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약속시간보다 좀 늦게 나왔다. 토요일 산행을 제의한 건 그 친구였다. 늦은 이유에 대해 별 말이 없다. 그냥 좀 그렇게 됐다며 얼머부려 버린다. 표정이 무미건조하다. 같이 산행에 나선 다른 한 친구의 앞선 귀띰이 생각났다. 그 친구 요즘 무슨 걱정거리가 있는 것 같다. 그 귀띰을 깔고 친구를 보니 정말이지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것 같다.
걱정. 근심없이 사는 사람들이 있을까. 없을 것이다. 다들 한 두어가지 고민과 걱정거리는 다 있다. 다만 그 걸 드러내느냐 마느냐의 양태로 저마다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 측면에서 그 친구는 걱정거리를 얼굴에 나타내고 다니는 쪽인 것 같다.
나 또한 걱정과 근심이 많다. 다들 사연이 있게 마련이다. 그 걸 걱정거리로 삼는 것은 나만의 견지에 따른 것이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의 견지로 걱정 근처에도 못 가는 것일 수도 있다. 그 걸 물론 잘 안다. 하지만 그 걸 따질 수도 없다. 다른 누구와 그 사안을 놓고 상의해 본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상의하고 말고는 내 몫이지만, 잘 하지 않는 편이다. 드러내놓고 말 할 사안도 아닌 것 같고. 그러니 나 혼자 그 걸 짊어지고 끙끙댄다. 그 게 걱정이고 근심거리다.
친구는 산을 오르면서도 미적거린다. 한참을 뒤쳐져 따라온다. 국민대에서 오른 북한산 산행의 목적지는 대성문이다. 산에는 봄의 기운이 완연했지만, 시샘을 부리는 꽃샘추위의 기운이 약간 있었다. 그 게 오히려 산행을 더 상쾌하게 한다. 한 참을 올라도 땀이 나지 않을 정도의, 산행에 알맞는 날씨였다. 하지만 그 친구는 산행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지쳐가는 표정이다. 몇 차례 기다려 주기도 하면서 그 점을 지적했지만, 그 친구는 듣는둥 마는둥 했다. 우리들의 지적이 귀에 담겨지지 않을 정도라는 것은 머리가 딴 생각으로 가득차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형제봉 갈림길을 지나 일선사를 얼마 남겨놓지 않은 지점에서 그 친구는 우리들끼리 갔다 오라고 했다. 자기는 기다리거나 아니면 혼자 내려가겠다는 것이다. 일선사까지만 가자고 했다. 마지못해 따라 왔다. 결국 일선사까지만 올랐다가 되돌아 내려와 평창동 쪽으로 하산했다. 내려오는 도중에 널찍한 바위에 자리를 잡고 갖고 간 음식으로 요기를 했다. 거기서 그 친구에게 물었다. 무슨 고민이 그렇게 많은가.
그 친구는 그 질문을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씩 웃더니 뭔가 말을 꺼내려고 하는 것을 내가 가로 막았다. 고민 할 것 없다. 그 거 해 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고민과 걱정거리에 대한 사안은 이미 진행됐거나 진행되고 있는 일이기 때문에 걱정은 그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는다. 어렵겠지만 대처만 잘 하면 되니 그 걸 생각하고 연구하는 게 났다. 물론 그 게 걱정거리일 수도 있지만 걱정이라고 생각하면 밀리는 것이다. 그러니 정공법의 자세로 그 사안에 대해 적극 대처하는 게 좋다. 그러니 그런 일을 걱정삼아 하는 것은 쓸 데 없는 일이다.
다른 한 친구가 나를 나무란다. 말을 하려는데 너는 왜 가로 막느냐? 내가 말했다. 그 말 속에 이미 답이 들어 있을 수도 있다. 그 답을 걱정거리로 만들어 털어놓고 싶은 것이다. 그 걸 들어주면서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공감을 하던가 질책을 하던가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물론 해결방안적인 말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진행됐거나 진행되고 있고 답마저 어느 정도 나와있는 사안이라면 오히려 우리들의 반응이 장애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친구들끼리 동병상련의 처지로 들어주고 얘기해줄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저 친구의 표정은 그 정도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여기까지만 얘기하겠다. 결국 그 친구는 고민거리를 털어놓지 않았다. 조금 섭섭한 표정이기도 했다.
경복궁 전철역 부근에 내려 체부동 시장 어느 순대국밥 집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소주 한 잔에 여러 얘기들이 나왔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그 친구는 자기가 당면한 어떤 사안을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고 있었다. 그 게 그 친구가 고민했던 일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 친구는 객관적인 입장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듣기에 자기 일이 아닌 것인양 느껴지기도 했다. 어느 순간 그 친구는 그 사안에 대처할 것으로 여겨지는 해결책까지를 말하고 있었다. 그 친구의 걱정스런 표정은 사라지고 없었다. 물론 술탓이기도 했겠지만…
“걱정의 40%는 절대 현실로 일어나지 않는다. 걱정의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다.
걱정의 22%는 사소한 고민거리다. 걱정의 4%는 우리 힘으로 어쩔 도리가 없는 일에 대한 것이다.
걱정의 4%만 우리가 바뀌놓을 수 있는 일에 대한 것이다.”
– 어니 젤린스키(Ernie Zelinski) ‘모르고 사는 즐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