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날, 시원하고 짜릿한 생각으로

요즘처럼 더운 여름을 극복해 나가기가 쉽지 않다. 냉방기에 기대는 의존도가 높다. 냉방기가 시원하기는 하다. 하지만 덥다는 것은 안팍이 있다. 신체로써 느끼는 더위에 더해 마음까지 도 덥다는 것인데, 속 안의 더위를 냉방기로서는 감당하기 어렵다. 그것들은 어차피 기계이기 때문에 거죽만 식혀줄 뿐이다. 속 안의 더위를 식혀줄 것으로는 마음으로 느껴지는 생각뿐이지 않나 싶다. 말하자면 여러 가지 상상을 덧붙인 생각들로 가슴속 더위를 식혀 나가는 것인데, 생각도 생각 나름이라 끔찍한 것으로도 더위가 파묻힐 수도 있고, 아름답고 즐거운 생각으로 시원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둘 중에 고르라면,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후자 쪽을 택하는 경우가 많겠다. 나는 이즈음 이런 생각으로 더위를 까먹곤 한다. 나에게는 추억이 깃든 시원한 생각인 셈이다. 예전 어릴 적 어느 더운 날, 어느 곳에 내가 있었고, 어떤 짓을 한 것은 팩트다. 헌데 그 때의 그 팩트가 거짓으로 묵살되기도 한다. 그게 재미있다. 그 철저한 묵살로 인해 그 팩트를 내가 가공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역시 짜릿하면서도 재미있다. 그러면서 더위를 잊게 되는 것이다.

동무들과 해변에 섰다. 어느 더운 여름 날 황혼 무렵이다. 바다 저편에 고래를 닮은 섬이 있다. 그 섬을 헤엄을 쳐 돌아오기로 한 것이다. 초등학교 4, 5학년쯤 때였을 것이다. 그 해변은 살던 동네와 많이 떨어진 곳이다. 동네 쪽 해변에서 그 ‘짓’을 도모했으면 말릴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기에 일부러 동네와 떨어진 해변을 택한 것이다. 그 짓이 위험했기에 나름 장비는 챙겼다. ‘우끼’라는 사투리로 부르던 고무 튜브다. 나를 포함해 너 댓 명 쯤 됐던 것 같다. 해변에서 그 섬, 그러니까 우리들이 ‘고래돝섬’이라고 부르던 그곳까지의 거리는 한 1km 남짓했을 것인데, 석양 무렵이라 그런지 아득하게 보였고, 그래서일까 드러내놓고 말들은 않지만 짐짓 망설여하는 분위기가 피워오르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를 깬 게 나다. “자, 가자!”고 했던가, 아니면 “요이 똥!”이라고 했던가 하여튼 내가 먼저 바다 속으로 풍덩 뛰어든 것이다. 그 때 그 나이로는 참 겁 없는 짓이었다. 바다로 뛰어들고는 물이 좀 차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생각했던 것보다는 바다 속 파도가 좀 셌다. 겁이 좀 났다. 머리를 물 밖으로 내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도 안 보인다. 뒤를 둘러봤다. 뒤에도 없다. 동무들은 바다로 뛰어들지 않고 있었다. 소리를 쳤다. 빨리들 들어와라. 그러나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돌아가야 하나, 계속 앞으로 헤엄쳐 나가야 하나. 판단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 순간, 판단은 사라졌다. 뭐랄까, 불안감보다는 이왕 이렇게 시작한 것 어떻게 되든 끝을 보자는 일종의 자포자기 심경이 그 판단을 허물었던 것 같다. 너희들(동무들) 보다는 내가 세다는 우쭐한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는 그 ‘고래돝섬’을 헤엄으로 왕복했다. 헤엄쳐 오간 그 당시의 기억은 별로 없다. 그냥 별 무리 없이 갔다 온 것이다. 잔뜩 긴장한 것은 사실이다. 어떻게 잘못 돼 다리에 쥐가 난다든가 해도 믿을 것은 ‘우끼’ 밖에 없었다. 왕복에 얼마의 시간이 걸렸는지도 모른 채 갔다 왔다. 재미있는 사실은 해변으로 돌아오니 아무도 없었다는 점이다. 동무들은 내가 섬을 향해 헤엄쳐 나가는 것을 보고는 그냥 기다리지도 않고 떠나버린 것이다. 그들은 무슨 생각에 나만 그 바다에 남겨두고 떠나버렸을까. 동무들도 좀 두려웠을 것이다. 아마도 내가 잘못됐을 경우 그들에게 돌아갈 부담이 있었을 것이니까 어린 마음에 그냥 내뺀 것이 아닌가 싶다.

