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여행기1/독일,폴란드

지난달30일에출발하여10일에돌아오는11박12일간의동유럽여정을마치고귀국하였다.

다녀온나라는독일,폴란드,슬로바키아(체코와분리독립),헝가리,오스트리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체코이었다.

인천공항을출발하여10여시간을비행하여독일프랑크프르트공항에내려서출국도장을받고,한참을기다려서짐을찾고,세관을통과하여대기하고있던버스에올라서첫날밤을지낼라이프치히로향하였다.거의5시간을버스타고서저녁늦게도착하여호텔에짐을풀었다.라이프치히는J.S.Bach가음악의꽃을피운곳이며,멘델스죤이게반트하우스오케스라를지휘하였으며,또한라이프치히대학교가유명한고장이다.

그이튿날호텔에서아침식사를하고이번관광여행의첫목적지인베르린으로향하였다.동서독이통일하고서는독일의정치중심지로서도시이고,프로이센과비스마르크정권,나치독일의수도이었던도시이다.

유대인학살을추모하는홀로코스트기념물모습,오른쪽의건물은미국대사관건물임

동서독을갈라놓았던장벽모습

철혈재상비스마르크의동상모습

기울어진것처럼찍은승전탑모습

브란덴브르크문의사람들모습

베르린에도착하여먼저점심식사를호돌이라는한식당에서육개장으로하고서는가본곳은승전기념탑,유태인학살기념조형물인홀로코스트,브란덴브르크문,동서독베르린을갈라놓았던장벽을돌아보았다.특히이런조형물들의영향은유럽의역사와지도를바꾸고,제2차세계대전의상흔은우리나라에는아직도DMZ로남아있다는사실에마주하면서이런유물을유랑하면서본다는것이매우착잡하였다.

베르린을떠나서폴란드로향하여서가는도중에고속도로에서주변을보니독일이나폴란드모두평탄한대지위에초원들이좌우로끝없이펴져있고,농장들과유채밭이이어지고는하였다.낙엽은바람을타고버스사이로흩어지는것이장관이었다.

폴란드에서는우리가유태인의학살현장으로기억되는아우슈비츠를먼저보았다.같은인간으로서전쟁이라는명분하에인간을이렇게말살한다는것은그죄값을톡톡히치루어야한다는것을실감하지않을수없었다.그곳에유태인수용소가들어선것은폴란드이교통요충지이고,군대주둔지이었고,유태인노동자들을석탄채굴에동원할수있다는점때문에그드넓은50만평의대지위에인류최악의학살현장을만든것이었다.그곳의한인가이드의설명을들으며,현장곳곳을돌아보았다.사실히틀러의극우파는유태인을말살하려는것은인종적인열등감에서도이지만실질적인이유는유태인들의재산을빼앗으려는비열한짓이었다.슌들러리스트라는영화도이곳을배경으로하여촬영되었다.그날도폴란드에는망자기념이어서유태인젊은이들이거기에와서추모행사를하고있었다.북쪽지방이라일찍지는해에노을지는아우스비츠를떠나는마음은"다시이런일이일어나지않겠지!"이었지만,그자문자답은확신을할수없었다.

수용소입구모습

녹슨기차모습

수용소철조망모습

아우슈비치를떠나서거의저녁무렵의폴란드이구도이었던폴란드남서부지역중심도시인크라카우에도착하였다.늦게까지바벨성(왕궁이었음),중심가의성당과광장등을돌아보았다.

바벨성의모습

시내호텔에서사흘째잠을자고아침일찍크라카우근교에있는소금광산을찾았다.지금은채굴을하지않고관광용으로개발하여관광객들에게유료로개방하고있었다.광산내부를사진촬영하자면입장료에추가로3유로를내야한다고하여요금을내고스티카를부치고서는광산내부를걸어들어갔다.지하350M까지채굴이되었으며,채굴길이는약300KM에달한다는설명이었다.우리일행들은지하135M까지내려가서광산내부들을돌아보았다.올라올때는리푸트를타고순식간에지상으로올라왔다.

소금을캐서올리는모형기계모습

과거에열악한환경에서소금을채굴한노동자들의각종흔적들과유물들을곳곳에전시하여놓았다.그리고성당,광장,회의장,기념품가게,화장실,각종조각작품들이설치되어있었다.참으로특이한형상을보았는데,말이박제되어서수레를끌고있는모습을보았다.좁은입구에큰말을들여올수가없어서새끼말을들여와서그곳에서키워서평생을부려먹었다는것이다.인간들이얼마나잔인한가하는것을보여주는봏은사례이라고본다.그곳을떠나서폴란드서남부와슬로바키아를지나는타트라산맥을지나서가는길은좁은왕복2차선이었고,고개길이라그런지버스뒤에탄승객들은멀미를많이하였다.슬로바키아를지나는도중에시갇에서늦은점심을하고서는헝거리의수도인도나우강을끼고있는부다페스트에늦게도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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