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육사의 외동딸 이옥비 여사를 만나고….

(이육사가그의친구들과함께찍은사진)

우리나라에서가장상징적인저항시인이자민족시인이며,앎과함을가장극적으로일치시키며온몸을불사른독립투사를꼽으라면아마도초등학생에서부터팔순노인까지아무망설임없이이육사를꼽을것입니다.

‘청포도”광야”절정’같은시들이입가에맴돌면서이육사를떠올리지않을수없는것이지요.

저는지난7월말육사선생의고향인경북안동에서펼쳐진육사탄신100주년기념행사’광야에서부르리라’를사전취재하던중,육사의유일혈육인무남독녀외동딸이있다는것을알고깜짝놀랐습니다.명색이문학담당기자이면서육사의혈육이있다는점을까마득히떠올리지못하고있었던것이지요.더욱이그외동딸인이옥비여사가육순을넘긴나이임에도불구하고일본에서생업을꾸리고있다는사실에마음한구석으로아릿한울림같은것이밀려왔습니다.

또하나는육사선생이1930년전반조선일보의기자를지내셨으니,정말개인적으로도육사는제선배가된다는사실이었습니다.

덧붙여이러한사실들이이미국내언론에충분히소개가됐으리라는생각에모든데이터베이스자료를뒤져보았으나현재까지아무도이를보도하지않았다는사실이또한번저를놀라게했습니다.

그래서무조건이옥비여사를만나야겠다는결심을하게됐고,그러던차에7월28일이옥비여사가일시귀국한다는사실까지알게됐으나,어렵게연결된전화통화에서이여사는한사코인터뷰를사양했습니다.겉으로는"건강이좋지않다"고했으나아마도다른이유가있는것같았습니다.우여곡절끝에경북안동으로내려가기다리고있다가이옥비여사가안동MBC에출연한다는것을알게됐고,방송국앞에서그녀를만날수있었습니다.그리고는안동시내에있는한음식점에서비빔밥을앞에놓은그녀와1시간가량이야기를나누게됐습니다.그녀는3년전일본으로떠나기앞서위암수술을받았다고했고,그날도식사를많이들지는못했습니다만,대체로건강해보였습니다.

이미신문에인터뷰기사가나갔습니다만,그날녹음한내용이있기때문에여기전문을소개합니다.필요하신분이있을것같아서요.

-이옥비여사(가운데)가안동에있는방송국에서출연을마친후부산대명예교수이자국문학자인사촌오빠이동영선생(왼쪽),그리고둘째아들양우석(뒤남자)와함께포즈를취했다.

강직한성격에작은체구였던이육사(李陸史.1904~1944)의한점혈육외동딸이옥비(李沃非.63)씨도아담한모습이었다.지난3년동안일본에있는한공관관저에서요리도해주고꽃꽂이도해주며살았다는그녀는"부담스럽다"며한사코인터뷰를사양했다.한번도언론에모습을내보인적이없다는그녀는’육사탄신100주년기념행사’때문에잠시귀국,안동에묵고있다.그녀는아버지의시가운데’동방은하늘도다끝나고/비한방울나리잖는그때에도/오히려꽃은빨갛게피지않는가/내목숨을꾸며쉬임없는날이여//…’로시작하는’꽃’을가장좋아한다고말했다.