세월이 흐르면서 무더운 여름이면 그 때를 돌이켜보는 것은 여러 가지 상상을 보태면서 해 보는 생각 때문인데, 이게 아슬아슬한 느낌에 더해 시원하고 재미가 있다. 만일 내가 그 때 사고를 당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상상부터가 재미있다. 나 없으면 나는 모를 일이지만, 그 일을 도모하게 된 배경이 도마 위에 오를 것이고 누가 주도를 했는가에서 부터, 그런데 왜 나만 바다 위에 남겨놓고 다들 도망갔느냐로 사단이 이어졌을 것이다. 그 때 동무들은 이제 한 두어 명은 친구들로 남아있지만, 그들의 향후 인생도 적잖게 달라졌을 것이라는 생각도 재미있다. 나에 한정할 경우, 우리 집은 어떻게 됐을까를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다. 이 역시 아슬아슬한 감을 안기면서 더위를 식혀준다.

이 이야기는 그 자체로 끝이 아닌 게 더 재미있다. 뒤에 이어지는 얘기가 어쩌면 더 재미있다. 나의 ‘고래돝섬’ 왕복 헤엄은, 그 짓을 행하던 그 무렵의 얘기로만 결국 남아져가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게 된 줄은, 말하자면 나 혼자만 몰랐다. 쉽게 말해 그 때 내가 했던 ‘고래돝섬’ 왕복 헤엄이 이제는 없었던 사실, 아니면 거짓된 사실로 돼가고 있다는 얘기인데, 나로서는 오히려 그걸 더 재미있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얘기인즉슨, 몇 년 전 지금처럼 무더운 여름인가 친구들과 바다 얘기를 주고받다가 내가 그 ‘고래돝섬’ 왕복 헤엄 얘기를 무슨 무용담처럼 꺼냈다. 친구들이 일제히 거짓말이라고 받아쳤다.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이다. 꼬마쯤의 나이에 어떻게 그 먼 ‘고래돝섬’을 헤엄으로 왕복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결국 진실공방으로 들어갔는데, 나로서는 그 때 함께 도모했던 동무들이 증인이니까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 그 때 그 해변에 함께 있었던, 그러니까 지금은 친구 사이인 한 동무가 결코 그런 사실이 없었다며 나를 거짓말쟁이로 몰아버린 것이다. 나로서는 좀 분통 터질 일이었지만, 유일한 ‘증인’이 그렇게 나오니 달리 도리가 없었다. 그 때 거기에 같이 있었던, 후에 어렵게 수소문해 찾아낸 또 다른 동무가 그 사실을 확인해 줬지만, 그 동무를 잘 모르기에 믿을 수 없다며 철저히 묵살됐다. 그렇게 해서 나는 결국 거짓말쟁이가 된 것이다.

사실이 변할 수도 있다는 사실도 재미있다. 분명히 내가 한 짓이고 사실이지만, 주변에서 아니라고 강변하면 그 사실이 거짓말로 될 수 있다는 것인데, 그 경우 어떤 때는 그게 내가 지어 낸 거짓말일 것이라는 착각이 들 때도 있다는 얘기다. 손가락 다섯 개 가진 사람이 육손 가진 사람들 틈에서는 병신이 되는 논리다. 이 또한 더위를 싹 가시게 하는 재미있고 시원한 인간사 중의 하나로 나는 여긴다. 어떻게 겪다보니 그런 경지에 이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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