智異山산꾼 閔 병태와 치밭목산장
‘산에무엇때문에가느냐’하는질문이왜우문으로치부될까하다가문득포개져서들어오는생각.그래,맞다.역시쉬운산은없다.하물며지리산인데.이런생각들로지리산을오르지만아무리생각해봐도지리산은이제나저제나가는데도그렇고오르내리는데도힘든산이다.서울서반나절을고속버스를타고와서,또진주서차를타고들어와한참을또오르고.

치밭목산장으로가는지리산산길은지리산을아는사람은잘안다.그러나지리산을알더라도모르는사람은또너무모른다.진주인근에사는사람이면다들잘알고있을것이라는생각은애시당초잘못된것이었다.진주에서택시를14년간몰았다는김봉조기사도잘몰랐다.지리산하면중산리지무슨치밭목산장이냐며따진다.지리산통합관리사무소에전화를한뒤에야대충어디서어떻게가야오늘저녁중으로라도도착할수있다는것을알아낼수있을정도였다.지금은대원사계곡입구까지버스노선이연결되고,유평계곡을거쳐새재까지자동차가오르내리지만,치밭목으로가는길은여전히지리산의오지처럼한산하다.

(중봉어딘가에서바라다본지리산운해)

대원사쪽으로들어와덕산을거쳐유평리새재쪽에서오르면두어시간에다다를수있다는안내에서둘러그곳까지가앞뒤챙겨볼새도없이그대로올랐다.그렇게서둘러오른것이산행을더욱힘들게한다.유월의신록이라지만장마비를잔뜩머금은하늘과안개그리고가끔씩오는가랑비탓에여름푸른지리산의자태는숨어버렸다.그러나전나무굴참나무서나무삼나무등의굵은등걸이이룬숲과각종야생화들에서풍겨나오는특유의산냄새.그리고덩치큰바람소리와물소리그리고이름모를각양각색의새지저귀는소리.지리산은말그대로살아있는지리산이다.왜지리산인가하는화두에골똘해지면서산행길에힘이주어진다.

민병태라는사람을생각해본다.그는치밭목산장의이른바관리인이다.치밭목산장이국립공원관리공단소유인탓에부쳐진,이를테면‘관급타이틀’이지만그에게그건어울리지않는다.관리인보다는산장지기산지기라는말이그답다.민병태는아무도돌보지않아방치상태에있던치밭목산장을15년째홀로지키며가꾸며돌보고있다.여기서지나칠수없는,해서우리가민병태를좀다르게봐야하는것은단지지리산이좋다라는이유만으로‘혼자서’그산장을지키고있다는점이다.

여기에전기도없고전화도없고하는류의,말하자면거진고립된상황을더할때그의산지기로서의사람됨은더욱부각된다.그런상황에서의일상화된그의고독과생각은오로지치밭목주변을가꾸고보존하면서등산객들의안전을보살피는일에전념케하는것으로용해된다.그가있는치밭목산장덕분으로종래엄두를내기가쉽지않았던치밭목-써레봉-중봉으로해서천황봉으로오르는능선길종주가용이해졌다.또그가치밭목산장을지키고있기에이산장은지리산8개산장가운데가장자연적이며정적이고산행객의도덕이그나마유지되는아름다운곳으로알려져있다.

(민병태씨.예전보다얼굴이많이좋아졌다)

민병태를만나기위해지리산을오르면서줄곧맴도는생각은아무리지리산이좋다지만왜그는세상사온갖공명심과가족들을뒤로한채이곳으로들어왔을까라는의문이다.그리고또있다.혼자산장을지키면서길다면긴하루를무엇을하며지낼까하는의문이다.이러한의문들은만일나였을경우와대비해보는지극히세속적인것들이지만,그에대한대답속에서만이이해(?)되지않는그의인간됨을알수있을것같았기때문이다.물론민병태에대한얘기는어느정도알려져있다.어렵잖게구한자료들에서대충은알고있다.지리산인근에서태어났다는것.해서지리산이좋아산에들어왔다는것.학교는어디를나오고사회에서는무슨일들을했다는것.그리고가족관계는어떻고저떻고하는것운운.

같이동행한사진하시는선배가어느야생화앞에멈춘다.그꽃앞에카메라를들이대고찍어댄다.산은어느새어두어져가고있다.얕은가랑비가눈앞에부스댄다.잠시땀을식히는사이멀리어디선가개짖는소리같은것이들린다.산장이가까워진것일까.해발910m삼거리갈림길에서도한참을올라왔고무재치기폭포가산길옆200m라는팻말도지나쳤다.

