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만의 북한산 산행이다. 친구들은 상명대 쪽에서 오르고 나는 불광동에서 오른다. 한 친구는 건강이 회복된 후 날씨에 관심이 많다. 봄에 기승을 부리는 황사나 미세먼지에 질색이다. 오늘도 예보는 미세먼지 상태를 ‘나쁨’으로 전한다. 분명 이 친구는 날씨를 핑계로 산행에 안 나올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저들끼리 카톡에서 주고받는 메시지에 그 친구도 산행에 나오는 것으로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기실 나는 날씨 때문에 친구들이 산행에 나오지 않을 것로 생각하고 혼자 불광동에서 오르기로 한 것인데, 내가 잘못 판단한 것이다. 아무렴 그러면 어떤가. 어차피 구기동에서 만나게 될 것인데,
오늘 북한산 산행의 코스는 불광동 둘레길에서 올라 탕춘대 석문을 경유해 포금정사 터, 그리고 비봉능선을 거쳐 사모바위로 잡았다. 어쩌다 혼자 가는 산행에서 친구들과는 탕춘대 석문에서 만난다. 오늘은 못 만날 것이다. 내가 좀 일찍 오르기 때문이다.
이주 만에 오르는 산행이라 몸이 좀 무겁다. 둘레길 능선까지는 오르막이다. 한 20여분을 오르는데, 힘이 든다. 땀도 삐적삐적 난다. 윈드 자켓의 재질이 별로 좋은 것이 못돼 땀이 나면 옷이 몸에 달라붙는다. 벗을까. 그러나 벗기도 좀 그렇다. 번그럽기도 하지만, 날씨가 그닥 덥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어폰으로 팟캐스트 방송을 듣고 오른다. 김용민이가 하는 팟캐스트는 좀 중독성이 있다. 그 친구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래서일까. 역설적으로 그 친구의 좀 괴상망칙성의 언설이 구미를 당길 때가 있다. 오늘 방송엔 이 아무개인가 하는 양반이 나와 1991년에 백골단에 맞아 죽은 강경대 열사에 관한 얘기를 하는데, 새삼 그 때를 떠올리게 했다. 그 때 나는 총리실을 출입하고 있었다. 정원식 총리가 외대에 갔다가 밀가루 봉변을 당했던 것도 그 무렵이다. 그 얼마 후 노태우 대통령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나라가 보수극우의 방향으로 치닫는다. 국민의 정부에 대한 냉랭한 시선을 돌려놓기 위한 방편이었을 것이다.
팟캐스트를 들으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탕춘대 석문이다. 여기서 부터 옛 매표소까지의 산길을 좋아 한다. 평탄하면서 계절의 변화를 천천히 맛볼 수 있는 길이다. 봄은 이제 익을대로 익었다. 드문드문 진달래가 눈에 들어온다. 꽃을 피운 철쭉도 간혹 바람에 팔랑거린다. 멀리 보이는 보현봉 쪽에 구름이 걸려있다. 일기예보에는 오후부터 비가 온다고 했는데 그 전조인가.
친구들이 카톡으로 또 연락을 취하기 시작한다. 그들도 따로들 오르는 모양이다. 상도동 사는 친구가 집에서 좀 늦게 출발하는 바람에 약속장소 대신 막바로 산을 오르는 모양이다. 나보고는 어디냐고 묻고 있다. 포금정사 터로 올라가고 있다. 포금정사 터에서 비봉능선에 붙기까지가 좀 힘이 드는 구간이 있다. 그래서 절 터에서 좀 오래 쉰다. 비봉 쪽으로 가는 길 맞은 편에 돌계단이 있는 것을 오늘 비로소 보았다. 십 여년 이 산길을 다녔지만, 여태 그 돌계단을 보질 못했다. 혼자가는 산행이 좋은 것은 시간과 코스에 구애를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돌계단을 올라 보았다. 얼마 쯤 오르니 너른 공터가 나타나는데, 아마도 예전에 무슨 구조물이 있었던 것 같다. 그 쪽에서 좀 더 오르니 훨씬 더 넓은 터가 나온다. 샘터도 있다 양은 밥 그룻 한개가 샘터 곁 바위에 있다. 암자가 있었던 자리 같다. 포금정사 터는 그저 우리 산행의 한 기점일 뿐이지 그 절에 관해서는 잘 모른다. 절 터 위에 암자가 있었다면 아마도 ‘산신각’이 아니었을까 싶다. 포금정사에 관해 한번 알아봐야 겠다.
사모바위로 가는 비봉능선이 빤히 쳐다 보인다. 저 언덕 길만 오르면 비봉능선이다. 이 쯤에서는 많이 지쳐있다. 어서 빨리 올라야지 하면서 그 언덕 길을 쳐다보는데 새삼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길에 예쁜 진달래가 바람에 나부낀다. 능선에 여러 발길이 오가는 것이 보인다. 느긋한 발길들이다. 능선에 붙으면 거기서부터는 그닥 오를 길은 없을 것이니 그럴 것이다.
