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도라(Isadora)

1970년대는 라디오의 시대였다. 물론 텔레비전도 있었지만, 그만큼 라디오 인기 프로가 많았다는 얘기다. 그 시절, 한창 잘 나가던 프로 중에 지금은 없어진 동아방송이 밤에 하던 ‘밤의 플랫폼’을 기억하고들 있는지. 그 시절을 좀 감수성있게 살았던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혹여 그 방송을 잘 모르더라도 이 음악은 알고들 있을 것이다. 기적 소리가 궥- 하면서 이어지던 시그널 뮤직, 바로 폴 모리아의 ‘이사도라(Isadora).’ 맨발의 댄서로 알려진 이사도라 던컨을 이미지로 6, 70년대를 풍미했던 경음악이다.

이 방송은 한 밤의 분위기에 맞게 시그널 뮤직도 촉촉했고, 맡아하던 여자 MC의 목소리도 촉촉했고, 방송내용도 촉촉했다. 당시 방송을 맡아하던 그 분은 이즈음도 간혹 소식을 듣기도 하고 흔치는 않지만 가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지금은 초로의 나이지만, 아직도 그 방송을 하던 때의 분위기는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벌써 40여년 전이지만, ‘이사도라’의 이 방송을 DMZ에서 다시 들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입대해 배치된 곳이 개성 바로 앞 송악OP이고 그곳에서 이 방송을 끔찍히도 아끼고 좋아하는 사람을 만난 게 그 계기다. 그 사람은 특전사 소속으로 대북 심리전방송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의 지하벙커에는 각종 라디오 시설이 좋았다. 보병사단 소총중대 병사는 특전사의 밥이다. 각종 심부름으로 그들 벙커로 불려가기 일쑤였는데, 그러다 그 사람을 알게 된 것이고 친해졌다. 그는 음악과 문학을 좋아했고 소주도 잘 마셨다.

친하고 가까워진 계기는 어느 날 밤 벙커로 불려가 엉겁결에 함께 그 방송을 들으며 많은 얘기를 나누면서부터다. 벙커에 다른 사람들은 없었고 그만 홀로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 때가 밤 10시 경이었을 것이다.벙커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마침 마주친 게 ‘이사도라’다. 그 음악이 흐르고 있었으니 그 방송이 마침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입대하고 한 4개월 여만에 처음 대하는 그 음악이고 그 방송이다. 감상에 젖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 얘기가 많아질 수밖에 없었고, 그 사람 또한 그랬다.

그 사람의 아버님은 지금도 이름만 대면 아는 사람은 아는, 당시 아주 잘 나가던 중견 방송인이었다. 그러니 그 사람은 어릴 때부터 방송계 사람들을 많이 보고 자랄 것이다. 그 방송을 끔찍히 좋아했던 것에는 그런 배경도 있었지 않았나 싶다. 하여튼 그 사람은 내가 보기에도 좀 이상할 정도로 그 방송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듯 했다. 그 방송은 매일 어떤 주제를 가지고 그에 맞는 얘기와 음악을  틀어주는 포맷으로 진행됐는데, 어떤 때는 그 날 방송의 주제를 방송 시작 전에 얘기하곤 했는데, 대개는 맞았다. 예컨대 사랑을 주제로 한 방송내용에 ‘위대한 개츠비’가 나온다고 하면 그 소설이 나왔다는 얘기다.

그 사람은 서울 외출도 자주 나갔다. 귀대해서는 저녁무렵에 대개 나를 벙커로 불러 서울서 사온 먹거리를 함께 나누곤 했다. 사고도 가끔 쳤다. 엉망으로 취한 상태로 귀대하면서 자유의 다리 검문소에서 실려와 그 벙커 선임하사를 애먹이기도 했다. 서울서 돌아올 때마다 기분 상태가 달랐다. 어떤 때는 콧노래를 부르며 들어올 때도 있었고, 어떤 때는 시무룩해져서 말 걸기도 무서운 상태로 귀대할 때도 있었다.

술을 마시다 취하면 어떤 때는 가끔씩 울기도 했다. 그러면서 알아듣기 어려운 무슨 말을 넋두리처럼 늘어 놓기도 했는데, 그 때는 몰랐지만 나중에야 그가 왜 그랬는지를 알았다. 어느 날인가는 한 밤중에 ‘이사도라’ 그 음악을 OP 스피커를 통해 볼륨을 최대한 높혀 내 보내 OP 전체가 난리를 피운 적도 있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게 모두 그 방송과 관계가 있는 것이었다.

DMZ의 장마비는 무섭다. 빗방울도 크고 굵다. 그리고 또 며칠 씩 하늘에 구멍이 뚫린듯 쏟아져 내린다. 그 해 장마 끝무렵이었을 것이다. 장마비는 마지막 기세를 부리는 양 내무반 막사 지붕 위로 둔탁한 소리를 내며 새벽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비가 좀 자아질 무렵이었던가 뭔가 ‘퍽’하는 소리가 들렸다. 빗소리와는 다른 금속성의 소리였다. 그리고 또 이어서 ‘퍽.’

소리가 들린 곳은 특전사 벙커였다. 뭔가 불길한 생각이 들어 막사 창으로 그 쪽을 보니 불이 켜지고 뭔가 소란스러웠다. 곧 이어 우리 중대본부에도 불이 켜졌다. 자살이었다. 그 사람은 권총 두발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 나는 몸과 마음이 오그라 들었다. 죄인같은 심정이었고, 두려움이 엄습했다다. 나는 왜 그 사람을 지켜주지 못했던가.

그 사람이 왜 스스로 죽음을 택했는지 나는 잘 안다. 그러나 말 할 수는 없다.

가끔씩 ‘이사도라’를 들을 때면 그 사람 생각이 난다. 그러면 뭔가 몽롱해진다. 그 게 사실인 것 같기도 하고 또 내가 만들어 낸 허구 같기도 하고. 그래서 가끔은 헷갈린다. 방송계에서 오래 성우로 일 한 고등학교 선배 분이 계신다. 작년 10월 말인가, 여러 선배분들과 마산을 같이 가면서 그 선배가 곁에 앉았길래 이 얘기를 꺼냈다. 선배가 그 얘기, 아니 그 사연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조심스러워 했다. 살아 계시는 분들이 있으니까. 그러면서 나에게 어떻게 그걸 아느냐고 반문했다. 나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사람이 내 곁에 있는 것 같았으니까.


2 Comments

  1. enjel02

    2016년 6월 10일 at 5:39 오전

    님 덕분에 이 아침
    눈과 귀가 호사를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2. koyang4283

    2016년 6월 10일 at 6:10 오전

    잘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