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1986년,직장생활을대우재단빌딩에서하고있을때였다.
퇴근후집을가려는데길가에서일단의외국인들이우왕좌왕하면서목소리를높이고있었다.무슨일인가알아보니롯데호텔에가야하는사람들이었는데말이통하지않아택시를못잡아서남대문방향으로나아가면서난감해하고있던참이었다.그들이롯데호텔의발음을‘랏하테’로하였으니,당시우리나라의대부분사람들이못알아듣는것도무리는아니었다.하여튼나는그들을서울역앞대우빌딩쪽으로인도하여3대의택시를잡아롯데호텔로갈수있도록도와주었다.
그무리중에서너무도감사하다며나의명함을달라고하던사람이지금까지인연을맺고있는Mr.Florio이다.그는생각치도않게다음날연락을주었으며고맙다는인사와함께식사대접까지했다.영어가의외로짧았음에도,영화속에서접할수있는전형적인이태리인처럼사교적이고재미있는사람이었다.나는그들이이태리에서온바이어들이며사업차한국출장중인사실을알게되었다.
그것으로끝인줄알았었는데,본국으로되돌아간지1주일뒤에그는엽서로-간단한영어로-안부인사를보내왔다.그뒤의이어지는인연은정말질기다.나의결혼과한국에서의5번의이사,미국에서의약2년간의생활,인도에서뱅갈로르를거쳐델리에서도5번째의이사를거쳤는데도끊기지않고지금까지계속되고있다.
나의결혼후신혼4개월쯤플로리오씨는한국을사업차방문하게되었다.그때는신랑을동반하였는데-롯데호텔일식당에서였다-플로리오씨를만나자마자내가아이를가졌다는이야기를꺼내는바람에표내지않으려고화려한원피스를입고나선나를어색하게만들었다.환한얼굴로축하의말을건내던그와남편은나를중간에두고좋은친구가되었고,우리들은모두행복한시간을가졌었다.
과거에는한참소식이뜸하다싶으면비싼국제전화를하여놀라게도했지만,이제는서로이메일로소식을주고받는다.내가20대초에만났을때에그는40대의아저씨였으니,이제는60대에접어들었지만항상멋지게인생을살고계신분이라내마음속에는언제나젊고도마음씨좋은아저씨로남아있다.나이를초월하여오토바이를즐기고스키타러겨울이면북이탈리아별장으로,여름이면지중해의프랑스령별장으로휴가를떠나는분이기에내내건강하시기를빈다.
작년에는스카이프(skype)로연락이왔었는데머리숱이완연히없어졌지만밝고건강한모습을보여주셨다.나는내모습을보여주고싶지않아서카메라설치를안했었다.푸짐한몸매의아주머니도왔다갔다하시면서관심을보여주셨다.이제큰아들도대학을가고둘째는아직여유가있으니유럽여행을가서마음이따뜻한플로리오아저씨네가족들을만나보고싶다.무엇보다도가족모두가모여서즐기는대가족제도가마음에와닿는다.부인과메주고리성모님께다녀왔는데한글로쓰여진책자를보자내생각도나고나에게주고싶었다면서우편으로보내주셨다.나도인도에서유명한실크스카프두개를크리스마스선물로보내드렸다.
이곳델리는대도시라서그런지,사람들의개성이뚜렷하고이기적이라고느낄때가많다.앞으로얼만큼더다양한사람들과사귀면서지낼지모르겠으나사람과사귀고헤어지는반복그자체가스트레스를많이주는것은사실인듯하다.어떨때는사람사귀기가무서울때도있다.그러나피부색과종교,언어,나이등은달라도삶자체는거의가다비슷한것같다.잘난척하는사람보다는성실하고참된사람과친구가되고싶고배울점이많은사람과가까이하고싶다.나도기왕이면다른사람들에게도움을주고,찾는사람이되려고노력하게된다.그냥겉돌면서인사만하는사이가아닌서로의기쁨과슬픔을함께나누며멀리떨어져있어도좋은기억으로남게되는사람이되고싶은것이다.
해외에살다보니,엄청난많은각양각색의외국인들이해외를무대로뛰고있는것을보고놀랄때가많다.우리아이들이장성해서사회활동할때쯤이면,이들과어깨를나란히하고지금의우정을더욱키워가면서지구촌을보다아름답게가꾸어나가는세상을만들기를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