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봄페이유적지,쏘렌토,카프리섬(날씨가좋지않아서지중해의푸른바다를제대로만끽하지못하여서유감이었다.),그리고나폴리항구를보고서는그다음날4월24일은로마시내로진입하였다.버스는지정된장소에가서로마시내진입을위한관광세를납부하고버스가다닐수있는장소까지만가서우리일행을내려주었다.
로마중의로마인바티칸박물관(카토릭의총본산이고,바티칸성은한국가로인정되고있음.)을관람하기위하여2시간동안줄을서서기다리다가바틴칸궁에검색대를통과하여겨우들어설수있었다.먼저박물관을보고나중에성베드로성당을보았다.박물관안에서많은조각들(그리스의헬레니즘의영향을받은작품들임)과미켈란제로가그린"천지창조와최후의심판(단,사진촬영이금지되어있었다.)"을관람하였다.앞의그림이있는곳은교황을선출하는방이란다.성베드로성당의내부를잘보았고,성당내부규모와돔의높이에또한번놀랐다.어떻게저런건축물들을그시절(고대로마시대)에건축할수있었을까하는의아심이들었지만결국은그들의창의적인설계기술과그것을짖기위하여흘린땀과눈물을생각하였다.바티칸궁담벽에서2시간을기다리느라고목도마르고,또한생리적인현상을해결하기위하여길건너의카페에들어가서맥주한병을사마시고그리고소변을해결하였다.조그마한맥주한병값이5유로이었다.
점심을중식당에서먹고서는옛길이그대로이기때문에좁게난도로를큰버스로이동할수없어서승합차를옵션으로대절하여시내의명소들을구경하였다.트레비분수,스페인광장,판테온신전,로마의언덕,전차경주장,그리고코롯세움을보았다.
앞서서제목에서도썼지만그런유적들을보면서느낀것은로마시전체가인류역사그자체이고또한박물관이라고볼수있었다.
로마를두고많은말들이명멸하였다."모든길은로마로통한다.",로마에가면로마의법을따르라.","로마는하루아침에이루어지지않는다.","쿼워바디스(주여어디로가시나이까."),레스피기의"로마의소나무",그레고리팩과오드리헵번의"로마의휴일"등여러가지의문학과음악과그리고영화의모티브가되었던로마이기때문이다.
우리가관광을하면서느꼈던불편한점들,관광객수에비하여턱없이부족한화장실과그리고사용료가유로인점,길이좁아서돈을더내고승합차를렌트하여타고다니는것,IT인프라가부족하고접속하려면비싼요금이든다는사실등이우리를불편하게하여도역시로마는로마이었고,우리가길이보존하여야할가치와명성이그안에다있었다.시간이허락한다면한2일정도를더보고싶었지만단체여행이다보니그렇지못하여유감이었다.
로마중심의서양문명이두사람에의하여무녀졌다고로마가이드인박선생이말하였다.그하나는컬럼버스이고,그사람은지중해중심의패권에서대서양중심의패권으로변화시켰다.그리고또하나는마르틴루터에의한교회개혁운동이그것이라고설명하였다.이태리인컬럼버스가스페인여왕이사벨라의후원에의하여신대륙을발견하므로서베니스와피렌체,제노아중심의지중해무역형태에서대서양중심으로넘어가고결국은대서양제해권이영국에넘어감으로서로마는지고대서양에면한나라,스페인,프랑스,영국등이신흥강국으로부상하여이제까지영향력을행사하고있다고본다.
마르틴루터에의한종교개혁은또한그때까지성서가라틴어로만쓰여있어서일반시민들은성서를그림과신부님들의말로서만접할수있던것을여러언어로번역하기시작하면서부터중상계급이급격히늘어나고새로운학문이발전하는계기가되었다고본다.
이래서하루의여정이끝나고로마의휴일이라는영화를버스안에서보면서잠을자고쉬러로마근교의한호텔로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