-아버지의시가운데가장애송하는시는무엇입니까?
"예.’꽃’그리고’청포도’를좋아합니다."
-육사의딸로육십평생을살아왔다는어떠세요?
"저는아버지에대한긍지도갖고있지만요아버지에대한부담도많았던사람중에한사람이에요.학교에서든어디에서든누군든지보는눈이틀리잖아요.글을쓰고싶어도,가령학교에서백일장같은게열려도피해갔어요.나하나의개인의일보다는누군든지아버님을앞세우고관심을갖고보잖아요.그것이어릴때는철이없으니까부담이되지요.지금은아버님이정말강인하시고독립투사로서어려운삶을살았구나생각하지만요.지금내가살아보니까어머니가참쓸쓸했겠다그런생각도갖게되지만요.그런데어머니는가문에대한긍지를가졌고저한테도엄격하셨어요.저는결혼하기얼마전까지도매맞고컸어요.딸이하나니까혹시나삐뚤로나갈까봐."
-어머니는언제돌아가셨어요?
"80년도에우리가길동으로이사를갔는데한85년에돌아가셨어요."
-이옥비여사는서울부터기억이나시겠네요?
"처음에는명륜동에살았지요.아버지돌아가시고어머니가외가쪽이있는경북영천으로가셨어오.그리고내가7살때대구로왔어요.그리고쭉대구에살다가결혼한후69년에서울로와서살았지요.
-육사가태어난달은양력으로4월이지만,방문객들을많이모시기위해방학철인7월말에육사탄신100주년기념행사를하고있습니다.’광야에서부르리라’는행사를보시는소감이어떠신지요?
"기쁜반면에내삶이아버님께덕이되지못한삶을살았구나하는부끄러움도있고요."
-육사선생이6형제이셨는데,이옥비여사에게는작은아버지되시는분들이형수되시는어머니안일양(安一陽)여사를마치어머니처럼따랐다고하던데요?
"작은아버지들이어머니와술도한잔씩하시면서형수라기보다어머니처럼따르면서시도얘기하고했던기억이나요.육이오직전이었죠.그땐자주내려오셨거든요."
-어머니가들려주는아버지모습은어떠셨어요?
"그런데아버지가굉장히엄격하시니까어머니가말붙이기도어려우셨죠.말씀을잘안하시고바깥으로만도시니까.시어머니가많이위로가되시고,그분덕에어려운줄모르고지냈다고해요.할머니와어머니는특별하신관계였죠.우리로서는감히상상도못하죠."
-이육사는퇴계이황의14대손일뿐아니라,일제시대최고의평론가였던이원조의친형이고,또육사의장조카인이동영선생은부산대의원로국문학자이신데,이처럼문학가집안에서육사의무남독녀외동딸은시인되고싶었던적이없으세요?
"한번은있었겠죠.사춘기때.그러나내가되고싶다고되는것은아니잖아요."
-아버지가돌아가시고난후집안에서이동박씨는양자로들였는데,어머니가홀로남매를키우느라고생이많으셨겠어요?
"아버지돌아가실때는집안이좋았지요.유골모시러갈때작은아버지들말씀이’형수님은교육걱정하지말라.우리가다시켜서형님앞으로세우겠다’고들하셨지요.그런데육이오로월북하시고,원조원일삼촌은북으로올라가셨고,다섯째삼촌은잠시나갔다오마했다가행방불명됐으니까숙모가나머지오형제데리고대구로내려가함께살았어요.동박도그때고등학교때까지생모한테있다가대학에서군에갔다가우리집에왔어요."
-어머니는무슨생업으로딸을키우셨습니까?
"하숙도치고요.우리어머니가미곡을아셨는지,가을에쌀을사다가가마니에담아놓아요.큰방에,적산집이니까.봄에쌀이귀할때팔기도하셨어요.우리어머니가자기손으로저를키웠지요.그래도밥못먹은기억은없어요.그래도어머니는고생많으셨어오."
-어머니가시인에되라고은근히말씀하신적은없습니까?
"그런소리는안했어요.사실은내가옆길로빠지고싶어했어요.학교때무용도잘해서이화여대갈려고했는데,어머니가못하게했어요.그런거하면딴따라된다면서피아노도못하게했어요."
-학교는어디어디다니셨어요
"수창국민학교입학했고전학했다가중학교는제일여중,고등학교는경북여고떨어져,챙피하죠?,물상을보는데한칸을완전히내려썼지요.그래서대구여고나왔어요.그땐딸애들은대학까지안보내줬어요.제가한해를노니까힘들어지잖아요.그래서경북여사대를나왔어요.지금경북여대지요."
