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越南) 북부 여행기/하노이와 하롱베이

지난 달 중순에 3박5일간 일정으로 베트남(越南 : 이 국가명의 유래는 춘추전국시대의 越나라의 남쪽에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삼국지에서도 제갈량이 복속을 시키려고 맹획을 7번 잡고 7번 풀어 주어서 항복을 받았다는 고사의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의 북부인 하노이, 엔트국립공원, 하이퐁만에 있는 하롱베이를 다녀 왔다.

우리나라는 여러가지로 어렵고 시끄러운데, 정치권은 국민들의 삶은 내팽개치고 정권 유지와 정권을 다시 찾으려고 게임에만 몰두하고 있다. 그래서 머리도 쉴겸하여 처음으로 베트남을 둘러 본 것이다. 1960년대만 하더라도 월남은 남북으로 나누어져서 전쟁을 하고 있었으며, 결국은 미국의 중재로 인하여 남북간의 평화 협정에도 불구하고 구정 대공세 앞에서 월남 정부는 무너지고 말았다. 한국은 미국의 요청에 의하여 이 전쟁에 참전히여 많은 군인들이 희생되었지만, 이러한 희생의 대가를  통하여 한국군의 근대화와 우리나라 경제를 한단계 올리는 결정적인 달러를 보유(한진그룹의 공로가 가장 컸다고 본다.)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수출 지향적인 국가로 변모하여 지금까지 그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60년대에는 군인들이 참전하여 갈등과 희생을 동반하였지만, 지금은 삼성을  비롯한 우리나라 기업들이 베트남에 투자를 가장 많이 하는 국가 가 베트남인 것이다.

이런 역사적인 背景을 가진 베트남을 방문하여 아주 走馬看山격이지만 눈으로 본다는 것은 다른 나라를 찾아 보는 것보다도 더 의미있는 것이라고 본다.

비행기는 이스타항공(EASTAR, 저가항공/LCC)이었다. 기내에서는 물만 제공이 되었고, 나머지 음식료는 유로 서비스이었다. 나는 컵라면(4,000-원)을 하나 사 먹었다. 왜냐하면 늦은 밤비행 여정이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저가 항공사 비행기로는 장거리 비행을 처음하여 보는 경우라서 이런 경험을 하여 보고 싶었다.

하노이 국제 공항에 밤12시경(시차가 2시간 느리다.)에 내리어서, 하노이 시내의 어느 호텔(Riverside Hotel)을 풀고서 늦은 잠을 잤다. 아침은 호텔식당에서 해결하고서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서 제일 먼저 우리 일행(여행사 패캐지 상품, 나는 혼자 왔다하여 호텔방을 나 혼자 3일을 썼다. 대신에 10만원을 추가로 내었다.)은 호치민 祠堂을 찾아 보았다.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민들이 줄을 길게 서서 參拜를 기다리고 있었다. 호치민이 이렇게 국민들로부터 칭송을 받는 것은 프랑스와 전쟁에서 이기고, 통일을 이룬 것도 있지만, 독신으로 평생을 보내면서 국가를 위하여 일평생을 헌신하였다는 점이었다. 그의 집무실과 거처를 둘러 보았는데, 유품이라는 것이 침대와 책상이 전부이었다. 우리나라는 이런 지도자 왜 나오지 않고 그 더러운 돈에 얽매여서 이 나라를 어지럽게 할까 하는 생각만 祠堂 주변을 둘러 보면서 내 머리에 떠 나지를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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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 첫번째는 롯데빌딩의 맨윗층의 전망대에 있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내 이름을 적어 본 것이다. 두번째는 호치민 사당이다.

호치민 사당을 둘러 보고서 고속도로(유로도로이지만, 오토바이와 차가 엉기어서 시속 20-30Km정도 속도로 버스가 달이었다.)를 타고서 엔뜨국립공원을 들려서 오후 늦게 하롱베이에 도착하였다. 엔뜨국립공원은 우리에게는 별로 보여줄 것이 없는 그저 그런 산이었다. 특히 볼상 사나운 모습은 공원내에 대규모 건축사업을 하는 것을 보니, 자연을 보존하고 관리해야햘 국립공원의 이름이 무색하였다.

하이퐁 근처(하롱베이지역)에서 하루 저녁을 묵고서는 아침 일찍이 배를 타고서 통킹만(월남전이 시작된 유명한 통킹만 사건이 일어 난 곳이다.)으로 나갔다. 역시 TV나 사진으로만 보던 것 보다는 百聞不如一見이요, 名不虛傳이었다. 우리 일행은 가이드와 협의하여 옵션 관광을 즐기었다. 사실 본 여행경비와 비슷한 추가 요금이 들어 갔다. 이러저러한 경비를 합하여 계산하면 짧은 일정의 동남아 觀光이 유럽의 장기간 여행보다 비싸게 들어 가고 있다. 이는 너무 저가에 패캐지 상품을 제공하고서는 현지에 가서 옵션을 강요하다싶이하는 관례가 그렇게 만들었다고 본다. 배를 타고서 섬으로 둘러 싸인 바다를 둘러 보기도하고, 해상족인 원주민들이 젖는 나룻배에 올라서 섬안의 바다 호수를 보기도하고, 섬에 형성된 종유동굴도 보고, 스피드 보트도 타보고, 점심은 배위에서 해산물로 차려진 음식으로 잘 먹었다. 이런 것들이 다 옵션으로 포함된 사항이었다.

하롱베이의 구경을 마치고 수도 하노이로 돌아 왔다. 버스안에서부터 보이는 것은 하노이 시내를 사람보다 더 많은 오토바이가 자동차와 함께 길을 메우고 지나가고 있었다. 참으로 壯觀이었다. 그런데 오토바이와 차에서 뿜어 나오는 매연으로 인하여 하노이 시내가 뿌옇고,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들 대부분이 마스크를 쓰고서 다니었다. 하노이 전통시장(우리나라 남대문, 동대문 시장을 합하여 놓은 것보다 더 커 보였다.)을 전동차를 타고서 돌아 다녀 보고, 다시 걸어서 일부 시장을 탐색도 하였다. 저녁 식사후에는 호수주변을 전동차를 타고서 일주를 하였으며, 다시 시간이 남아서 롯데 빌딩의 맨 윗층에 가서 커피한잔 마시면서 夜景을 구경하였다.

그리고 나서 공항으로 와서 새벽 1시20분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출발하였다.

이번 旅行을 요약하여 보면, 베트남은 사회간접자본, 특히 도로등에 더 투자를 해야하며, 오토바이 매연의 해결해야할 것으로 보였다. 하노이를 비롯한 수많은 오토바이 물결이 아주 인상적이었으며, 쇼핑센터(한국인들이 운영하는) 방문은 너무 비싼 물품만 소개하여 쇼핑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 이번에도 빈손으로 귀국하였으며, 하롱베이는 참으로 인상적인 천혜의 寶石이었다.

지금 이 글을 싱가포르(新加坡)의 딸네 집에서 쓰고 있다. 관심을 끊으려고 하여도 小寒인데도 영상의 날씨인 것을 보면 촛불을 너무 많이 켜서 이로 인하여 매연과 온난화를 부추기지 않았나 하는 걱정을 하여 본다.

모든 것이 過猶不及이라 하였다. 넘치지 않고, 자기 분수에 맞게, 공직자들은 先公後私의 정신으로 살아 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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