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을 오르 내리다 보면 능선상에서 자주 마주치는 게 북한산성의 대문격인 문이고 문루다. 북한산에는 보국. 대동. 대남. 대서. 중성문 등 많은 성문이 있다. 대략 12개 쯤 된다. 대개 이들 산성 문루 쪽에 다다르면 쉬어 간다. 한 여름, 백운대를 내려 와 위문을 거쳐 뙤약볕 산길을 한참 걸어 몸이 지쳐갈 때, 나타나는 보국문은 참 마땅하고 좋은 쉼터이다. 거기서 요기를 하고 다시 차비를 가다듬고 걷는다. 그리고 대동. 대남문을 지나 문수봉과 사모바위를 거쳐 비봉에 닫는다. 좀 지친 상태면 대남문에서 구파발 쪽으로 빠진다. 그리로 내려가면 만나는 산성문이 중성문과 대서문이다. 산성문은 이렇듯 지친 상태에서 쉬어가는 곳이라, 대개는 별 관심없이들 마주하고 지나간다. 그 성문의 역사와 배경, 모양 등에 관해서는 소홀해하는 점이 없잖아 있다. 그게 아쉬워서일까, 산성문을 중점적으로 둘러보는 산행들을 가끔씩 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북한산 능선 상의 산성문이 여럿인 것을 감안하면 이 또한 쉬운 산행이 아니다.
구파발 쪽, 그러니까 북한산성 입구에서 오르게 되면 만나는 산성문이 대서문이다. 그 쪽을 택해 북한산을 접한 게 30년도 훨씬 넘었다. 그러니 많이도 마주치고 지나갔을 대서문이다. 지금도 대서문은 그윽한 느낌을 주고, 대문을 지나칠라면 뭔가 조선시대 뭔가의 느낌을 준다. 특히 하산하면서 마주치는 대서문이 좋았던 때가 있었다. 북한산 마을이 정비되기 전이다. 그 때 대서문 곁에 가게들이 몇몇 있었다. 뉘엿 뉘엿 어스럼한 석양의 산길, 대서문 바로 곁 그 가게들에 앉아 막걸리를 마시면 술맛이 났고 정취가 있었다.
요즘도 대서문 쪽을 택해 북한산을 오른다. 근자에는 연속으로 그 쪽으로만 올랐다. 그러다 얼마 전에 대서문에서 뭔가에 꽂혀 한참을 지체한 적이 있다. 그렇게도 많이 오고 간 대서문이었지만, 왜 그날 그 게 내 눈에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성문의 앞뒤, 양편에 양각된 용 형상의 석물이다. 용도 좀 사나운 표정의 형상이다. 저런 용 석조물이 왜 저기에 있을까하는 호기심에 문루로 올라가 살펴보았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문루에 고인 빗물 등을 밖으로 흘러내리게 하는 기능의 배수구였다. 용의 입을 통해 물이 흘러나가겠금 배수시설을 용 형상의 석물로 만들어 놓은 것이 참 이채롭다. 무슨 곡절이 있을 것이다. 성문의 위세를 높이기 위한 것인가.
찾아 보았더니, 그 석물 배수구는 따로 불리는 이름이 있었다. 이름하여 ‘누혈(漏穴)’이다. 구멍을 뚫은 돌이라는, 말하자면 구멍돌이다. 나는 처음엔 여자의 생리현상에 관계되는 그 누혈(漏血)인줄 알았다. 그래서 산성 대문 위에 지어진 문루의 배수구를 누혈이라는 여자의 그 머시기에 빗댄 게 이채롭고 해서 아마도 음양의 이치를 고려해 그렇게 이름 붙이지 않았나 싶었는데, 어떤 분의 지적으로 찾아 보았더니 그 게 아니었다. 바로 잡는다.
대서문의 누혈을 보고나니 중성문이 궁금하다. 중성문에도 누혈이 역시 성문의 앞뒤, 양편에 있었다. 그런데, 그 형상은 용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다른 짐승이나 그밖에 어떤 형상이 연상되는 게 없는, 단순한 배수구 형태의 돌무더기 같았다. 여기도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알아보니 누혈은 용이나 물고기 모양, 연꽃 모양, 그도 저도 아니면 단순한 돌무더기 형상으로 만들어져 있다고 나와 있다. 성문의 용도나 크기, 위치에 따라 그 격에 맞는 누혈이 만들어졌다는 얘기다.
대서문. 중성문에 이런 누혈이 있다면 한참 위 쪽, 북한산 능선에서 만나는 대남문은 어떨까. 그리고 어떤 모양일까. 그런데, 어렵쇼 대남문에는 누혈이 없다. 성문 앞뒤 어디에도 누혈은 없고 있어야할 자리에는 풀만 무성하다. 성문 앞뒤 벽 아니면 다른 어디에라도 있겠지하고 살펴봤지만 없었다. 대남문에는 누혈이 없는 것이다. 왜 누혈이 없는 것일까. 그 이유는 모르겠다. 차차 공부해 알아 볼 일이다. 이런 사실은 알았다.
대서문이나 중성문처럼 누혈이 성문 앞뒤, 양편에 각각 두 개씩 4개로만 만들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서울의 사대문은 각각 4개 씩의 누혈이 있지만, 광화문은 앞뒤에 각각 6개씩, 모두 12개의 누혈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덧붙여서 광화문의 경우 앞 문은 용이지만 뒤의 것은 용 모양이 아니었다. 그리고 자하문은 연꽃 모양의 누혈이었고, 경복궁 건춘문은 꽃은 꽃인데, 양편의 꽃이 다른 누혈이었다.
북한산은 산 자체의 역사성도 그렇지만, 산성을 중심으로 산길과 봉우리 주변에 여러가지 역사적 유적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호기심을 갖고 오르는 산행은 재미를 더 한다. 재미도 그렇지만, 힘도 더 든다. 당분간 북한산 누혈을 살펴보는 산행이 될 계속될 것 같다.
Ellyanna
2016년 7월 19일 at 9:07 오후
My hat is off to your astute command over this tociv-brapo!
Gracelyn
2016년 7월 19일 at 9:41 오후
Cool! That’s a clever way of lokonig at 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