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일탈,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우편배달부는벨을두번울린다’

미국에서는그런모양이다.

우편물을전달키위해신호로삼는두번의초인종벨소리.

이게영화제목이다.

하지만영화에서는그게아니다.

우편배달부는커녕그그림자도안뵈인다.

그런데,왜이게영화제목인가.

영화를본게1980년초다.

그때는그이유를알았었다.아,그렇구나.

세월이많이흐른이즈음,

이영화가다시생각나는것은바로그제목때문이다.

‘ThePostmanAlwaysRingsTwice’

‘always’란표현은우리말제목에서빠졌다.

영화에서우편배달부가벨을두번울리는장면이나그의미의설정은없다.

어떤상징성의표현일것이다.

영화를다시한번봤다.그게느껴진다.

‘always’을보태보면더강렬하게다가온다.

무엇의상징성인가.

여자의일탈된본능과욕망을달구는시그널이아닌가한다.

잠재된그것을끄집어내는딸랑거림의시그널.

벨이딸랑딸랑거리면‘항상(always)’열리고꺼내지는것.

영화를다시보고,제목이갖는상징성을다시한번느끼면서

젊은시절,보고느낀그것과진배없음에나는안도한다.

그런시그널은나에게도통하는것에다름아닌것인지하는.

이영화는보는이들의性腺을자극하는에로物이다.

공포스릴러物로분류되기도하지만,

기실영화의본질적내용은일탈을꿈꾸는(?)여자의잠재된性的욕망과본능에대한것이다.

그결과로살인과폭력이수반된다는점에서공포스릴러영화로도분류될수는있겠지만.

영화는JamesCain의동명소설을영화화한것이다.

원작소설은영화의분위기와다르다.공포스릴러에가까운소설이다.

여자가자신을겁탈한외간남자와바람이난다.

둘은여자의남편을공모해죽인다.

그리고잡히지만,증거를쥐고있는변호사를매수해자유의몸이된다.

둘은결혼을한다.신혼여행에서돌아오는길에차사고로여자는죽고,

남자도끝내범죄행각이발각돼사형선고를받는다.

이런스토리에과도한섹슈얼리티를부여한게세실켈러웨이(CecilKellaway)감독이다.

영화는리메이킹된것이다.처음만들어진게1947년이다.밥라펠슨(BobRafelson)연출이었다.

첫영화에서는원작소설의분위기를따랐다.

프랭크役에존가필드,코라는라나터너가맡았다.

섹슈얼리티를강조키위한것이아니라는것은이들주인공의배역에서도읽을수있다.

(1947년처음영화화됐을때의영화포스터)

이영화의분위기를캘러웨이가바꾼것이다.

원작에없는인간심연의섹슈얼리티와야수와도같은폭력성을가미한것이다.

배역도잭니콜슨(프랭크)과제시카랭(코라).性腺을자극하는도발적인캐스팅이다.

영화의압권은초반강간장면이다.여기서이영화의강렬한메시지가읽혀진다.

주유소신세를지고있는부랑자프랭크가어느날,

남편이자리를비운사이코라를테이블위에서덮친다.

코라는완강하게반항한다.그러다식칼을발견한다.

그칼로찌를것이라고누구든생각하는순간,

코라는놀랍게도그칼을멀리던져버린다.

그런코라를프랭크는거칠게,거칠게범해간다.

우편배달부의벨이울려지면서쾌락의본능과함께내재돼있던

여자의性的욕망을불러일으킨것이다.

여자는강렬한섹스를원했고,본능과욕망에몸을맡겼다.

도덕이나윤리따위의,인간의이성적사고는없었다.

1930년대,대공황기라는암울한시대적상황에걸맞는

남녀간의일탈은그렇게시작되고있었다.

이부분에서는‘스트로우독(StrawDog)’에서의한장면을연상시킨다.

성적으로무능한수학자남편데이빗(더스틴호프만)을둔에이미(수잔조지).

불량배들습격에총을들고맞선상황.여기서에이미는데이빗에게총구를겨눈다.

그러나데이빗을죽이지는못한다.

결국에이미는영화막판,그녀가바란대로(?)윤간을당하지만.

이장면은우리나라에서개봉시당연히삭제당했다.

‘포스트맨…’

이영화가우리나라에개봉된게아마도1981년이었던것으로기억된다.

군사독재하,그시절의우리도암울했던것같다.

영화는그해흥행1위를기록하는공전의히트를쳤다.

시대적암울함에더해,우리들내면에도사린본능과욕망에대한

새삼스런인식도그에한몫하지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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