치밭목에그유명한‘치순’이라는진돗개가민병태와같이산다고했는데,치순이가짖는소리인가.들은얘기로는치밭목산장에서제일먼저산행객을반기는‘사람아닌사람’은치순이라고했는데.

(예전의’치순이’는이제없다.현재치밭목산장을지키는이개가’치순이’의혈통인지는모르겠다)

막바지올림길을헉헉거리며올라와걷기에아주불편한나무계단을지나여기쯤이라고느꼈을때“컹,컹”개짓는소리가들린다.치밭목산장이다.참왜치밭목인가.민병태말로는두가지설이있다.주변에참취곰취등취나물밭이군락을이루고있는고개라고해서생겼다는설과,천황봉으로가자면비탈길로치밭아올라가는고개라는뜻에서붙여졌다는설이있는데,앞엣것이유력하다는것이민병태의말이다.‘취나물밭고개’라는말은1백여년전부터이지역에서쓰여지던말이라는것.

(눈속의치밭목산장)

치밭목산장은굴참나무숲속에자리하고있었다.조개골과장당골의경계를이루는능선상에자리잡고있어서인지두골짜기로부터안개가넘나들고있어언뜻보면지리산의고도같은느낌을준다.자그마한단층슬라브본체앞마당에는인근의참나무원목과철도침목등으로만든탁자와고사목이몇개심어져있다.이같은산장의골격은민병태가지난86년9월처음들어와근3개월간을진주의산악회(마차푸차레)후배들의헌신적인도움으로받아그가직접보수하고만들고세운것들이다.물론그후국립공원공단관리체제로넘어가면서일부산장내부도새로바꿨고,취사장화장실도마련했다.그러나민병태의치밭목산장에대한애정과관심때문인지우리주변에일상화된품팔이일꾼들의날림공사를치밭목산장에서는어느구석에서도찾아볼수없다.치밭목산장은그만큼단단하고야무지게자리잡고있었다.

산장안은껌껌하다.지친몸에털썩주저앉으려는데,반대편출구를뒤로한채어두운모습으로누군가서있다.“민선생님”했더니그대로가만있다.민병태는자신을부르는게아니라는생각을했을지도모른다.잘못호칭했다는생각이들었다.내부가눈에익어지면서큰개한마리가바닥에웅크리고있는것이보인다.치순이다.민병태를보자꼬리를흔들면서앞서려는데,한눈에보아도정상은아닌것같다.그는올해사람나이로18세다.개나이로는노인이다.활동력이떨어지면서안에서웅크리고있는시간이많아졌다.신경통까지겹쳤다는데,보기에도노색(?)이완연하다.잘짓지도않는다고한다.치순이와함께‘바우’라는암컷진돗개가있었는데,작년에13세로죽었다고한다.그이후진주산후배가다른두마리를구해줬는데,아까짓은개는그들중하나일것이라고했다.치밭목의명물하나가또사라져가고있구나하는안타까움이앞선다.

민병태(47)는알려진대로걸출한산꾼이다.그는25년전시도자체가높이평가되던설악산토왕성빙폭하단을등반하기도했고,지난97년에는그가속하고있는마차푸차레산악회의히말라야케다르나스원정대의대장을맡기도했다.그런데다그는산청에서태어나어릴때부터지리산을다녔다.학교도지리산인근인거창에서다녔다.이런점들은그가왜치밭목에들어왔는가에대한환경적인단초는된다.그러나그것만으로는납득하기가쉽지않다.여전히남는의문–왜홀로들어와15년씩이나산장을지키고있는가.

그에대해그는덤덤한표정이다.그에무슨이유와계기가있겠는가하는반문을던지는것같다.계기는물론있었다.치밭목산장은71년전국주요산에산장이한꺼번에들어설때지어졌다.그러나그후무인산장으로방치되다가그관리권이86년국립공원협회경남지부로넘어가며민병태에게산장지기라는인연의끝이닿았다.경남지부의서정배지부장이바로민병태가몸담고있는마차푸차레산악회회장이었던까닭이다.그러나아무리그러한계기가있었다해도혈기방장하고나름대로공명심도가졌을만한32세한창의나이에무인상태로방치된지리산오지자락의산장을맡는다는것은이해가잘되지않는다.

하물며당시그는결혼을앞두고있던처지였다는점에서.

(2000년6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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