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방’의 그늘

종로3가 뒷골목에는 수수하지만 맛있는 집들이 더러 있다. 이런 저런 구색 따지고 까다로운 식객. 맛객들에게는 좀 어울리지 않는 집들일지는 몰라도 주머니 가볍고 털털한 주객이나 식객들에게는 꽤 괜찮은 집들이다.

​B식당이라는 곳은 미역 탕이 일품이다. 밥에 따라 나오는 미역국이라지 않고 굳이 미역 탕이라고 하는 이유는 양은냄비에 찌개처럼 끓여먹는 독단의 미역 먹거리라서 그렇게 이름 붙이지 않았나 싶다. 시원한 국물 맛은 과장을 좀 보태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가 않는다. 이 집의 서더리 매운탕 맛도 좋기로 소문나 있을뿐더러 차려지는 반찬들 중 파김치는이 집의 명물이다. 예전 광화문 사무실에 나갈 때 많이 들렀다. 비오는 느지막한 오후 미역 탕과 새콤매콤한 파김치를 안주로 마시는 낮술 맛이 좋았다.

골목에는 이 집 말고도 싸고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집들이 많다. 생선구이집도 있고 해물찜. 탕집, 족발집도 있다. 좁고 복잡한 골목 곳곳에 박혀있는 이 맛집들은 그리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알 만한 사람들은 잘 안다. 그래서 일부러 발품을 팔아 찾아가는 단골들이 꽤 있는데, 이들은 대개 낮술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값이 싸면서 맛있고, 그리 혼잡하지도 않아 혼자든 여럿이든 느긋하게 마실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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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자에 이 골목도 요즘 유행하는 이른바 ‘먹방’ ‘쿡방’을 타고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지는 모양이다. 그 중에서도 한 집이 이른바 문전성시를 이룬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었다. 그 집은 예전부터 알고 잘 들르든 집이다. 바로 B식당 맞은편에 있는 닭도리탕 집이다. 이 집 옥호에 ‘계’자가 들어간다. 그 ‘계’자는 필시 닭鷄자일 것이다. 이 집 닭도리탕은 예전부터 유명했다. ‘닭한마리’ 형태로, 실하고 좋은 닭을 도리 쳐서 진하고 푸짐한 마늘양념 등과 끓여주는 탕은 얼큰한 맛에 소주 안주로 좋았고, 그래서 낮술을 즐기는 주객들이 예전부터 많이 찾았던, 종로3가 골목의 숨겨진 맛집이었다.

​그 집을 소개하고 있는 그 글이 아주 구수했다. 글을 쓴 분은 나처럼 예전에 낮술을 그 집에서 즐겼다고 적고 있다. 하지만 그 글은 어떤 아쉬움을 담고 있었다. 값싸고 맛있던 종로3가의 한 맛집 老鋪가 그 맛과 분위기를 잃어가고 있다는 아쉬움이었다. 글은 그 탓을 ‘먹방’으로 돌리고 있었다. 그 집을 오랜만에 한번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순전히 그 글 때문이다. 옛 시절의 그 집이 떠올려지면서 설마 그럴까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종로3가 골목의 맛집들에게 예약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알 만한 사람들만 발품을 팔아 찾아오던 곳이니까. 그러나 문전성시 바람에 자리 잡기가 어렵다는 그 글 탓에 전화를 걸어 자리를 미리 좀 잡으려했다. 타박(?)만 받았다. 저녁 예약은 없다는 것이고 와서 무조건 번호표를 받아 줄서서 차례를 기다리라는 것.

​느지막하지만 훤한 오후시간. 일행과의 약속시간 보다 30여분 앞서 나갔다. 가계는 옛날 그 모습이었지만 분위기는 그게 아니다. 자리도 가고 싶은 곳으로는 안 되고 시키고 정해주는 대로 앉아야 한다. 뭔가 좀 착착 맞춰 돌아가는 조직적인 느낌이랄까, 그저 군소리 없는 손님에 어울리는 분위기였다. 방송의 힘, 그 중에서도 ‘먹방’의 포스 때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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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얘기하자면 그 집은 옛 그 집이 아니었다. ‘먹방’을 탄 탓이었는지 사람들은 줄을 이어 모여들었다. 하지만 우리들이 예전처럼 좀 여유롭게 얘기를 나누며 한잔 술을 마실만한 곳은 아니었다. 그 자리, 그 분위기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리고 요란하고 소란스러웠다. 사람들이 몰려드니 그럴 수밖에. 코를 맛 대다시피 한 앞 사람과의 대화도 나누기 어려울 정도였다. 맛도 그랬다. ‘먹방’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우리같은 시니어들의 구미에는 맞지 않았다.

그 집 닭도리탕은 다른 집과는 달리 감자와 함께 가래떡 사리를 넣어준다. 토막 친 닭보다 가래떡을 더 많이 먹었다. 닭고기가 퍽퍽했기 때문이다. 예전엔 안 그랬다. 칼칼하고 매콤하고 시원했던 국물 맛은 또 어디에 갔을까. 그 맛은 첫 한 숟갈로 그쳤다. 맛의 느낌으로 조미료가 너무 많이 들어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면 주방에 과부하가 걸릴 수밖에 없다. 쉽고 편한 쪽으로 조리의 방향이 틀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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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국물에 말아먹던 칼국수 사리를 시켜먹었는지 기억에 없다. 가래떡 몇 개와 감자로 소주만 들이켰기 때문이다. 나만 그랬을까. 아니다. 같이 간 일행은 나에게 궁시렁대고 있었다. 겨우 데려온 집이 이런 곳이냐. 결국 소주만 실컷 마신 셈이다. 어떤 음식이건 그 맛은 첫술에 달려있다. 첫술은 또 분위기가 그 반이다. 실망한 분위기는 음식 맛으로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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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심드렁해졌고, 그런 심기로 소주만 마신 셈이다. 자리에서 일어설 무렵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먹방’에 소개된 것을 알리는 사진, 그 속에서 백 머시기가 웃으며 손짓하고 있었다. 그 방송과 그 사람을 폄훼할 생각은 없다. 그 방송에서 이 집이 어떻게 소개됐는지는 모른다. 전통과 맛을 그 풍성한 넉살로 자랑했을 것이다.

그러나 전통에서 우러나는 맛과 분위기는 사라지고 없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먹방’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발길만 이어지고 있을 뿐이다. 뭔가를 앗아간 아쉬운 느낌이다. 늙어가는 우리쯤의 나이에는 술 한 잔 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푸짐하고 여유롭게 나눌 수 있기를 바라는 로망이 있다. 그 로망이 사라져버린 그 아쉬움이다. ‘먹방’의 종로3가 골목 다음 차례는 어떤 집일까. ‘먹방’이 B식당을 손댈까 솔직히 좀 두렵다.

​좀 늦은 밤 시간이었지만, 그 집 앞에는 그 때까지도 사람들이 줄을 지어 자리 잡을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심드렁한 마음과 아쉬움은 결국 근처 골뱅이 생맥주 집에서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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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1. journeyman

    2016년 6월 13일 at 3:36 오후

    예전에는 저마다 특색이 있었는데 요즘에는 다 거기서 거리가 된 느낌입니다.
    하향평준화라고날 할까요.
    열심히 산 댓가라면 할 말은 없는데, 예전 기억에 자꾸 아쉬움이 남는 게 사실입니다.

    • koyang4283

      2016년 6월 13일 at 9:01 오후

      저는 나이 먹어가는 흐름으로 보고 있어요. 다만 바라는 것은 입맛도 그에 좀 순응해주었으면 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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