-초등학교교사했어요?
"바로결혼했어요.64년도결혼했어요."
-굉장히미인이셔서남자들이가만놔두지않았군요.연애하셨어요?
"엄격해서그런거생각도못했어오."
-아버지에대한여러기념사업에대한사명감은안가지셨는지요?
"딸이니까생각을못했어요.그때만해도우리가문이여자들이나서는것을별로안좋아하잖아요.사실이죠."
-육사의장조카인이동영선생도계시고요.
"사실아버지관련자료같은것을내가컸다면많이보관할수있을텐데….내가몰라가지고파손한것도많아요.다락방에서요.작은아버지들이육이오전에아버지책을만든다고사진같은것도많이추려갔어요.그런데육이오가났어요.아버지의10촌되시는친척분에게맡기셨다는데그집이폭격을맞았어요.작은아버지들이월북하시면서그집에맡겼다는데…."
-통일되면이원조가지고가신자료도찾을수있겠네요?
"있겠지요.그분도그쪽에서삼남매를두셨다는데사촌들이제법갖고있겠지요."
-이육사딸로서학교다닐때유명하지않았어요?
"그게싫었어요.국어선생님들은제일먼저저에게아버지시에대해묻곤했어요."
-육사의손자들가운데문학하는사람없어요?
"큰애도무역전공을했고둘째도이과를했어요.나는큰애가할줄알았는데.욕심대로안되더군요.그래도강요는안하죠."
-육사는감옥열일곱번이나드나들정도로온몸을불태워조국에바쳤고,해방이후엔여러정권이훈장을추서하기도했습니다.후손들에겐영광이요긍지이면서경제적도움도있지않았습니까?
"제가학교다닐때는아무것도없었고,박정희대통령후반기에어머니앞으로연금이나왔어요.어머니가’네아버지가살아있을때못해주던것을이제해주시는거’라고했어요."
-지금도나오나요?
"네.제가동박이한테이양을했지요."
-얼마나나오나요?
"모르겠어요.이제더관심이없습니다."
-육사는조선일보에첫시’말(馬)’을발표하면서문단데뷰를했지만,본인자신을포함해서여섯형제중세분이,그리고외숙뻘되시는이병각선생까지모두네분이조선일보기자를하셨습니다.너무특별한인연이아닙니까?
"어머니도그얘기를자주하셨어요.어머니가조선일보애호자예요.저도결혼해서쭉조선일보만봤어요.저쪽니이가다총영사관관저에서일하면서부터못봤어요."
-그곳에는언제가셨어요?
"3년됐어요."
-너무비범하셨던아버지를원망해본적은없으세요?
"그런것은없고요.이미주어진숙명이잖아요.다만다른아이들처럼훌륭한아버지보다평범한아버지일망정곁에계셨으면한적은있어요."
-역대정권들이독립투사의후손들을제대로돌봤다고생각하세요?
"돌보지않았다고해야맞을것같은데….,요즘은옛날보다많이좋아졌어요."
-옛날에는관심없었나요?
"끽해야삼일절에은수저한벌그랬지요."
-남편은4년전에돌아가셨다고했는데요?
"아엠에프터지고,큰애가하던일이잘못되고하면서요.그이는대구시청에계시다도로공사에있다가삼환기업에계셨어요.물질적인욕심이없으세요.누군든지한사람앞에몇평씩만돌아가면되지왜집을크게하냐고했어요.얘들이사업을하다가잘못되니까강직한성격에신경을많이써가지고쓰러지셨어요.한시간만에돌아가셨어요."
-그다음에일본에가셨군요.일본말언제배우셨어요?
"배우지도않았어요.내가일어선택을했었는데.엄마가일어를왜하느냐고그래서안했어요.그런데사실은호랑이를잡으려면호랑이굴에들어가야하잖아요.그래서얼마나후회를많이해야했는지몰라요.그러나관저니까간단한전화만받으면됐어요.제가말은못해도요리사자격증도있고,꽃꽂이를30년을했잖아요.관저니까꽃꽂이도필요하고,궁중요리도필요하고했어요.친구남편이외교관인데그분이소개해주셔서가게됐어요."
-그곳생활은괜찮으세요?
"관저일은이제끝났어요.제가거기있을때저를도와주신분이있는데,그분이수술을하셔서자기가하는일이너무벅차니까도와달라고해서그래서다시가게됐어요.말도안통하는데힘들어요.자기가어려울때나도도와주어야겠다해서간것에요."
-옥비(沃非)라는이름은누가지었습니까?
