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문 老鋪 ‘맛집’ 二題
예전 80년대 중반 쯤 충무로에 사무실이 있을 때 좀 알고지내던 사람이 있다. 나이는 나랑 비슷했는데, 그 때 느지막한 나이에 미국유학을 갔다 왔다고 들었다. 남대문에서 부모님이 식당을 하고 있었는데, 꽤 유명한 집이었다. 그 집 옥호로 알 수있듯 그 친구도 그 지방 출신의 경상도 사람이었다. 그 친구를 떠올린 것은 며칠전 쯤 선.후배들과 남대문 그 집을 들렀기 때문이다. 맛집 좋아하는 선배를 따라 나섰는데, 그 게 그 집이었던 것이다. 예전에 그 집은 맛으로 남대문에서 명성이 있었다. 특히 꼬리곰탕이나 우족탕이 인근의 다른 한 노포(老鋪)인 은호식당과 함께 많은 식객. 주객이 찾던 집이다.
그 친구를 마지막으로 본 게 한 십오년 전 쯤이다. 충무로를 나갔다가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나 잠시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 친구는 술을 좋아했다. 물론 그러니 나와 알게됐을 것이고. 그 때 충무로 거리에 스탠드바가 하나 있었는데, 그 집에서 자주 만났다. 어떤 때는 합석을 해서 같이 잔을 기울인 적도 여러 차례 있었다. 어느 날인가, 그 집에 한번 들렀더니 그 집에서 구수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무슨 탕 국물 냄새인데, 도가니탕이었을 것이다. 주인 마담 얘기인즉슨 그 친구가 자기 집 식당에서 도가니탕과 수육을 한 바께쓰 갖다 주었다는 것이고 가끔 그렇게 한다는 것이었다. 마담이 도가니수육을 좀 내오는 바람에 그 걸 안주로 해서 마셨다. 마시는 중에 그 친구가 들어왔길래 서로 유쾌하게 한 잔했다.
우리들 일행은 4명이었다. 선배는 기대가 컸다. 꼬리전골을 소주와 함께 시켰다. 큰 뚝배기에 뜨근한 연기가 모락 피워오르는 게 먹음직스럽다. 꼬리는 말 그대로 소 꼬리인데, 예상보다는 자그마한 토막꼬리였다. 처음 한 숫갈 국물 맛을 볼 때는 뜨거운 느낌에 그냥 시원한 맛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꼬리 한토막을 씹어보았더니 도시 무슨 맛이 나질 않는다. 나만 그럴까 싶어 선배 얼굴을 보았더니 선배도 아마 그랬던 것 같다. 일행의 생각이 비슷했다. 참 희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꼬리가 비싸기도 비싸지만 소 부위 중에서도 얼마나 맛있는 먹 거리인가. 그런데 아무런 맛이 나질 않는다. 고기도 옛 같은 고기가 아닐 것이지만, 우리들 입맛이 나이가 드니 아무래도 변했다는 말로 대충 넘겨가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한 선배가 일하는 아줌마를 불렀다. 수육 맛 있는 거 한 접시 갖다달라는 것이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는 생각이었던가 보다. 메뉴판을 보니 수육은 세가지다. 도가니와 양지, 그리고 내장이다. 뭘 시켰는지 좀 있으니 꺼먼 돌기가 도돌도돌한 수육이 나왔다. 양지수육이다. 내가 먼저 한 점 젓가락질을 했다. 그런데, 아뿔싸 이 또한 무슨 맛이 나질 않는다. 선배도 한 점을 집어 먹는다. 인상이 별로 안 좋다. 결국 아주머니를 부른다. 이 게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 뭐 다른 것으로 바꿔줄 수 없느냐. 그 아주머니는 참 싹싹했다. 웃으면서 그러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잠시 후 도가니 수육을 한 접시 내 놓았다. 그 것도 그랬다. 얼마나 오래 삶았는지 모르겠지만, 맛도 없을 뿐더러 고기가 푹푹해서 도저히 삼켜지지가 않을 정도다. 이 걸 어떡해야 하나. 그래도 남대문에서 70여년을 넘긴 노포 아닌가. 이 집 맛이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괜히 내가 일행들에게 미안했다.
