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무현 사람들
벌써일년이다.

화창한봄날아침,

전라도운장산가는버스안이패닉상태에빠졌다.

전직대통령의자살.

봄날,그푸름의빛이잿빛으로변해왔다.

모두가말들을잃었다.

경위야어찌됐던,전직대통령의불행한죽음은

국가의불행이아닐수없었다.

그망연함과안타까움은

일년이지난지금도생생하다.

그사람을좋아하고따르던사람들이

그때나지금이나주변에꽤있다.

그저께어떤친구는그사람을다룬책한권을사보고는

깊은추모의염을담은글을보내왔다.

나는예전이나지금이나

그사람에대한생각은덤덤하다.

무념,무상에가까운덤덤함이다.

그것은인간적으로든,정치적으로든

망자에대한나의최소한의예의다.

일년이지나고,정치의계절이오니

다시그사람이살아나고있는형국이다.

忌日과정치적이벤트가맞물리면서

추모의마음은정치적공감대를확산시킨다.

그의이름을걸고선거에나선사람들이수두룩하다.

서울시장,경기도지사,경남도지사,충남도지사,광주시장등

굵직한선거에나선후보들이그의이름을달고들먹거린다.

‘노무현정신’을계승하자는것인데,

나는그게무엇인지아직도잘모르겠다.

대통령을한사람이자신의모든과오를자살이라는,

무책임한방식으로덮어버린것도

그정신의한축일수있는게아닌가.

나는그래서그의추종자들이그런슬로건을걸고

선거에나오는자체가별로탐탁하지않다.

그래서일까.

후보로나서는그추종자들의언행도마땅찮다.

몹쓸짓을한의혹에휩쌓인어떤추종자는,

일심재판의유리한결과를모두그사람덕분으로돌린다.

지하의그사람음덕이자신을돌봐주고있다는식으로,

무슨무속적인냄새까지풍기며그사람을전면에내세운다.

그사람의’정치적경호실장’이라는다른어떤추종자는

"비굴하지않고당당하게사는일"이라는말로’노무현정신’을

신주처럼안고선거에임하고있다.

노무현전대통령이생전전가의보도처럼내세웠던

‘국민통합’과’서민’을그양반도입에달고산다.

선거라는국민적선택에의해종말을고한게노무현정권이고,

자살이라는,미증유의방법으로최후를택한게그사람이다.

그사람의’국민통합’이라는게,어떤것인지는이미판명난지오래다.

그런데,지금다시그사람을앞세워

무엇을도모하겠다는게잘납득이되질않는다.

오늘,어떤지방신문에이런칼럼이실려있다.

그사람비서실장출신의또다른추종자로,

역시그사람의이름을빌어광주시장경선에나섰다가

탈락하고는뚱딴지처럼기초의원선거에나선이병완후보를

칭송하는글이다.

6·2지방선거광주서구지역기초의원후보로노무현전대통령시절청와대비서실장을지낸이병완씨가출마를선언했습니다.그의낮은데로임하기를보면서이런경구가떠올랐습니다.’갠지스강의모래라야높은히말라야의신비를말할수있다’!

‘존경을받고싶다면

먼저겸손해야한다.’

그말’욕존선겸(欲尊先謙)’

머리수그리어깨닫는

그자세

제대로갖춘후보

찾아내는일도유권자몫.

이글을쓴사람도필시그사람의추종자일것이다.

그런데견강부회가너무심하다.

광주시장선거에나서려다실패하고는

몇단계를낮춰기초의원선거에나선양반을두고

‘낮은데로임하는겸손’이어떻고,

‘히말라야의신비’가저떻고하는데,

과연이런칭송이어울리는짓거리인지반문하고싶다.

생을다하지못한죽음은안타깝고슬픈일이다.

그게한나라를관장하던대통령의죽음이라면더그렇다.

그사람을기리려면그죽음자체를추모해야한다.

그로써그사람의죽음이무엇을뜻하는지를알고깨닫는게

살아있는그사람추종자들의몫이다.

쓸데없는것을덧붙여무언가를또다시도모하려는짓들은

오히려고인에대한모독일수있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