"아버님요.아버님이제백일날그이름을발표하셨데요.저에게남겨주신유일한것이에요."
-무슨뜻입니까?
"어머님이그러시대요.기름질옥,아닐비인데,기름지지말라면말이안된다,간디같은사람이되라고,욕심없고그런뜻으로지었지않았나말씀해주셨어요."
-현대적감각으로듣기에아주좋습니다.
"옥자말자숙자하는아이들속에내이름은너무독특해싫었는데,지금은어디든은행같은데가서기록을하면정말독특하다면서칭찬해줘요.내이름은나이에비해독특하다해서지금은참좋은이름이라고생각해요."
-아들형제인양우영(경철),양우석은무슨일을하나요?
"큰아들은동양시멘트비서실에있었어요.한국외대나왔거든요.레미콘사업을하다가보험처리되기전에차가사고가나서완전히큰일을당했어요.우석이는학원에서수학을가르쳐요."
-돈많이벌겠네요?
"모르겠어요."
-아버님의형제분들이우애가그렇게좋으셨다면서요?
"어머니가그러시더라고.형가있는데아우가있고,아우가있는데형가있다고.대구조선은행폭탄사건났을때동천과수원에사과하러가신다고했었데요.오늘놀러간다고했던거지요.그런데4형제가다잡히셨지요.큰아버님(원기),아버님,원일,원조두작은아버님요."
-아버지가양복에나비넥타이를늘하셨다구요?
"아이보리색깔이세요.내가기억이나서어머니에게맞냐고물어보았는데어머니가맞다고하데요.나비넥타이도항상매고요.아버지의사진을많이잃어버려서그렇지정말멋쟁이이셨어요."
-항상명확하고깔끔하셨다구요?
"서울시구문밖문화촌에살땐데,지금은그양옥집이없어졌다고하는데,술이만취돼서늦게들어오셔도이불밑에다양복을깔아야주무셨데요.옛날남자분들은덧칼라는하는데꼭여유분을하나더가방에갖고다니셨데요.까매지면바꿔끼실려고요."
-어머니가아버님의친구분자제들을하숙치셨다고했는데,그친구분들이누구세요?
"모르겠어요.아버님잘아시는분었던것같아요.그분들이자제분을맡기셨는데아버님이가르칠시간없다면서싫다고하셨는데도일단데리고같이살기만해도배울게있다고해서어머니가하숙을치신것지요.내가고등학교다닐때도하숙을치셨고요."
-육사와관련된이런저런행사가있을때마다언론들이외동딸이옥비여사를인터뷰하고자원했을텐데왜지금껏한번도언론에나오지않으셨나요?
"내가피했어요.너무피곤해서요.이동명교수님도계시고요.우리친정일니까동박이도있고,저는조금둘러리에있어도좋지않나생각했어요."
-일본언제돌아가세요?
"지난봄에근3년만에귀국했다가다시갔었거든요.이번엔8월7일날돌아갑니다."
-앞으로어떤소망을갖고계세요?
"아이들이원만한가정꾸려나가고손주들교육잘시키고요.저는크리스찬으로서믿음생활열심히하면서하나님뜻대로살려고해요."
-동생동박씨는요즘어떻게지내시나요?
"대구에사는데얼마전쓰려져건강이좋지를못해요.나하고동갑이네요.저는이월생이고,그는동짓달생이에요."
-1930년두살때죽은오빠동윤(東胤)씨는무슨병을앓았나요?
"홍역끝에갔어요.언니도하나갔어요.경영(京英)이라했어요.서울에서났다고해서서울경꽃부리영을썼지요.그때는아버님이집에계셔서병원가볼것다가보고,그래서언니죽었을때는어머니가후회가안되더래요.아들이죽었을때아버지가왔다갔다하시느라고병원에도한번제대로못가봤지요.대구에살때에요."
-아버지가이옥비여사를낳을때는나이가드셨을때죠.결혼한지이십년가까이되던해였지요?
"아버지가열여덟,어머니가열여섯에결혼하셨고,저를늦게났어요.만나지못하니까.하늘을봐야별을…..그런데제일못난이가남았지요.저도일본에가기전에위암수술을했어요."
-아버지의생가가있는안동에는자주왔었습니까?
"아니요.여고2학년때처음와봤어요."
/안동=김광일기자ki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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