그 집에 들어가 앉으면서 일행에게 예전 그 친구 얘길했다. 나는 그 친구가 그 집에 당연히 있을 줄 알았고, 안 보이길래 어디 잠시 나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주머니에게 슬쩍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사장님, 어디 나가셨어요? 그랬더니, 저기 계시지 않느냐며 카운터를 가리킨다. 그곳에는 한 30대 중반의 젊은 친구가 앉아 있었다. 그 친구의 아들인가.
맛 집이라고 찾아든 곳의 맛이 그러니 모두 실망의 기색이 역력했다. 결국 소주만 마셨다. 4병에서 내가 한 병을 더 추가하렸더니 선배가 말린다. 하지만 기어이 내 뜻을 관철시켜 한 병을 더 시켜 마셨다. 그러고 싶었다. 그리고는 일어났다.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고운 자태의 아주머니 한 분이 우리 자리 곁에서 머뭇거린다. 어떤 느낌이 들었다. 그 친구의 부인같아 보였다. 예전 그 친구에 관해 물어 보았다. 그 여자 분은 잠시 멈칫하는 표정이었다. 어디 나가신 모양이죠. 내가 다시 물었다. 말을 얼머부리는 것 같았다. 표정이 그리 밝지 않았다. 더 이상 물어불 수가 없었다.
식당을 나오면서 카운터에 앉아있는 그 첢은 친구를 좀 더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예전 충무로 그 친구를 떠올리게 하는 얼굴이었다. 아들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러면 그 친구는 어디로 갔을까. 옛 맛집의 맛도 사라져버리고, 그 친구도 없다. 남대문이 좀 썰렁하다는 느낌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그날따라 남대문은 평소에 비해 참 한적했다. 일행이 모두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Oyster House: 1953(Another in a series of professional 8×10 pictures taken in Atlantic City in August, 1953 for Better Living Magazine, featuring my in-laws. My father-in-law is towards the right in of the line, with my brother-in-law in his arms. My mother-in-law is standing in front of them. My father-in-law was 33 years old at the time. Now he’s 93 and still in amazing health.)(photo from www.shorpy.com)
journeyman
2016년 5월 19일 at 1:32 오후
요즘은 다 맛집이라고 주장하는데 도통 믿을 수가 없습니다.
방송에서 경쟁적으로 내보내니 더 그렇더군요.
서로 맛집이라고 주장하지만 인정할 수 있는 맛집은 그리 많지 않지요.
심지어 생활의 달인에 나오는 곳도 믿을 수 없는 판이니…
맛을 잃어버린 집이라면 문슨 일이 있어도 있었을 겁니다.
koyang4283
2016년 5월 19일 at 4:01 오후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좀 습쓸했습니다. 예전에 비할 수 없는 맛이었지요. 선생님 말씀처럼 뭔가 유추해볼 수 있는 게 있었지만, 물어불 수는 없었습니다.
비풍초
2016년 5월 19일 at 11:33 오후
종로 을지로 일대의 노포들 중에 냉면집들 빼고는 아마도 이젠 다 수준이하가 아닐까 싶습니다. 저도 어느 블로그에 소개글이 그럴듯하게 올라온 적이 있어서 가족들을 데리고 종로의 갈비집을 찾아갔는데, 숯덩어리로 구워져 나오고 기름 투성이.. 가격은 절대로 싸지 않고… 속은 기분… 누가 그러더군요.. 그 노포들이 지금 파는 건 세월뿐이라고..
koyang4283
2016년 5월 20일 at 9:31 오전
대개는 소개글들이 칭찬 일변도이지요. 그러니 직접 가서 먹어보고 맛 보기 전에는 알 수가 없는 게 맛집이라는 것을 저도 최근에야 알았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