능선에 올랐다. 힘들여 올랐기에 통상 여기서 숨을 고르며 쉰다. 그런데 이상하다. 힘들게 올랐는데 막상 오르니 가쁜한 느낌이다. 그래서 쉬지도 않고 계속 길을 이어 갔다. 여기서부터 사모바위까지의 길도 참 평탄하다. 예전에는 사모바위에서 부터 대남문까지 잘 다녔다. 승가봉 등을 넘어가려면 힘이 든다. 이 길은 대남문까지 가는데 드는 힘을 비축케하는 곳이다. 요즘은 대남문까지 잘 가지 않기 때문에 힘을 비축할 필요도 없다. 그냥 느긋하게 내려갈 일만 남았기에 더 푸근함을 주는 산길이다.
사모바위는 우리들 북한산 산행의 하나의 아이콘이다. 변함없는 모습이지만, 그 때 그 때 색다른 느낌을 안기는 바위다. 한 여름에 더위를 다스리는 염제의 모습이기도 하고, 살을 에는 한 겨울에는 동장군의 위용으로 우리들 앞에 나타난다. 바위의 정상에는 여태껏 한번도 오르지 못했다. 오르기도 힘들지만, 꼭대기에 오르는 게 뭔가 어떤 금기를 거슬리는 것 같아 생심을 접게하는 측면도 없잖아 있다. 언젠가 중간부분까지 올랐다가 좀 두렵기도 해 내려온 적이 있다.
하산 길은 좀 과장해서 말한다면 눈을 감고도 내려갈 수 있다. 그만큼 눈에 익은 길이다. 그렇다고 방심하면 안 된다. ‘쉬운 산은 없다’는 경구는, 말하자면 쉽게 생각하는 산길에서 항상 마음에 견지해야 한다. 나도 이 하산 길에 몇번을 넘어진 적이 있고 다른 친구들도 그랬다. 환갑이 되는 해였던가, 그 해 한 겨울 환갑 나이를 생각하며 내려가다 크게 엉덩방아를 찍은 적이 있다. 그날 하산 뒤풀이에서 마신 술에 취해 집으로 가다, 논길 수로에 또 빠졌는데, 참 묘한 경험을 했다. 몸이 수로에 빠져 누운 상태가 됐는데, 뭔가 사그라지는 느낌 속에서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구기동에서는 십여년을 해온 짓거리가 따른다. 목욕을 하고 ‘삼각산’에 가는 것. ‘삼각산’이 ‘장모집’으로 바뀌는 경우도 없잖아 있었지만, ‘장모집’이 이사를 한 후에는 ‘삼각산’이 정답마냥 가는 곳이다. 오늘은 혼자한 산행이고 다른 친구들과 시간도 맟춰야 했기에 한 가지를 추가했다. 파출소 밑 편의점에서 컵 라면을 하나 먹었다. 출출했기 때문이다. 컵 라면 맛이, 이제껏 먹은 라면 중에서 유별났다. 어떤 라면 전문가가가 쓴 글에서 그 컵 라면을 언급한 것을 본 적이 있었기에 그런 생각이 추가돼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참 맛 있었다. 물론 시장이 반찬이기도 했을 것이지만.
목욕을 하고 나오니 친구들은 ‘삼각산’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우리의 미숙 씨가 무척 반긴다. 오랫 만이다. 이 집을 십여년 다니지만, 항상 변함이 없다. 주인 아주머니도 그렇고 그 아들, 그 며느리, 그리고 미숙 씨도 그렇다, 인상들도 후하고 음식 인심도 후하다. 갈치보쌈 김치로 잘 알려진 집인데, 고향 마산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라 참 많이 먹었다. 너무 많이 먹어서일까. 이즈음에는 그 김치를 잘 안 시켜 먹는다. 그 김치는 그래도 간혹 맛을 본다. 미숙 씨가 조금씩 내 놓기 때문이다. 이 집의 고기도 풍성하고 맛 있다. 토종돼지는 역시 일반 돼지고기와 다르다. 오늘 고기는 더 맛 있다. 미숙 씨가 고기판에서 김치와 썬 파를 직접 버무려주었기 때문일까. 미숙 씨가 오늘도 갈치보쌈 김치를 살짝 내 놓았는지는 모르겠다. 술이 많이 취했었기 때문이다. 항상 그랬듯, 미숙 씨에게 소주 몇 잔을 안겼는지도 잘 기억이 안 난다.
‘삼각산’은 바로 북한산이다. 무르익은 봄날, 북한산을 다시 보고 걸은 기분을 오늘 다시 ‘삼각산’에서 마무리를 한다. 적당하고 기분좋은 노곤함에 더한 한 잔 술로 마감을 한다.
데레사
2016년 5월 1일 at 6:19 오후
등산기를 재미있게 읽다가 갈치보쌈김치에 딱
필이 꽂혀버립니다. 먹고 싶어서요.
시댁이 마금산온천이 있는 북면이라 저도
그 김치에 정이 들었거든요. ㅎㅎ
koyang4283
2016년 5월 1일 at 6:56 오후
아, 그러시군요. 그 온천, 어릴 때 많이 가봤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