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발이 흩날리는 아침, 능곡 역에서 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일산 사는 후배로부터의 전화. 형, 오늘 일산장인데 소주 한 잔만 하시지요. 그렇게 해서 이뤄진 만남이고 술판이다. 한 겨울의 이런 날은 안 그래도 낮술이 제격이라, 아침부터 술이 당겨지고 있는데 후배가 슬쩍이 당기고 있으니, 말하자면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 아닌가. 일산 사는 후배도 일산 오일장을 잘 다니지만 나도 잘 간다. 매 주는 아니더라도 밑 반찬, 예컨대 마늘쫑 장아찌나 파 김치가 떨어지면 그거 사러 꼭 가는 데가 일산장이다.
후배가 이끈 곳은 ‘욕쟁이 할매집’이라는 곳이다. 어디를 가더라도 욕쟁이 할매집은 있다. 일산장이라고 없을리가 없다. 후배는 빈대떡이 어떻고 저떻고 하는데 그 말 끝나기도 전에 이미 다다른 곳이 시장 한 복판에 있는 이른바 욕쟁이 할매집이다. 할매는 없고 할매 따님이 장사를 하고 있다. 입성 좋고 서스럼없는 후배가 우쩌고 저쩌고 하는 중에 안주를 적어놓은 글판이 눈에 들어온다. 그 메뉴 중에 퍼뜩 눈에 들어오는 게 있다. ‘수구레’라는 것.
어릴 때 많이 먹었다. 내남없이 어렵고 가난했을 때 그나마 소고기라고 어머니가 국으로 끓여 멕여 주던 게 수구레다. 나중에 커서 알기로, 수구레라는 것이 소 가죽(껍데기)라는 것, 그래도 그나마 지방이 붙어있는 하빨의 ‘고기’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추억으로 남은 어릴 적의 ‘소고기’다. 오래 전, 경남 창녕의 오일장에 수구레 국밥이 인기리에 팔리고 있는 장면을 텔레비전에서 보고, 내 언젠가 저것을 반드시 먹으러 가리라 하고는 여태 이루지 못한 ‘한’이 있는 먹 거리가 바로 그 수구레다. 어느 책에 적여있기로, 수구레는 중국 마오쩌둥(毛澤東)에 주도돼 중국 공산화의 전초가 된 이른바 ‘대장정(大長征)’과도 유래가 있다고 한다. 모택동은 장정 중 굶어죽는 병정이 속출해도 결코 인민들의 재산, 이를테면 과수원의 과실이나 곡식, 가축 등에는 결코 손을 대지 말라는 엄명을 즉결사살 명령과 함께 내렸다고 한다. 굶어죽게 된 병정들은 신고있던 군화로 버텼다. 그 군화의 재료가 소 가죽, 그러니까 수구레였다는 것이다.
후배가 다른 안주거리를 뭐라 하기 전에 수구레를 시켰다. 나오는대로 먹으면 되지만 어떻게 조리돼 나오는지 알 수가 없다. 소주 안주로 시킨 것이니 창녕식의 국밥은 아닐 것이지만 어릴 적 먹어 본 경험상으로 수구레는 다듬기가 관건이다. 가죽이니 만큼 어떻게 다듬어 얼마나 부드럽게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그런 생각 때문이었을까, 할매 따님이 뭐라하기 전에 내가 먼저 말했다. 소 허파와 함께 썩으면 좋겠다. 내 말이 맞았다. 수구레와 허파를 함께 졸인다는 것이다. 그러면 수구레는 더 부드러워질 것 아닌가. 허파는 습성이다. 말하자면 축축한 고기라는 것이다. 수구레와 같이 조리를 하면 안주로 먹기에 더 없이 촉촉할 것이 아닌가. 일산시장 욕쟁이 할매집의 대표적인 소주안주는 그것이었던 것이다. 이름하여 ‘소 허파와 수구레’다.
양은냄비에 담겨져 나와 끓여지는 양은 일인분이다. 그렇게 주문하지 않았는데도 알아서 내 놓는 양이다. 언뜻 보기에 좀 모자라 보이지만, 냄비 속을 찬찬히 젓어보면 그렇지 않다. 졸이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 속에 함께 섞여진 양파, 당근, 대파가 푸짐하다. 그런 구성에 진득한 양념으로 졸이면 둘이 소주안주로 먹기엔 일인분도 충분하다는 얘기다. 우리는 그 걸로 소주 세 병을 후딱 비웠다. 결코 모자라지 않은 양도 그랬고 맛도 그랬다.
어떻게 표현해야할까. 소주 안주라는 것은 원래 그렇다. 공통의 표준이 없다는 걸 전제로 해야한다. 제각각 자기 입에 맞는 게 최고의 안주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나만의 ‘수구레’를 맛있게 먹었다. 나에게는 최상의 소주 안주였다는 얘기다. 적당히 씹히는 부드러운 식감이 고소하기 짝이 없다. 그 맛은 수구레와 허파, 그리고 각종 채소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이들을 한데 엮어 볶고 졸이는 양념이 비결이었다. 대단한 맛이었다. 일산시장 한 구석의 조그마한 주막에 이런 맛 있는 소주안주가 있다는 게 나로서는 근자에 ‘대단한’ 발견이었다.
조리법과 양념은 할매로부터 나온다고 했다. 그 따님은 딱 그 말만 했다. 할매는 오일장에는 나오시는데, 무슨 일 땜에 오늘은 자신이 대신하고 있다고 했다. 따님은 참 겸손해보였다. 맛 있게 먹는 걸 자기 맛 있게 먹는 듯 했다. 잘 먹고 잘 마셨다. 박박 긁어 먹었다. 좀 안타까워 육수를 좀 주가해달라고 하니 그냥 따끈한 물을 부어준다. 그래도 그 맛은 이어진다는 것인데, 과연 그랬다.
후배는 기어코 안주 하나를 더 시킨다. 녹두 빈대떡이다. 후배는 그것을 손으로 떼어 먹는다. 소주가 세 병이다. 눈치를 줬더니, 후배 왈, 형, 빈대떡은 원래 손으로 뜯어 먹어야 하요 한다. 따라서 먹었다. 맛 있다. 나도 취했다는 얘기다. 오일장이 서는 일산시장에는 맛 있는 수구레 안주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데레사
2017년 1월 14일 at 9:39 오전
저도 지금 먹고 싶은게 일류요리가 아니라 어릴때 엄마가
만들어 주셨던, 가난했던 시절의 음식이 먹고 싶거든요.
개떡이나 솥뚜껑에다 부쳐주던 장떡, 그리고 아버지가 소쿠리로
건져온 송사리를 호박잎이나 잔호박을 넣고 끓여주던 매운탕….
이런거랍니다.
수구레는 먹어본것 같기도 한데 잘 기억이 안 납니다.
대신 눈 내릴때 노루 잡아와서 먹었던 생각은 나고요.
koyang4283
2017년 1월 15일 at 10:32 오전
노루를 드셔보셨다는 말씀에 아득함을 느낍니다. 참 오래 된 얘기 같습니다. DMZ 군 시절, 노루를 잡아 내무반에서 피칠갑으로 해체하는 광경을 많이 봤었지만, 먹어보지는 못했습니다. 수구레는 추억의 먹거리입니다. 저는 어릴 때 많이 먹었습니다. 창녕이나 대구 쪽에는 잘들 먹는 음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