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대한민국으로 온 사람들을 탈북자라고 한다. 남으로 오기는 왔지만, 그게 무슨 거주지 이전하듯 온 것은 결코 아니다. 북한의 학정에 못 견디고 살기 힘들어 북한을 탈출했다. 그래서 ‘탈’자가 붙는다. 예전 냉전시대에는 귀순자라고 불렀다. 귀순이라는 말에는 적의 편에 있다가 우리 편으로 넘어 왔다는 군사적인 의미가 내포돼있다. 냉전시대의 한반도는 준 전시체제였기에 그런 용어로 북의 사람의 환대했다. 그 때는 자유투사, 반공투사라고도 불렀다.
이 사람들이 북한을 버린 것은 전술한대로 북한에서 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는 그렇지만 탈북에 얽힌 사연들을 파고들면 각양각색이다. ‘살기 힘들다’의 이유도 그럴 것이다. 예컨대 단순히 생활적이나 이념적인 것이 아니라 죄를 저질러 그곳에서 살 처지가 못 돼 내려올 수도 있다.
그런데 좀 예외적으로 살기 힘들어 내려오지 않은 케이스도 있다. 이런 경우는 무엇 모르고 따라나섰다가 엉겁결에 남으로 온 처지다. 친구따라 강남 간 격이라고나 할까. 1987년 일가족 11명이 집단으로 탈북해 전 세계의 이목을 샀다. 바로 김만철 씨 일가족이다. 그는 자신의 가족 뿐 아니라 처가의 장모와 처남과 처제도 데려 와 눈길을 끌었다. 그 때 김만철 씨 표현대로 그가 찾은 ‘따뜻한 남쪽 나라’는 대한민국이었고, 대한민국은 이들의 탈북을 열혈히 환영했다. 이들의 탈북은 자유를 찾기위한 집단 탈출이라고 믿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30년 세월이 흐른 지금 누군가 그 탈북의 내용에 새삼 제동을 걸고 나왔다. 자기는 자유를 찾아 북한을 떠난 것은 아니고, 그저 뭣 모르고 어디로 나오라고 해서 나왔다가 함께 배를 탔다는 것. 그러니까 자신의 탈북은 전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뤄진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 사람은 김만철 씨의 처남인 최정섭 씨다. 이 사람이 얼마 전 방송에 나와 이런 주장을 늘어 놓았다. 사실 좀 놀랐다. 그의 주장이 관심을 끈 것은 지난 4월 중국의 북한식당에서 일하다 집단 탈출해 한국으로 온 북한여성 종업원 12명 때문이다. 이들이 이들이 과연 자진해서 한국에 온 것인지, 아니면 우리 당국의 납치에 의해서 온 것인지를 둘러싼 논란의 와중이기 때문이다.
최 씨의 그런 주장은 당시 김포공항에 도착한 김만철 씨 일가의 사진에 나타난 그의 모습과도 맥이 닿는다. 다른 가족들과 달리 유독 그만 고개를 축 처박은 상태로 사진에 찍혀진 것이다. 탈북에 관한 그의 말인즉슨 이렇다. 매부(김만철)가 언제 몇 시까지 어디로 오라고 했다. 그래서 거기로 갔더니 배가 있었다. 어머니도 있고, 누나. 동생도 있어 어디 놀러가는 줄 알았다. 그래서 탔다. 그랬더니 남쪽으로 가고 있었다. 탈북하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랬으면 죽어도 타지 않았을 것이다. 말하자면 매부의 말만 듣고 배를 탄 게 탈북으로 이어졌다는 얘기다.
김만철 일가가 탈북해 대한민국에 오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일본에서 공해로 추방될 뻔하다 제3국인 대만을 통해 대한민국으로 오는 그 과정이 이를 대변한다. 일본서 한국어 통역을 조총련 사람이 맡아 북한으로 송환될 위기까지 겪었다. 이런 우여곡절 가운데, 한국행을 둘러싸고 가족끼리의 갈등도 있었던 모양이다. 김만철 씨는 특히 어린 나이 때부터 철저하게 세뇌당한 처남들을 설득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후에 술회한바 있다.
방송에서 최 씨는 그 때 공항에서 좀 불안해하면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야윈 그 더벅머리 청년의 모습이 아니었다. 알맞게 살이 오른, 언듯 좀 있어보이면서 좀 거만(?)해보이기도 하는, 이를테면 자본주의가 몸에 밴 모습이라고나 할까. 말투도 좀 그랬다. 애시당초 탈북에 불만이 있었던 것을 시작으로, 최 씨의 얘기가 이어지면서 관심이 더 갔던 것은, 그가 과연 어떤 말로 결론을 맺을 것인가였는데, 그것은 반전이었다. 완전한 반전이었다.
사회자가 막판에 물었다. 그렇게 불만스런 탈북이었는데,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은가. 최 씨가 환하게 웃었다. 그 전까지의 말은 마치 농담인듯. “아닙네다. 절대로 아닙네다. 대한민국으로 온 것은 백번 천번 생각해도 잘 한 것입네다. 북으로 절대 그곳으로 가지 않겠습네다. 내래 왜 거기를 다시 갑네까.”
김만철 씨 일가가 집단 탈북할 때 지금처럼 북한의 입장을 곧잘 대변하는 ‘민변’이 있었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까. 당시 북한에서는 이들이 고기잡이 나갔다가 엔진고장이 나 표류 중에 일본으로 떠내려 갔다며 강력하게 송환을 주장하고는 공해상에 이들을 데려갈 경비선까지 대기시켜 놓고 있었다. 민변은 지금처럼 이랬을 것이다. 이들의 의사를 확인하는 것이 인권적 차원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만일 그렇게 돼 민변 사람들이 일본에 가 김 씨 가족들 가운데 최 씨를 만났으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김만철 씨 가족 모두는 전원 다시 북한으로 보내졌을 것이다. 끔찍스런 가정이다.
민변은 지금 집단 탈북한 북한여성종업원들의 의사를 법원에서 가리려 한다. 이들의 자진해서건 아니건의 탈북여부는 이들이 어떤 형태로든 정착해가면서 차차 가려지고 밝혀질 일이다. 뭐가 그리 급해 이러는지 이해가 안 된다. 이들 여성 종업원들은 사지인 북한을 넘어 온 사람들이다. 아직 여러가지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인 이들에게 이런 식으로 모 아니면 도 식으로 들이댄다는 것은 차마 할 짓이 아니라고 본다. 북한 여 종업원들의 경우는 집단 탈북이라는 점에서 김만철 일가 탈북과 유사한 점이 있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녀들의 상황이 훨씬 심각하다. 김만철 씨의 경우는 가족 모두 도망쳐 나왔지만, 이들 종업원들은 가족들이 북한에 있다. 생짜배기 볼모가 북에 있는 셈이다. 그런 처지의 이들 하나하나에게 오자마자 탈북의사를 묻는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그녀들은 누구 말맞다나 혀를 베어버리면 베어버렸지, 자신들의 의사를 결코 밝힐 수 없는 말 그대로 볼모를 둔 탈북자들이기 때문이다.
(1987년 2월7일 김포공항에 도착한 김만철 씨 일가. 오른 쪽 뒤
고개를 푹 숙이고있는 청년이 최정섭 씨다)
비풍초
2016년 6월 21일 at 7:36 오후
추천 ~~ !!
koyang4283
2016년 6월 23일 at 12:29 오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