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크리스티나

해외에살면서이국생활의이점이라고한다면한국에서보다는외국의다양한인종과풍습등을쉽게접할수있다는점이다.특히내가살고있는델리는메트로폴리탄답게세계각국의사람들로북적댄다.유럽이나미국사람들뿐아니라아프리카나남아메리카,아시아의각양각색의사람들과만날수있고또친구가될수있다.

이곳인도에서13년째살다보니이제인도는나의삶의일부분이되었고,일년에한차례정도의한국나들이가이방인처럼낯설게느껴진다.이곳에서둘째아이까지낳아서인지제2의고향처럼느껴지는것은당연한지도모르겠다.

해외생활하면서만났던많은이들중에서잊지못할아름다운추억의외국친구들이몇몇있다.

맨처음으로생각나는사람은인도남부의뱅갈로르에서친절을베풀어주었던푸짐한몸매의크리스티나아주머니이다.벨기에에장성한자식들을놔두고뱅갈로르에는남편과함께생활하면서나처럼처음외국에서온사람들을돕기위해봉사활동도하고여가시간에는책을읽거나글을쓰시던인상좋은분이시다.

어디를다니든항상사진찍고기록남기기를좋아하던그분으로인해벨기에라는나라와그분남편이근무하던볼보자동차회사까지좋아하게되었다.

IMF가시작되던해에인도로온우리가족은타한국직원들의시샘(?)속에서-다른가족들은누군가가한국으로돌아가야하는상황이었고,불쑥나타난내가영어를구사하는데아무런어려움이없었기에도움을주지않아도된다는그런야릇한분위기였다.-아무런정보도얻을수없었으며판이한생활방식에적응을하지못한나는가끔씩두통에시달리던와중에우연히만난분이다.

그분의도움으로나는외국인들의모임에참여하게되었고당시처음으로설립된CSB(CommunityServiceofBangalore)에창립멤버가되었다.일주일에한번씩단장인메이아주머니집에서크리스마스바자회를준비하는모임이었다.여러가지생활소품을재단하여만들고뜨게질하면서세상사를얘기하며정보도나누는그런모임이었다.크리스마스바자회를열어서얻은수익으로는고아원이나양로원들을도와주었다.우리네들의소모성만남보다는모여서뭔가를만든다는점,남을위해봉사한다는점에서무척신선하고본받을부분이많은모임으로기억된다.

또한일주일에한번씩,볼런티어(자원봉사)로3시간씩전세계로부터의뱅갈로르의정보를문의하는사람들에게원하는것들을전화로알려주는서비스를하였다.당시12-3년전의뱅갈로르는몇년뒤의IT도시넘버원으로서의명성을준비하려는듯,세계전역의많은외국인들로부터문의가있었다.특히기억에남는것은피지로부터의3번에걸친어떤남성으로부터의문의전화였다.남태평양의환상적인섬피지를떠올리면서상상만으로즐거웠던기억이난다.

인도에서는차가우리의발과같다.미국과는또다른,차가없이는생활할수가없다고해도과언이아니다.그런데크리스티나아주머니는모임이있을적에는자신의차를우리아파트까지보내주어서같이참석하게하는배려를아끼지않았다.당시30대중반의나이인나에게는너무도과분한대접을받는것같아서항상미안했고감사해했다.

2년동안의뱅갈로르에서의재미난생활을하던중우리는델리로발령이나서인도의수도로오게되었다.당시나는뱅갈로르에서태어난젖먹이둘째아이를동반하고새로운인도사립학교에다니는큰아들을쫒아다니느라고경황이없었다.몇달뒤크리스마스카드겸안부인사를우편으로발송하였는데주소지불명으로되돌아왔다.그만소식이끊긴것이다.

그런데2년전,불쑥나의멜(kaychang1@hanmail.net)로크리스티나남편으로부터연락이왔다.갑자기중국으로발령이나서가느라고연락을못했으며지금은정년퇴임하여고향에돌아와계시다는얘기였다.

"저를발견해주어서너무감사합니다.당신의사랑은언제나내가슴속깊은곳에자리잡고있습니다.조만간만나고싶습니다."크리스티나의소식을받자마자그즉시이런멜을보냈었다.

크리스티나와남편,시져의자상한마음씀씀이는정말로내마음깊은곳에자리잡고있으며13년이지난지금에와서도잊을수가없다.인도생활이익숙해진지금,새로이만나는사람들에게나름대로도움을주려고애쓰는것도그분영향이크다.한나라의국민한사람이그나라의이미지에커다란영향을끼친다는좋은본보기라고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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