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예술계의 살아 있는 전설, 사티쉬 구지랄 전에 다녀와서

한마디로 행복하다!

인도의 미술에 문외한이던 시절, 인도 현대 미술관에 가서 처음 대한 그의 작품을 보고 나는 사랑에 빠졌었다. 특이하게 올록볼록한 캔버스위로 아름다운 색채가 춤을 춘다… 인도 미술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된 예술가, 사티쉬 구지랄(Mr. Satish Gujral)

1월 말, 한국에서 제네시스 국제 학교로 오신 선생님과 세 학생들을 데리고 점심 식사를 하고 시내구경을 하던차에 들른 인디라간디 예술쎈타! 입구부터 사티쉬의 작품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웬 횡재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런데 학생들과 같이 다니다보니 웬지 아쉬웠다. 아, 그분이 8세에 청각을 잃었구나! 90세 되는 기념으로 이렇게 귀한 전시회를 한달간 하는구나!

같이 갔던 남편도 한번 더 오자는 약속을 하였다.(21.01.2016-20.02.2016)

마지막 날은 마침 일요일이었고 고 3인 아들은 집에서 시험공부하라고 우리 부부는 발걸음도 가볍게 길을 나섰다.

1925년 12월 25일(그러고보니 크리스마스날 생신이네) 파키스탄의 젤럼에서 태어나다. 8세때 사고로 청각을 잃고 뜻하지 않게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게 되다. 1939년 라호르의 Mayo School of Arts 에서 응용 미술(mastered stone and woodcarving, clay modeling, drawing and design, scale drawing etc.)을, 1944년에는 뭄바이로 와서 Sir JJ School of Art 에서 순수 미술을 공부하다. 1952년에는 장학금을 받아 멕시코의 Palacio Nationale de Belles Artes 에서 공부하게 되다.(1952-54) 그곳에서 프리다 칼로의 남편이자 유명한 예술가인 디에고 리베라를 비롯, 데이비스 세퀴로스의 가르침을 받는 기회를 갖게 되고 이후 작품에 많은 영향을 미치다. 미국의 뉴욕과 영국, 유럽을 거쳐 인도로 돌아와서는 어렸을 때부터 배워왔던 나무와 도자기, 모자이크와 금속을 이용한 다양한 작품세계를 선보이게 된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리 독립하면서 수많은 피란민들이 내려오게 되고 그들에게 가해진 횡포에 대한 분노를 캔버스에 어두운 색과 고뇌하고 슬퍼하는 군중들의 모습으로 담아 표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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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yle Evolution of Arti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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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놀라운 재능 한가지는 델리의 벨기에 대사관을 건축한 것이다. 20세기에 건축된 전세계 1000 위대한 건축물 중의 하나로 들어간다는 이 대사관에는 사티쉬의 벽화 및 그림,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외 다수의 건축물을 디자인 했다.

 

그는 회화와 조각으로 많은 상을 받았는데 레오나르도 다빈치 상을 비롯, 1999년에는 인도의 민간인에게 주어지는 두번째로 영예로운 파드마 비부샨 상을 정부로 부터 수여 받았다.

두번째로 가서 알게 된 사실은 그의 나이 70이 넘어서 귀수술을 통해 들리게 됐다는 것이다. 이후의 작품들에 생기와 삶의 긍정적인 면이 많이 보여진다. 주로 밝은 색상을 많이 사용하여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다. 작품에 많은 동물들의 모습도 보여진다.

당대에 성공한 예술가로 과거에는 연예계 동정난에도 자주 등장하곤 했는데 부인인 키란과 다정한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역시 남자는 부인을 잘 만나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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