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 나 다니면서 혼자 밥 사먹기는 여러모로 궁상맞다. 뭘 먹을까부터 어디로 갈까도 그렇고, 또 분위기와 시선도 약간 고려해야 한다. 이런 적잖은 고민(?)이 사람을 궁상스럽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달겨드는 주신(酒神)의 손짓은 그깟 궁상스러움을 날려 버린다. 한나절 시내를 다니다 혼자서 외식을 할 때에는 술이 꼭 따라진다는 얘기다.
충무로는 젊은 시절 한 때를 보낸 곳이다. 십여 년 이상을 그곳에 있는 사무실에서 일 했으니, 서울로 치면 고향이나 마찬가지의 거리다. 그래서 어쩌다 이 거리를 오게 되면 마음이 푸근해 진다. 물론 세월이 많이 흘러 변하기도 했다. 그래도 나로서는 서울에서 제일 낮 익은 곳이 충무로다.
이곳이 푸근함을 더 하는 것은 먹고 마시기에 나에게 딱 맞는 맛집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중의 한 곳이 극동빌딩 뒤로 명보극장 가는 길목에 있는 ‘사랑방’이다. 닭을 전문으로 하면서 칼국수를 맛있게 하는 집이다. 1980년대 초부터 다녔기에 주인 아저씨, 아주머니, 그리고 아직도 주방을 지키고 있는 아리따웠던 처녀와는 면이 익다. 물론 지금은 아저씨, 아주머니, 처녀가 아니다. 다들 할부지. 할머니, 아주머니가 됐다.
그저께 충무로 나가서 낮술 한 잔 잘 마신 곳도 그 집이다. ‘충일카메라’의 정 사장과 느지막한 점심을 하러갔다, 정 사장은 일 때문에 먼저 들어가고 나만 앉아 먹고 마셨다. 이 집 맛의 특장이자 비결은 뭐니뭐니해도 마늘이다. 칼국수건 닭 백숙이건 겉절이 김치건 싱싱한 마늘이 푸짐하게 들어간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에게는 가장 입맛에 맞는 먹거리들이다.
이 집은 앞에서 언급했지만, 혼자서 먹고 마시기에 좋다. ‘일인 맞춤용’의 밥과 안주가 있기 때문이다. ‘닭백숙 백반’이 그것이다. 닭 반마리를 마늘 양념에 푹 삶아 밥과 닭국물과 함께 내놓는 메뉴다. 이 집의 닭은 토종닭이다. 토종닭이라는 것은 먹어봐야 그 맛을 안다. 물론 이 집도 자기들이 쓰는 닭이 토종임을 크게 내세우며 광고한다. 하지만 광고 이전에 이 집을 좀 다녀 본 사람이라면, 닭이 좋고 맛이 좋다는 것은 경험상으로 익히 알고 있다.
‘닭백숙 백반’이 나에게 좋은 것은 그 양이다. 백숙으로 나오는 닭은 그 크기가 혼자 먹기에 알맞다. 중짜도 아니고, 그렇다고 영계도 아니다. 밥 한 공기와 양은 냄비로 나오는 닭 국물, 그리고 소주 한병 정도에 딱 맞는 크기의 닭이다. 압력으로 푹 쪄진 닭은 부드럽다. 껍데기는 고소하고 뼈다구도 쉽게 씹힐 정도로 부드럽다. 가끔 천덕구러기로 여겨지는 살코기도, 이 집의 것은 그리 퍽퍽하지 않다. 백숙과 함께 나오는 양념장이 있지만, 나는 반드시 소금으로 먹는다. 소금은 어떤 육류든 그 고기의 본래 맛을 내게 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 집은 겉절이 김치가 또한 일품이다. 몇 십년을 다녔지만 그 맛 그대로다. 그리고 이 집 김치는 또 이른바 ‘무한 리필’이다. 물론 추가해 나오는 김치는 처음 내놓는 그것과는 맛이 좀 다르다. 겉절이라기 보다 좀 익은 맛의 느낌이다. 언젠가 왜 그런가고 물었다가 아주머니로부터 ‘거덜’ 운운의 좀 흐릿하면허도 농 비슷한 말을 들었다. 아마도 처음 내놓는 그 김치를 ‘무한 리필’로 한다면 거덜난다는 얘긴가. 어쨌든 나는 김치를 한번 더 시켜 먹었다. 국물도 추가로 시켜 먹었다.
이 집 ‘닭백숙 백반’은 9천원이다. 소주 한병 3천원. 합이 12,000원이다. 먼저 간 정 사장 것까지 합쳐 21,000원이다. 정 사장은 먼저 일어서는 미안함 때문인지 계산을 하고 갔다. 잘 먹고 잘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