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혼자 먹는다. 이를 시쳇말로 ‘혼 밥’이라 하던가. 가족이든 친구든, 둘이서 혹은 여럿이서 먹을 때도 있다. 여럿이서 먹게 되는 경우는 가족이나 친구 등의 관계 속에서 불가피하게 피해갈 수 없을 때 같이 먹는다. 하지만 나로서는 혼자 먹는 게 정석(定石)이다. 이런 의미에서 같이 들 먹는 경우는 불가피한 때를 제하고는 나에게 선택(option)일 수도 있는 것이다.
얼마 전, ‘혼 밥’을 놓고 맛 칼럼니스트를 자처하는 어떤 양반이 해괴한 논리를 늘어놓다가, 반박이 이어지자 또 해괴하게 그 논리를 틀었다. ‘혼 밥’이 정신적인 자폐에 의한 것이라고 했다가, 이를 슬쩍 현상으로 몰고 가 사회적인 병리 현상을 얘기하려 했다는 궁핍한 논리로 모면코자 한 것이다. ‘혼 밥’을 지금 사회의 일종의 병리 현상으로 치부하는 것은 우리의 전통적인 습속 측면에서 보아도 타당하지 않다. 조선시대의 궁중이나 사대부가의 연회를 그린 그림을 보면, 연회의 메인 이벤트는 같이들 앉아 치르지만 행사가 끝나면 참석한 사람들에게 각각의 독상으로 음식을 대접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혼 밥’은 결코 비정상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와 문화적 유사성이 많은 일본에서도 그렇다. ‘J 채널’에서 방영해주고 있는 ‘고독한 미식가(孤独のグルメ)’를 보면 일본의 대중식당에서도 ‘혼 밥’을 하는 손님이 대부분의 손님이다. 술 마시는 주점에서도 그렇다.
‘혼 밥’은 결코 비정상적인 것이 아니다. 여럿이들 모여앉아 같이들 밥을 나누는 것이 나쁘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불가피한 경우가 아닌 한, 혼자 먹는 것을 무슨 이상한, 비정상적인 행태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 ‘혼 밥’은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자연적인 행태이고 모습이 아닌가 싶다.
왜 혼자 먹는가 하고 물을 수 있다. 연장선에서 이는 질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혼 밥’은 누구든 자신의 영역이 시. 공간적으로 확보되는 자연스런 것이다. 이를 구태여 사회적 관계 속에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방해받을 이유는 없는 것이다. 혼자 먹으면서 생각하다. 혼자 생각하면서 먹는다. 이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영위되는 인간으로서 그나마 누릴 수 있는 자유의 영역이다.
나의 오늘 점심도 ‘혼 밥’이다. 아내가 싸준 김밥이다. 도서관에서 점심을 때우는 일은 좀 거추장스럽다. 구내식당에서 사 먹는다든가, 아니면 도서관 밖 식당에서 해결해야 한다. 구내식당은 번잡하기도 하지만, 내 기호에는 맞지 않다.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서 여럿이들 앉아서 먹는다는 게 흡사 집단으로 사육 당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도서관 밖으로 나가면 어차피 ‘식당 순례’를 해야 한다. 음식을 골라먹는 자유와 재미도 있지만, 결정이 쉽지 않다. 그러니 그냥 돌아다니다 다시 도서관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그런 날은 점심을 굶기 십상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도시락이다. 그렇게 많이 먹는 식성도 아니니 허기만 메우는 정도의 간단한 도시락을 싸오는 게 여러모로 좋을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도시락 메뉴로는 빵도 있고, 삶은 감자나 고구마도 있고, 김밥도 있다. 요 며칠은 김밥만 먹었다. 잔 멸치와 볶은 김치, 소시지로 싼 김밥이다. 견과류와 인스턴트커피도 챙긴다.
도서관 정원은 녹색의 장원이다. 그 장원 속에 항상 앉아먹는 자리가 있다. 나무 벤치다. ‘혼 밥’은 앞에서 얘기했듯 자유 그 자체다. 생각하기에도 좋고, 책 보기에도 좋다. 철학자가 아닌 다음에야 혼자 골똘히 생각에 잠길 때가 없을 것인데, 나로서는 그나마 생각에 잠겨보는 것은 혼자서 밥을 먹을 때다. 여러 갈래의 생각에 깊이를 더해 준다. 나로서는 그렇다.
오늘은 먹으면서 책을 본다. 가방에 도시락과 함께 잘 들어가는 문고판 책이다. ‘趙靜菴의 생애와 사상.’ 강주진(姜周鎭)의 조정암(光祖) 선생에 관한 책이다. 박영사의 1979년도 문고판인데, 책 내용도 그렇지만, 오래 된 문고판 책에서 추억마저도 느껴진다. 1979년 9월이라, 10. 26 직전인데, 그 때 나는 뭘 하고 있었지?
비풍초
2017년 9월 2일 at 1:40 오후
고려나 그 이전에는 어땠는지 모르겠으나 (저 포함 많은 한국인이 조선에 치중한 지식을 갖고 있는 건 아닐런지..) 적어도 저 어릴 적에 할아버지는 혼밥이셨습니다. 독상받으셨고, 할아버지 밥그릇, 수저도 따로 있었지요.. 손주들이 가끔 할아버지의 허락 혹은 초대(?)로 겸상하게 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혼밥에 무슨 사회적 동물이니 어쩌고 하는 설명 갖다 부치는 사람들은 글 써서 밥벌어먹는 사람들이 글 만들려고 하는 짓이라고 봅니다. ㅎㅎ
koyang4283
2017년 9월 3일 at 9:05 오전
공감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