요.
    그때 흩날리던 벚꽃길이 정말 멋졌어요.
    이제는 무무님도 가고 없고….

    옛날에 합천 삼가에 친구가 있어서 방학때 갔던 적이 있어요.
    가회, 삼가, 다 그리운 이름들인데 그런 멋진 곳이 있군요.
    나도 가보고 싶어요.
    허리 아픈후로 운전을 안 하니까 아들이나 졸라야 겠습니다.

    • 참나무.

      07/04/2017 at 20:26

      참 좋으셨지요 합천 100리 벗꽃길
      앞으로 선산갈 때는 합천으로도 가야봐야겠더군요.
      벚꽃은 다시 피는데 한 번 간 사람은…ㅠ.ㅜ
      벚꽃 철 아니어도 합천 주위엔 볼거리들이 많더군요
      우선은 여독 잘 푸시고…
      설설 다니긴 우리나라도 좋지요

  2. 말그미

    17/04/2017 at 17:02

    참나무님,
    참 오랫만에 이곳을 들렸어요.
    SRT 타고 비채움 여행기에서 ‘참나무님 냄새’가 나서
    반갑고 그리웠습니다.
    편안한 봄날들되셔요. ^^

    • 참나무.

      17/04/2017 at 17:29

      아 말그미님 정말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시나요.
      스페인, 손주 육아일기 그립네요…^^
      위블은 않으시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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